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알에 머물다
본문: 창세기 19:17-25
사람을 세울 때는 기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만약 기준이 없다면 인사권자가 자기 생각대로 사람을 뽑을 것이고, 자신의 친분 관계가 작용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혼란스러운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동의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보편타당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국 당나라 시절에는 사람을 세울 때 '신언서판'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관리를 채용했습니다. '신'은 용모가 단정해야 된다는 뜻이고, '언'은 말에 막힘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며, '서'는 글 재주가 있어야 하고, '판'은 판단력이 분명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 네 가지 기준으로 사람을 세우면 국가 관리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기준은 뒤로 갈수록 가중치가 높아집니다. 용모보다는 말이 중요하고, 말보다는 글이 중요하고, 글보다는 판단력이 중요합니다. 생각해 보면 판단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놓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국가의 관리가 된다는 것, 특히 국가 전체를 인도하고 이끌어 가는 최고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을 맡는 자리이며 순간순간 크고 작은 판단을 해야 합니다. 지금 볼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판단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만들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 있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국가 조직을 인도하고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거창하게 큰 조직이나 국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가정을 세우고 이끌어 가는 부모에게도 판단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평상시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위기 상황이 닥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위기 상황이 닥칠 때, 그때야말로 판단력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본문의 롯은 판단을 잘못해서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 전체를 위험으로 몰아넣은 인물입니다. 오늘 롯의 모습을 통해서 과연 우리는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정확한 판단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거부한 어리석은 선택
소돔 성에 두 천사가 왔습니다. 그들은 소돔 성에 닥친 위기를 알려 주었고, 지금 시간이 없으니 빨리 소돔 성 밖으로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이끌어 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롯은 전혀 급하지 않습니다. 머뭇거립니다. 지체하고 주저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급해진 두 천사가 롯과 그의 아내, 두 딸들의 손을 잡고 이끌어 냅니다. 그런데 성 밖에서도 롯은 떠날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여전히 미련이 남고 여전히 머뭇거립니다.
그런 롯에게 천사가 방향을 알려 줍니다.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창 19:17)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될 수 있는 한 멀리 가라는 말입니다. 지금 소돔 성에 곧 유황과 불비가 떨어질 것이니, 위험할 수 있으니 여기서 최대한 멀리 떠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안전을 도모하라는 뜻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미련을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물질에 대한 미련, 그리고 그 성에서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최대한 멀리, 최대한 빨리 떠나가라고 방향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시고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과 롯의 가족에게 또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소돔 성에서 불타 죽는데, 그래도 롯과 그 가족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감사합니다 하고 주신 방향대로 달려가야 하는데, 어째 롯이 마땅치 않아 보입니다.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창 19:18-19)
"그리 마옵소서"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도망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저 산까지는 거리가 너무 먼데, 가다가 재앙을 만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는 태도 아닙니까?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 하셨다면 굳이 천사들을 보내서 여기까지 인도해 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롯과 롯의 가정을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인데,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창 19:20)
소알 성을 말합니다. 자기 눈앞에 보이는 소알이라는 성을 나에게 허락해 주시면 제가 그곳에 가서 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소돔 성에서 최대한 멀리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소돔 성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미련을 두지 말고 돌아보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소알 성에서 보면 소돔 성이 보입니다. 지금 소돔 성문 밖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것 아닙니까? 그곳에서 소알 성이 보이니 당연히 소알 성에서도 소돔 성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척에 있는 가까운 성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순종하지 않아서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드는 불신앙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순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시고 홍해를 갈라 주셨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홍해를 가르게 하셨습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바다에 길이 생겼습니다. 이제 이 홍해를 건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우리가 만약 저 길로 가다가 갑자기 바다가 닫치면 우리는 거기서 다 죽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나는 건너지 못하겠다"라고 했다면, 그 사람들은 거기서 애굽 군대의 칼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매일같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서 거두는 것은 그들이 해야 되는 일입니다. 당연히 거둬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늘에서 은혜를 주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거두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몫입니다. 그런데 "귀찮아서 못하겠습니다. 또 먹여 주십시오. 입에 넣어 주십시오"라고 한다면 그들은 굶어 죽어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와 있으면, 그 은혜를 붙잡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롯과 롯의 가정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유황 비와 불비 가운데서도 살아날 기회를 주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이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멀리 가라 했으면 멀리 떠나야 됩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 했으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데 멀리 가지 않습니다. 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불뱀 사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을 때 하나님은 불뱀을 풀어놓으셨습니다. 불뱀이 원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었습니다. 온몸에 독이 퍼져 갑니다. 다 죽어 갑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장대를 준비하라 했고,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높이 달라 하셨습니다.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보는 자마다 살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놋뱀을 본 사람들은 다 살아납니다. 순종하면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저거 본다고 내가 과연 살까?"라며 차마 보지 않습니다. 은혜가 주어졌는데도 그 은혜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행 14:1-2)
이고니온에 바울과 바나바 두 사도가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반으로 갈라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는 자는 그 말씀 때문에 살아납니다. 영이 살아나고 삶이 바뀝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로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씀 붙잡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롯과 같이 됩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죽음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입만 열면 은혜를 사모한다고 합니다. 은혜 받고 싶습니다, 은혜를 주십시오, 저에게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를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은혜가 내 것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을 붙잡아야 되고 순종해야 됩니다. 말씀대로 따라가야 됩니다. 롯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았습니까? 살 길이 열려 있지 않습니까? 소돔 성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로지 롯의 가족 네 명에게만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살 길이 열렸는데도 그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그 방향으로 가지 않고 "그냥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 여기에 머물겠습니다"라고 해버렸습니다. 그런 자에게 어떻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롯을 한심하다고 여기고 롯을 욕하지만, 사실 우리도 롯과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은 주어졌는데, 그 말씀을 따라가야 생명이 기다린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단 하나도 순종하지 않으니 어떻게 우리에게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그 길을 걸어가지 않는데 말입니다. 롯은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판단을 잘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잠깐만 여기 머물러 있겠습니다"라고 하는 이런 미련한 인생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은혜를 순종으로 받아서 내 것으로 만드는 지혜로운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회색지대라는 착각
그렇다면 도대체 롯은 왜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요? 미련이 많이 남아서 그렇습니다. 소돔 성에 두고 온 자신의 재산, 사랑하는 사람들, 그것 때문에 미련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냥 거기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머물면서 그다음 날 혹은 그다다음 날이라도 하늘에서 유황 비와 불비가 떨어지지 않으면, 나는 당장이라도 소돔 성에 뛰어 들어갈 채비를 하려고 소돔 성이 보이는 소알 성을 달라고 요청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영적으로 예민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그 말씀이 나에게 떨어지면 그 말씀을 내가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은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영적 예민함이 롯에게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의 영적 예민함을 가린 걸까요? 물질에 대한 욕심,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입니다. 욕심이 있으면 눈이 가려집니다. 욕심이 자리 잡고 있으면 영적 예민함이 무뎌집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볼 때 "저 사람은 왜 저런 판단을 할까?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할까?"라고 생각하는 분들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깊은 마음속에는 욕심이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고, 욕심 때문에 영적 판단을 못하는 것입니다.
롯이 지금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 앞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마음에 욕심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소알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그 땅으로 가지 못하고 소알 땅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소알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소알 땅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로 소알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위인들 중에도 소알 같은 땅에 머물러서 인생을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가진 다음에 형 에서가 그를 죽이겠다고 길길이 뛰니까, 어쩔 수 없어서 외삼촌 라반이 사는 땅으로 길을 떠납니다. 루스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서 잠을 청합니다. 꿈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잠이 깨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안전하게 이곳으로 돌아오게 나를 도와주시면 제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겠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자기의 돌 베개에 기름을 붓고 벧엘이라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 아닙니까?
그리고 20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키셨고, 정말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들 열한 명을 두고, 아내 네 명을 거느리고, 수많은 소떼와 양떼, 염소떼를 거느리고 돌아옵니다. 형 에서와의 묵은 갈등도 해소되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벧엘로 돌아와야 하지 않습니까? 약속한 대로 벧엘에 하나님의 집을 지어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숙곳이라는 곳에 정착해 버립니다.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창 33:17)
성경이 그를 이렇게 고발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다"고요.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위하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집은 지었는데, 자기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은 지었는데, 하나님과 약속했던 하나님을 위하여는, 하나님의 집 벧엘을 세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벧엘에 올라가지 않고 그냥 숙곳에 머물러 버렸습니다. 야곱에게 숙곳은 롯에게 소알이었습니다. 그냥 거기 머물러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 이후에 야곱의 가정에 일어났던 문제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하신 믿음의 여정을 떠나야 하는데, 지금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이곳은 죄의 땅이요, 이곳은 악의 땅이니 이곳에 머무르지 말고 떠나라 하는데, 우리는 떠나지 않고 그냥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소알이라는 곳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회색지대입니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도 아니고 세상 나라도 아닌, 그야말로 회색지대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회색지대를 중간지대라고 생각하며 이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롯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지혜로운가? 저 천사들을 설득해서 소알 성에 머물게 되었으니 나는 얼마나 똑똑하고 지혜로운가? 여기에 머물다가 소돔 성이 불타지 않으면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면 되고, 만약 불타 버리면 그때 도망가면 되니까 나는 얼마나 지혜로운가?" 그냥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를 하나님은 정말 싫어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계 3:15-16)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신 말씀입니다. 역겹다는 말씀입니다. "토하여 버리리라." 너는 믿음이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너는 세상에 속한 것도 아니요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도 아니요, 한쪽은 세상에 두고 한쪽은 하나님 나라에 두고 마치 박쥐처럼 이곳저곳을 오가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하는 말씀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이냐, 언제까지 너는 지혜롭다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면서 이곳저곳을 오가며 살 것이냐, 너의 정체를 분명히 밝혀라. 하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롯이 머물러 있는 소알이 안전한 곳입니까? 절대로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진짜 안전한 곳은 그가 악의 도성 소돔 성을 빠져나왔으니, 이제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들어가서 빈손 들고 들어가서 살려 달라고, 용서해 달라고, "제가 정말 하나님을 떠나서 이렇게 빈털터리가 되어서 돌아왔는데 나를 여기에 일꾼으로라도 받아주시면 이제는 하나님 잘 섬기며 살겠습니다"라고 해야 그 가족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소알 성에 머물러 있는 그는 어리석은 사람 중에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지혜롭다고 하는,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중간지대에 살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역겨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네가 소알 성에 머물러 있느냐? 속히 떨치고 일어나라. 이제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그 땅으로 가서 너의 정체를 분명히 밝히고 믿음생활 제대로 하고 하나님 자녀답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길어 봐야 백 년 남짓한 세상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우리 믿음의 정체성을 제대로 밝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해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옳다 인정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판의 주인이신 하나님
이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소돔 성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그것을 소알 성에서 롯이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창 19:24-25)
24절의 주어가 누굽니까? 여호와께서입니다. 이 주어를 끌어가는 동사가 무엇입니까? "멸하셨더라"입니다. 여호와께서 멸하셨더라. 성경은 한 번 더 분명히 합니다.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하늘에서 유황 비와 불비가 내리는데, 미련한 롯과 롯의 가정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현상인 줄 오해할까 봐 하나님이 한 번 더 명확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유황 비와 불비가 내리는 것, 그것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심판이라고. 심판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성경이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는 심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곳곳에서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12-13)
누가 멸한다 하셨습니까? "내가 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주체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실 권리가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창조주이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은 또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관자이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이 세상의 심판자이십니다. 정리해 보면 하나님은 창조도 하셨고, 다스리기도 하시고, 심판도 하시는 분입니다. 창조하신 분이 심판의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세상을 운행하고 다스리고 계시고, 훗날 이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의 주인이 되십니다. 성경이 이것을 우리에게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지혜로운 자는 창조주이시자 주관자이시자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만 무릎 꿇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믿음 없는 백성, 어리석은 롯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 주신 물질을 섬기고 있습니다. 물질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교환을 위한 가치 아닙니까? 화폐라는 것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구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그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잘 섬기고 하나님보다 더 제대로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을 섬깁니다. 사람에게는 벌벌 떨면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비굴하게 엎드리면서 하나님에게는 예배하지 않습니다. 물질 앞에서는 그렇게 겁을 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대놓고 거부합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니엘을 한번 보십시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시작해서 페르시아 시대까지 고위 관직을 역임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다니엘이 처세에 굉장히 능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니엘서 6장을 보면 그가 사자 굴에 들어간 사건이 나옵니다. 왜 사자 굴에 들어갔습니까? 주변의 신하들이 그를 모함합니다. 기간을 정해 놓고, 이 기간 동안 왕이 아닌 다른 신에게 엎드리는 자는 왕을 모독한 자이니 사자 굴에 처넣어 봅시다고 했습니다. 왕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도장을 찍어 버렸습니다. 다니엘은 그것을 알고도 창문을 열고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됩니다. 감옥에 들어갑니다. 사자 굴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사자들의 입을 봉해 버렸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섬기니까 다니엘은 세상 편하게 살았습니다. 사람에게 잘 보일 일도 없고, 사람에게 고개 숙일 일도 없고, 물질 때문에 염려할 일도 없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니까,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소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니까, 사상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잡하게 사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이 사람도 섬겨야 되고 저 사람 비위도 맞춰 줘야 되고, 이것도 걱정되고 저것도 염려되는 이유가, 깊이 깊이 들여다보고 나를 살펴보면 사실 살아 계신 하나님 한 분만 제대로 섬기지 못해서 일어난 일 아닙니까? 하나님 한 분, 창조주이시고 이 세상 주관자이시고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만 제대로 섬기면 세상에 겁날 것이 없습니다. 부디 이런 당당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고 살 길을 열어 주셨는데, 우리는 미련 내서 은혜에 살기를 거부하고 소알 땅에 머물렀습니다. 미련한 롯처럼 그 지대가 안전한 회색지대라고 생각하고 자기 정체를 숨기고 살았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은 이런 인생을 역겹다고, 이제는 토하여 내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알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심판주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신 하나님 한 분만 섬기게 하옵소서. 그 하나님 한 분만 섬기고 세상 앞에 당당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깨 펴고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