예수님의 비유-9 / 착하고 충성된 종 (마25:14-30)

예수님의 비유 9 - 착하고 충성된 종

본문: 마태복음 25:14-30

꿀벌의 개체수가 늘어나면 이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위해 발전적인 분립을 도모합니다. 주로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기존의 보금자리는 새롭게 선출된 여왕벌과 젊은 일벌 3분의 1에게 남겨주고, 나머지 일벌 3분의 2와 기존의 여왕벌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납니다. 그런데 이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먼저 정찰 업무를 담당할 벌들을 세웁니다. 이 정찰벌들은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두루 다니면서 열 군데 안팎의 후보지를 모색합니다. 돌아온 후에는 전체 벌들에게 후보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면 전체 벌들이 직접 답사하여 거주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안전하며, 번식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곳을 선택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왕벌의 개입은 일절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안전한가, 번식에 용이하고 적합한가, 이 기준만으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정찰 업무를 맡은 일벌들이 특별합니다. 이들은 늙은 일벌들입니다. 늙은 일벌들을 정찰 업무에 투입하는 이유는, 이들이 젊은 시절 꿀을 찾아 멀리 날아다녔던 경험을 높이 산 것입니다. 이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어떤 벌 한 마리도 소외되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맡은 달란트를 따라, 자기가 맡은 자리에서 성실하게 그 일을 감당해 나갑니다. 전체가 미래와 안전을 위해 힘을 모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꿀벌보다 못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달란트를 받았으나 그것을 땅에 묻어둔 사람입니다. 주인께서는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섬겨 두 배를 남긴 종들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는 과연 착하고 충성된 종인지,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인지 스스로를 살피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맡겨진 것, 내 것이 아닌 것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 25:14)

여기서 '어떤 사람', 곧 주인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종들은 하나님의 백성들, 오늘 이 자리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를 맡겨주셨습니다. '맡기다'라는 단어가 중요한데, 헬라어로 '파라디도미'(παραδίδωμι)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위탁하다, 위임하다, 부탁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주인의 소유를 완전히 이전한 것이 아닙니다. 임시적으로 부탁하고 맡겨두신 것입니다. 주인은 당신의 소유를 멀리 떠나면서 종들에게 "너희 것이니 그냥 가져라"라고 주지 않으셨습니다. 맡겨두셨습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주인의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주인께서 그 소유를 맡겨주신 것이 돌아올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하고 지키라는 뜻인지, 그렇지 않으면 이 엄청난 금액을 밑천 삼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남기라는 뜻인지 그 의도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주인의 뜻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만약 주인이 안전하게 보관하기를 원했다면, 굳이 종들에게 맡길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 당시에도 은행 같은 곳이 있었고, 돈을 맡아서 굴리고 이자를 불려주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이 금액이 엄청난 금액이었기에 돈도 많이 불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종들에게 맡겼습니다. 성실하게 일해서 이것을 너희 것처럼 가지고 일하여 증식시키라, 최선을 다해서 재산을 만들어 놓으라는 뜻입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맡겨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주인은 그 종들을 잘 알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들의 속성이 어떤지, 기질이 어떤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주인은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능력이 많은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주셨고, 한 가지를 하되 꼼꼼하게 깊이 있게 일하는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네 재능대로 주노니, 그 재능대로 성실하게 일해서 최선을 다하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맡긴 이 달란트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금액입니다. 한 달란트는 그 당시 통용되는 가치로 노동자의 15년 품삯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한 푼도 쓰지 않고 노동자가 돈을 다 모아야 15년이 걸려야 금 한 달란트를 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를 맡기고, 두 달란트를 맡기고,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주시고자 하는 두 가지 의미를 깨닫습니다. 첫째는,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종들이 이 달란트를 받아 열심히 쓰고 남기다 보면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주인께서 맡겨두신 것입니다. 시간의 한계를 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만 네가 관리하라"고 맡겨두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건강, 재산, 집, 일터, 사랑하는 가족과 자녀, 수십 년 동안 일구어온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두신 것은 파묻어 놓으라고 맡겨둔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일을 감당하여 열심히 남기라고 맡겨두신 것입니다.

만약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땅에 파묻어 놓든, 다 나누어주고 끝내든, 내 마음대로 사용하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탁하신 것이기에, 우리는 주인의 의도대로 이것을 잘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둘째는, 누구도 타인을 의식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종을 경멸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께서 재능대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일을 꼼꼼하게 차근차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능력을 가지고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반대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을 시샘해서도 안 됩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받지 못했을까?" 하며 자기 연민에 빠지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스스로 약해지고, 주인의 평가에 마음 상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걸려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사람을 사귀고 살아가다 보면 보이는 것이 사람이고, 그 사람이 가진 것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내가 가진 한 달란트도 대단한 자본금입니다. 노동자의 15년 품삯에 해당할 만큼, 주인은 이미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낙향하여 물고기 잡고 있는 베드로와 요한 등 제자들을 찾아가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마음이 몹시 힘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볼 낯이 없어서 고향에 가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갈릴리 호숫가에 가셨습니다.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고 피곤에 지쳐 있는 그들을 위해 주님은 숯불을 피워놓으시고 떡을 구워놓으시고, 방금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라 하시며 물고기를 구우시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식사를 대접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하시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 이렇게 찾아오셔서 다시 사명을 주시다니. 그런데 문득 곁에 있는 요한은 어떻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 21:21-22)

베드로가 왜 이렇게 물었을까요? 왜 요한이 신경 쓰였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가 버렸지만,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아래에 있는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부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셔다가 친어머니 이상으로 섬기고 돌봐드렸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에게는 마음의 큰 짐이었고 부담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는데 용서해 주시고 사명까지 주셨다면, 예수님 십자가 곁을 끝까지 지키고 예수님의 어머니를 섬겼던 요한에게는 도대체 얼마나 큰 복을 주실까, 이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의 대답이 이러하지 않습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곧 재림할 때까지 그를 살려둔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에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섯 달란트 받았건, 두 달란트 받았건 그것이 너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받은 이 한 달란트를 지키고 충성되이 일하고 성실하게 감당하면 될 것이지, 왜 자꾸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느냐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가 대단한데, 그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타인이 가진 것에 마음을 빼앗겨 내 할 일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신경 쓰지 마라. 너는 네가 할 일만 성실하게 감당하면 된다."

능력이 아닌 태도가 만든 결과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 25:16-18)

다섯 달란트 받고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두 배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에 파묻어 두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능력이 출중하고 탁월해서 두 배를 남겼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는 마음이 짠해지기도 합니다. 감정이입이 됩니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이 사람이 원래 소심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열심히 일하다가 원금을 까먹을까 봐 불안해서 파묻어 두었을 것이라고,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께서는 그들의 재능대로 주셨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기만 하면 반드시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주인께서 종의 기질을 잘 알고, 이 사람이 어디에 능력이 있고 적성이 있는지 가장 잘 알고 달란트를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반드시 남기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의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뛰어나서가 아니라, 주인께서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주신 것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했더니 두 배를 남긴 것입니다.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능력이 아니라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 오늘 본문이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16절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바로 가서" 할 때, '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포류테이스'(πορευθείς)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목표를 정하고 분명하게 열심히 달려가다라는 뜻입니다. 목표가 있고, 그 정한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것을 '포류테이스'라고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 25:18)

이 사람도 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가다'라는 동사는 헬라어 원어에서 '아펠톤'(ἀπελθών)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말은 등을 돌리고 떠나가다라는 뜻입니다. 같은 '가다'인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달려갔고,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가 버렸습니다. 태도가 문제입니다.

이것을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주인에게 실망한 것입니다. "나를 이것밖에 대우하지 못하나? 주인이 나를 이렇게 평가하시다니. 저 사람은 별로 잘난 것도 없어 보이는데 다섯 달란트나 주고, 저 사람도 두 달란트나 주는데, 나는 왜 하나밖에 주지 못하시는가." 화가 나고 실망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고, 스스로 자기의 한계를 설정하고 거기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자기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능력이 결과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태도가 결과를 만든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주인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목표를 정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두 배를 벌었습니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이와 반대로 행동했습니다.

결산의 날, 드러나는 진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주인이 돌아오셨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마 25:19)

오랜 후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고, 주인이 돌아오셨습니다. 이제 결산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가진 한계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아무리 애써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시간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시간 안에 묶여 있습니다. 그 시간의 한계 속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청년이었던 사람이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가 백발이 되어 있습니다. 바로 엊그제 기력이 왕성한 청년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손주를 보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주인이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마침내 돌아오셔서 결산할 때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 두 배를 남긴 사람들은 주인 앞에 신이 나서 보고합니다. 파묻어 놓은 사람은 변명할 거리를 찾느라 마음이 급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1)

23절의 말씀도 이와 한 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아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과, 두 달란트 받아서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을 다르게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똑같이 칭찬하셨습니다. 단 한 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원문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주인은 그들의 능력을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라고, 충성을 칭찬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주인도 잘 알고 계십니다. 성실하게 일했기에, 충성했기에 남긴 것이지, 능력이 출중해서 남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인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때 한 달란트 받아서 묻어둔 종은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마 25:24-25)

주인을 오해했습니다.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입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습니다." 여기서 '헤치다'는 곡식을 흩어뿌리다라는 뜻입니다. 곡식을 뿌리지 않은 데서 모은다는 말은, 주인을 일확천금을 꿈꾸고 불로소득을 탐하는 자로 여겼다는 뜻입니다. 주인에 대해 전혀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여 묻어두었다고 말했지만, 이것도 핑계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낙심하고 실망하여 '아펠톤' 한 사람입니다. 주인에게 등을 돌리고 자기 갈 길로 떠나버렸습니다. 스스로 자기 연민에 빠져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달란트를 그냥 땅에 파묻어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핑계하고 있습니다.

주인을 제대로 모르고 핑계하는 종에게, 주인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마 25:28)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열 달란트 가진 자"라는 표현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가지다'는 상태를 의미하는 헬라어 '에콘티'(ἔχοντι)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사람이 열 달란트를 이미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소유하고 있다고 하셨고, 그 사람에게 한 달란트까지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열한 달란트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원래 우리 상식으로 따지자면 자본금은 회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섯 달란트를 자본금으로 주셨고 이 사람이 다섯 달란트를 남겼으면, 주인이 원래 맡겨주신 자본금 다섯 달란트는 다시 찾아오셔야 합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원래 종들은 자본금 자체가 없었기에 주인이 투자를 하신 것입니다. 수익의 절반은 내가 가져가겠다고 하셔도 황송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 주셨습니다. 열 달란트를 다 주셨습니다. 초기에 투자하신 자본금까지 한 푼도 회수하지 않고 다 주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배울 것이 무엇입니까? 주인이 어떤 분이십니까? 주인은 임시적으로 우리에게 '파라디도미', 위탁하시고 위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해서 남기면, 원래 주인이 위탁하신 것, 원래 내 것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너의 것으로 하라고 등기이전을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네 것이다. 성실하게 일했으니, 열심히 일했으니, 네 것이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게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당신의 달란트를 도로 가져가십시오." 이 사람의 말 그대로 되었습니다. 가져와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다시 줘버리셨습니다. 있는 것도 빼앗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래 내 것이 아닌 것을 맡겨두셨는데, 그것을 가지고 주인의 의도와 뜻을 알고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섬기고 봉사하면, 하나님은 시간이 지나 내 것이라고 인정하시고 다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어떻게 불로소득을 탐하는 분이시겠습니까? 우리에게 다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하나님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한 달란트를 받았을 때 그것 때문에 낙심하고 실망하여 주인을 원망하고, 등을 돌리고 '아펠톤' 떠나버렸습니다.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기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인께서는 이 한 달란트 받았다가 묻어둔 종에게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6)

게으른 종은 이해가 됩니다. 게을렀으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땅에 파묻어 두었으니까. 그런데 악한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우리는 보통 악이라 하면 타인을 해치는 것을 떠올립니다. 칼을 들고 위협하든, 타인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든, 돈을 빼앗든, 타인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든, 그것을 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은, 받은 달란트를 묻어둔 것이 악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애쓰고,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셨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묻어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입니다.

반면에 두 배를 남긴 종들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충성은 이해됩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해서 충성되었는데, 왜 착한 종입니까? 주인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하나님께서 맡겨두신 달란트를 결산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분은 다섯 달란트, 어떤 분은 두 달란트, 어떤 분은 한 달란트를 받았는데, 하나님이 맡겨주실 때 그 의도대로 행동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열심히 남기고 계십니까?

건강한 육체로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성실한 일꾼이 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시간을 속절없이 흘려보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도 크고 작은 사명의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교회학교 교사의 달란트를 주셨다면, 찬양하는 사명을 주셨다면, 그 외에 크고 작은 달란트를 주셨다면, 그것을 묻어두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화살같이 흘러갑니다.

능력보다 태도를 보시는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섬기고 최선을 다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받은 달란트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질대로, 성품대로, 재능대로 많은 달란트를 주셨는데, 우리는 쓸데없는 비교 의식 때문에 주님께 등을 돌리고 묻어두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이 언젠가 결산하실 때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는 책망을 듣지 않기를 원합니다. 능력보다 태도를 보시는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섬기고 최선을 다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는 칭찬을 받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가 지금까지 파묻어둔 달란트를 다시 파헤쳐 그것 가지고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명의 자리에 서게 하옵소서. 작은 것이라도 어떻게 하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오병이어가 될까 고민하게 하시고, 섬기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교회 안팎에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