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강 / 쪼갠 고기 사이로 (15:7-21)

쪼갠 고기 사이로

본문: 창세기 15:7-21

러시아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공산화의 길로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국 한 나라의 공산화에 머물지 않고 주변 여러 나라들을 차례로 공산화시켜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거대한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식 공산주의는 100년을 채 가지 못했습니다. 20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1990년대부터 소련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과거 공산화되었던 나라들이 하나하나 독립해 나갔고, 우크라이나도 그중 한 나라였습니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국민 투표를 통해 소련 연방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의 길을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 결정에 대해 미국과 러시아가 심각한 우려를 표시합니다. 핵무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소련은 우크라이나 지역 안에 핵시설과 핵무기를 다수 배치해 두었기에, 만약 그대로 독립하면 미국, 러시아에 이어 우크라이나가 세계 세 번째 핵 보유국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핵 보유국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핵을 포기하고 서방의 경제 원조를 받을 것인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결국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핵을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1994년 12월, 미국, 러시아, 영국 등 서방 열강들과 우크라이나가 부다페스트에서 양해각서에 서명합니다.

이 양해각서에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이 담겼습니다. 첫째,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보장해준다. 둘째, 군사적·경제적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는다. 셋째, 만일 우크라이나가 심각한 핵 위협에 직면했을 때는 유엔 안보리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유엔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 시대가 자국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대라 하더라도, 강대국들이 전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문서로 서명한 협약을 종이조각처럼 찢어 버리는 일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앞으로의 세계에서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각자도생의 원리에 따라 각 나라는 군비 확충에 열을 올릴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고, 누구의 말도 어떤 이의 행동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과 당신이 하신 말씀을 굳게 지키시기 위해 언약식 조약을 맺어 가십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바뀌고 국가 간 조약도 지키지 않는 험악한 세상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언약을 우리와 함께 지키시고 맺어 가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믿음을 세우시는 언약의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찾아가셔서 하늘을 바라보게 하시고 뭇별을 보여 주셨습니다. "네 자손이 저 하늘의 뭇별처럼 많아지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이후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의 확증입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창 15:7)

하나님께서 이어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땅의 약속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손의 약속과 연동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손을 하늘의 뭇별처럼 많아지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땅의 약속을 하지 않으시면 그 많은 자손들이 어디에 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땅의 약속을 하셨다는 것은 분명히 후손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땅의 약속을 듣고 증거를 요구합니다.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창 15:8)

하나님이 땅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으로 믿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질문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발칙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감히 하나님께 이렇게 증거를 요구하다니, 아브라함이 이래도 되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만을 보시고 이를 의로 여기셨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증거를 내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습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의 이런 태도가 무리하거나 잘못되었다면 하나님이 책망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꾸짖고 타이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절 언급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요구대로 증거를 보여 주시며 언약을 굳게 세워 가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마음 중심과 생각을 다 보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보통 우리가 누군가에게 질문을 할 때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진짜 몰라서 묻는 것입니다. 몰라서 알고 싶어서 진심을 다해 묻고 또 묻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고, 그 땅에 하늘의 뭇별처럼 많은 후손이 살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 저는 믿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싶은데, 하나님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이것이 아브라함의 진심이고 단순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심을 아시기에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질문 중에는 의도된 질문도 있습니다.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나쁜 의도를 가진 질문도 있습니다. 주로 정치인들이 현학적인 질문으로 상대방을 힘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3년을 사실 때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악한 의도의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학자, 대제사장들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다 악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서 때로는 정면돌파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비유로 설명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우회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의 질문에는 악한 의도가 없습니다. 믿고 싶어서, 알고 싶어서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

사사 시대에 기드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대단히 소심했습니다. 밀을 타작하는데 포도주 틀에서 타작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미디안 민족에게 압제받고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넓은 마당에서 밀을 타작하다가 미디안 사람이 보면 빼앗길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자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포도주 틀에서 발로 조금씩 타작했습니다. 그 정도로 소심했습니다. 그냥 착한 인물입니다. 자기 가족 식구들 굶기지 않기 위해서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아주 소시민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옵니다. "큰 용사여"라고 부릅니다. 미디안 민족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을 너를 통해서 구원하겠다 하셨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데, 나는 이렇게 모자란 구석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의 사자를 나 같은 사람에게 보내셨는가? 혹시 내가 악한 사탄에게 속고 있는 건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저도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민족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구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저를 찾아오시는 것이 맞습니까?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양털 한 뭉치를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땅 위에 놓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게 맞다면 하늘의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게 해 주십시오. 주변 땅은 깨끗하게 말라 있고 양털만 적셔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발칙하구나, 네가 무리하구나"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믿고 싶어 하니까 하나님은 증거를 보여 주십니다. 자고 났더니 양털만 촉촉하게 젖어 있습니다. 주변은 다 마른 땅입니다. 그런데도 믿지 못합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한 번 더 묻습니다.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삿 6:39-40)

이번에는 반대로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양털만 마른 채로 있고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내리게 해달라고. 하나님은 두 번째 기드온의 기도에도 그대로 응답하시고 들어 주셨습니다. 믿고 싶어 하니까,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믿고 싶어 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그대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시험하고자 하는 의도입니까? "하나님, 저 정말 믿음 생활 잘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도 확정적인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 저에게도 내 믿음이 굳게 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나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내 마음이 진심이라면 하나님이 왜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브라함의 기도에도 응답하시고, 기드온의 기도에도 응답하시고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며 전심으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이루어 주시고 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엎드려 기도하시는 믿음의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질문을 들으시고 아브라함에게 짐승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창 15:9-10)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저런 짐승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심전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짐승을 준비했고 짐승을 잡았고 짐승을 반으로 쪼갰습니다. 쪼개어진 것을 길 양편에 다 벌려 두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이로 지나갈 만큼 중간에 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한 이유는 그 당시 도시 국가의 왕들이 언약식을 할 때 이런 식으로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의 왕들이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을 잡고 쪼개어 놓고 두 왕이 그 길 사이를 지나갑니다. 만약 우리 중에 누군가가 세운 언약을 지키지 않을 때 여기 쪼개어진 짐승처럼 우리는 쪼개어져도 좋다는 약속입니다. 이른바 이것을 저주 언약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짐승을 준비하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저주 언약의 언약식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아브라함과 저주 언약을 맺으신 걸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런데 시간이 가고 또 시간이 가도 큰 민족은커녕 자식 하나 생기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강력한 대안으로 조카 롯을 후사로 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소돔 땅에 뿌리내리고 정착하고 말았습니다. 대안이 될 수 없었습니다. 자기 집에서 기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후사로 세우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몸에서 날 자라야 네 후사가 될 것이라 말씀하시고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며, 저 하늘의 별들처럼 네 후손이 많아질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은 이제 확정적인 증거를 언약식을 통해서 보여 주십니다.

그런데 원래 약속이라고 하는 것, 언약을 맺으려면 두 집단이 비슷해야 됩니다. 두 왕의 위치가 비슷하든지, 개인 대 개인이라면 서로가 좀 비슷해야 됩니다.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고, 서로가 이익이 되어야 조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이건 불평등 조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옛날 1876년에 우리나라는 강화도 조약을 일본과 맺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는 국가 대 국가가 맺은 정상적인 조약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지나치게 불평등한 조약입니다. 강력한 군 세력을 갖춘 일본과 그 당시 정말 최약소국에 가까웠던 조선이 맺은 조약이 정상적일 리가 없습니다.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을 삼기 위해서 조선을 개항시킨 불평등 조약입니다.

이처럼 지나치게 기울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교점이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아브라함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아브라함은 한계에 갇힌 인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정상적인 둘 사이에 조약이 가능합니까? 내용을 들여다보면 역발상의 불평등 조약입니다. 즉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조약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잃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자손의 약속과 땅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나는 여기 쪼개어진 짐승처럼 쪼개어져도 좋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손해보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이 언약을 맺으면서 건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만 손해보는 약속을 하나님이 이렇게 아브라함과 맺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이런 스스로를 속박하는 불평등 조약을 맺으신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믿고 싶어 하니까, 아브라함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를 원하고,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고 싶어 하니까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을 위해서 하늘 보좌 버리시고, 하나님의 위엄과 창조주의 존엄까지 그것조차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런 언약의 약속을 맺어 주셨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브라함, 이 사람이 나와 맺은 언약을 통해서 믿음이 굳게 반석 위에 세워진다면 창조주의 권위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신의 권위마저 연약한 한 인간과 이런 언약과 조약까지 불사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문에 이렇게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7-28)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그들이 모인 자리에 우리 주님이 찾아가셨습니다. 평안을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다른 곳에 외출 중이었습니다. 도마가 돌아와보니 제자들이 야단이 났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하셨던 말씀대로 그분이 진짜로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 도마가 말합니다. "내가 예수님 손의 못 자국을 만져보기 전에는, 내가 주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기 전에는 나는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또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손을 보여주십니다. "너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만져 보라." 옆구리를 열어서 보여주십니다.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우리 주님이 도마에게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제자 한 사람의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라면 두 번 아니라 세 번 혹은 수십 번이라도 우리 주님은 몇 번이고 찾아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그 한 사람이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만 있다면, 그 한 사람의 믿음을 위해서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내려오셔서 아브라함과 친히 조약을 맺으시고, 한 사람 제자의 믿음을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러 번 다시 찾아오셔서 만져보고 손을 넣어 보라 하시는 주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우리가 믿는 아버지이고 그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를 위한 언약

또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조약을 맺으신 두 번째 이유는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아브라함 이야기를 읽으면서 수천 년 전 아브라함만의 이야기라고 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이야기는 바로 오늘 나의 이야기로 읽습니다. 성경은 하나의 대표적인 샘플입니다. 성경에서 복받은 사람은 "우리도 이 사람대로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복 주신 것처럼 나에게도 복 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성경을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벌 주시는 사람은 "우리도 하나님을 떠나 악하게 살면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에게 벌을 주실 것이다"라는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지고 우리는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수천 년 전 역사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고 위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해서 이렇게 언약을 맺으신 것은 오고 오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이 놀라운 역사와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나에게도 하시겠구나, 나를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는데 그 뒤를 따라가는 우리 각자가 아브라함처럼 순전한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나에게도 이렇게 대해 주시겠구나" 하는 믿음을 가지라고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렇게 하셨는데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역사도 행하지 않으신다, 이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분명히 일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지금도 나에게 살아서 역사하신다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함께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시는 하나님

이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 15:17-18)

쪼갠 고기 사이로 타는 횃불이 지나갑니다. 타는 횃불은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만 지나가십니다. "만일 내가 너와 맺은 땅의 약속과 자손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여기 쪼개어진 짐승처럼 나는 쪼개어져도 좋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땅에 내려오셨고 아브라함 눈앞에서 이 약속의 언약을 성실하게 시행하고 계셨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이 시작되는 첫날입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는 쪼갠 고기로 당신의 사랑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짐승은 두 갈래로 쪼개어졌지만, 우리 예수님은 굵고 단단한 매를 맞으시면서 수십 갈래로 찢겨 나가셨습니다. 로마 병정의 채찍을 맞으시면서 주님의 살이 뜯겨져 나가고 주님의 뼈가 드러났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우리 예수님 손과 발에 못이 박힙니다. 옆구리에 창이 들어갑니다. 그 몸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면서 어떤 요구도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요구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어떤 거래도 어떤 요청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장 사랑한다는 확정적인 표시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아브라함은 이 날 이후로 쪼갠 고기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나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먼저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른 것 또한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등지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서도 안 됩니다. 십자가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며 살아가야 됩니다. 십자가를 기억하고, 십자가의 정신을 깨닫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헌신하고,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죄악으로 걸어가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 믿음의 백성으로 이번 한 주도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간절하게 원하고 믿기를 구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책망하지 않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언약의 주체가 되셨습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손해 보시는 불평등 언약을 아브라함과 세워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오늘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쪼갠 고기를, 오늘 우리에게는 십자가를 주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주여, 이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걸어가게 하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믿음생활 성실하게 감당하도록 도우시고, 뒤로 물러서서 뒷걸음질 치지 않도록,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생활 전진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