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본문: 창세기 19:31-38
세상은 빠르게 변화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우리 주변 환경은 끊임없이 달라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서 예전의 느낌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변하고, 나도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유럽은 18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약 200년에 걸쳐 산업화를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불과 30년 만에 산업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른바 압축 성장, 고도성장을 달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급속한 성장의 이면에는 도시 빈민 문제, 환경오염의 가속화 등 다양한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또 다른 문제점은 국가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사회가 정신없이 변화하다 보니 정부의 정책도 급격히 바뀌어야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인구 정책입니다. 1960년대에는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자"라는 구호가 등장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고, 1980년대에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더욱 강력한 구호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2010년에는 "1보다 2, 둘보다 셋이 좋은 세상"으로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1982년에는 셋째 자녀부터 의료보험 혜택을 폐지했다가, 1990년대 후반에는 저출산 문제로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급속도로 바뀌고 변화하는데,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요? 믿음의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한 가지를 붙잡고 삽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 외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진리의 말씀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살아온 롯의 두 딸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어떤 일을 벌이는지,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도리와 하나님의 도리
롯의 두 딸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까?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생 살았던 소돔 성은 불탔습니다.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들은 그 성에서 함께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희망을 잃고 마치 폐인처럼 굴속에 들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제 희망도 소망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창 19:31)
여기서 '도리'라는 말은 히브리어 '데레크'(דֶּרֶךְ)인데, 길, 여정, 삶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온 세상의 도리'는 결혼을 가리킵니다. "이제 우리는 결혼할 소망이 없구나"라는 절망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지금 롯의 두 딸들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왜 이런 지경까지 왔는지, 왜 가정이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하나님의 도리를 따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우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리를 따라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 문제가 드러나고 잘못이 보입니다. 그러면 그 문제를 고치고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일에 성실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녁까지 있으니라" (수 7:6)
여호수아는 왜 하나님 앞에 이렇게 엎드렸습니까? 인생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도리를 따라 질문했습니다. 자기 인생이 왜 실패했는지를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가져다가 도둑질하고 속이고 자기 물건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수 7:11)
하나님께서 답을 알려주셨습니다. 여호와의 도리를 따라 하나님 앞에 엎드리니, 하나님이 답을 알려주시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애쓰면 아무 일도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이 가장 급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취업이 가장 급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돈 버는 것이 가장 급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도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일어날 때,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 꺼내놓고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일을 다 했습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풀려 갑니다.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해야 할 일보다 급한 일은 없습니다.
롯의 두 딸들은 어디서 이런 태도를 배웠습니까? 부모에게서 배웠습니다. 천사들이 롯의 가족 손목을 잡고 소돔 성문 밖으로 끌어냈을 때, 천사들은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도리를 따르면 최대한 먼 곳으로 달아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자신의 도리를 따라 소알 성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도리를 따르면 뒤돌아보면 안 되었습니다. 미련을 가져서도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평생 일구어 놓은 재산에 미련을 두고 소돔 성을 바라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에게 배운 그대로 딸들도 하나님의 도리가 아닌 세상의 도리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회개 없는 삶의 비극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꾸미고 있었습니까?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창 19:32)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이 공모를 실행에 옮겼다는 것입니다.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창 19:33-35)
성경에 나오는 크고 작은 사건들 가운데 가장 참혹하고 심각한 사건입니다. 감히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정에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몇 가지 짚어 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롯의 문제입니다. 롯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회개하면 세상에 겁날 것이 없습니다. 밝은 세상에서 떳떳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롯은 한 번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겁이 납니다. 그래서 굴 속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굴 속에서 죄가 또 다른 죄를 낳고, 그 심각한 죄는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켜 버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작은 문제부터 큰 문제까지 말씀 앞에 날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커다란 거울이 되어 그 앞에 서면 문제가 드러납니다.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 머리카락이 어떻게 흐트러져 있는지가 보입니다. 그러면 다듬으면 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됩니다. 그래야 더 심각한 큰 문제를 만들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사탄의 밥이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더 큰 죄로 이어지고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켜 그 가정은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둘째, 술의 위력입니다. 술이 얼마나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오늘 말씀이 잘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술을 적당히 마시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가 적당입니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범죄와 문제들에 술이 개입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술 때문이 아니라 술을 마시는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니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움이니라" (잠 31:4-5)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술에 대한 교훈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왕은 판결하는 존재이고 결정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왕의 결정이 잘못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에게 돌아갑니다. 왕이 술에 취해 있으면 법을 잊어버리고 송사를 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포도주를 금하고 독주를 찾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 5:17-18)
바울은 술과 성령을 대비시킵니다. 성령은 균형 잡힌 영입니다. 지성과 감정과 의지, 지정의가 고루 갖추어진 영입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지성으로도, 감정으로도, 의지로도 충만한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 사람은 치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을 만나면 불편합니다. 그 치우친 부분이 모난 부분이 되어 나를 찌르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균형 있게 충만해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술은 이 균형을 파괴합니다. 아무리 학벌이 뛰어나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술 앞에서는 그 지성이 무너져 내립니다.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술은 그 의지를 무색하게 만듭니다. 지성과 의지가 무너지면 결국 본능만 남습니다. 술에 취하면 본능에 충실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탄은 술을 적절하게 이용합니다.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 "적당하게 마시면 된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한 사람들이 결국 술 때문에 자기 인생을 담보 잡히고 맙니다.
자녀는 보고 배우는 존재
셋째, 자녀들은 본 대로 그대로 따라 하는 존재입니다. 롯의 두 딸들은 소돔 성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 성은 물질문명의 최고 도시였지만, 성적으로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동성 간 성폭행이 버젓이 자행되던 곳이었습니다. 보고 배운 것이 그대로였습니다.
롯의 두 딸들은 아버지를 통해서도 배웠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술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약점을 이 두 딸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지성도 의지도 무너지고, 전날 밤 술 마실 때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가 이런 일을 꾸미더라도 아버지는 절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두 딸들은 이렇게 공모했습니다. 아버지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롯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아브라함의 조카였습니다. 한때는 믿음 생활을 함께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딸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롯은 소돔 성의 유지로 살았습니다. 성문 앞에서 재판관 역할을 했습니다. 지성이 충만하고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술만 마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딸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보여준 것이 거기까지이니, 결국 그 딸들은 아버지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았고, 사탄은 딸들을 통해 그 약점을 공략했으며, 롯은 이렇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필요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 6:6-9)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땅은 우상숭배의 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앉았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입으로만 됩니까? 물론 들려줘야 하니까 입으로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면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부모가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보고 배웁니다. 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지도 않았고 행동으로 보여주지도 못했습니다. 그 결과 딸들이 배우고 본 대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롯에게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은 건강합니까? 인생의 위기가 닥치고 어려움이 닥치면 세상의 도리를 따라갑니까, 하나님의 도리를 찾습니까? 문제가 닥치면 부부가 서로 탓하며 싸우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 부부가 함께 무릎 꿇고 기도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인생의 문제가 닥치면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지 못하고 서로 탓만 한다면 자녀가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명절이 되어 친지들이 모이면 하는 것이라고는 화투판과 술판뿐이라면 자녀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어른들이 앉기만 하면 술자리라면, 어린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는 것이 그것이라면, 자라서 그들이 가장 먼저 할 일도 술자리가 아니겠습니까? 어린아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을 던져주고 부모들은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면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겠습니까?
회개를 통한 회복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두 딸들의 배가 불러왔습니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창 19:36-38)
모압과 암몬,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모압이라는 이름의 뜻은 '내 아버지로부터'라는 뜻입니다. 암몬이라는 이름의 뜻은 '내 친족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을 보면 누가 지었는지 드러납니다. '내 아버지로부터'라는 이름은 딸이 지은 것입니다. 출처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암몬'이라는 이름은 롯이 지은 것입니다. 이후로 롯은 성경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롯을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롯을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롯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까? 아브라함의 조카로서 함께 믿음 생활을 하며 수없이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기회를 허망하게 놓치고 말았습니다.
모압과 암몬 자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신 23:3)
하나님께서는 모압과 암몬 자손을 내 백성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 버리셨습니다. 결국 후손들의 앞길까지 막아 버린 것입니다.
창세기 19장은 아주 상징적인 언어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성을 멸하실 때 '엎으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뒤집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비처럼 내리면서 소돔 성의 기초부터 파괴되었습니다. 소돔 성이 엎어지는 것을 롯은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롯은 자기의 심령을 갈아엎어야 했습니다. 평생 동안 그 성에서 수고하고 일하며 재산을 모았는데, 그 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해서 뒤집어지는 것을 보고 자기 심령도 다시 갈아엎어야 했습니다. 회개를 통해서 "잘못 살았구나, 이제는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겠다"고 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자녀들도 삽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자기 마음을 갈아엎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런 비참한 결론에 이르고 만 것입니다.
결론
오늘 창세기 19장 말씀을 여러 번에 걸쳐 살펴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돌이키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실 때, 아주 작은 문제부터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돌이키고 회개하면 우리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롯의 인생을 반면교사로 삼고, 우리가 잘못된 것을 깨달으면 회개하고 돌이켜서 믿음의 백성으로 온전히 회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롯을 통해서 우리에게 거울을 비춰 주시니 감사합니다. 인생의 위기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닥칠 때 세상의 도리를 따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의 도리를 따르는 지혜로운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술 취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성령 충만한 인생이 되어서 균형 잡힌 인격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문제가 있으면 돌이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 인생을 돌아보는 지혜로운 자로,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고 좋은 종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