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강 / 심판하시다-1 (3:14-15)

심판하시다 (창3:14-15)

지난 국회 본회의에서 친권자 징계권이 삭제되었습니다. 이제는 부모라 하더라도, 친권자라 하더라도 자녀를 함부로 체벌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 민법은 부모가 자녀를 체벌하는 것을 법으로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동학대 사건들을 계기로 해서 이제는 법에서조차 부모가 자녀를 체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법조항을 제정하고 혹은 삭제하고 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기 있는 모든 성인들은 과거에 부모님께 매를 맞은 기억이 거의 대부분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따뜻한 식사를 제공해 주시는 것도 부모님의 사랑이고, 비가 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학교 교문 앞에서 자녀를 기다려 주시는 것도 부모님의 사랑이고, 동시에 자녀가 곁길로 가고 바른 길을 가지 않을 때 그때 종아리가 멍이 들도록 회초리질을 하는 것도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그때 맞을 때는 아팠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는 그 부모님의 회초리가 그리워지고, 그때 부모님이 나를 매질하지 않았더라면, 나를 혼내지 않으셨더라면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없었을 텐데 참 감사하다 하는 마음을 이제 성장해서는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표현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 원하는 것 다 들어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 하나도 들어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방으로 모든 것 막아 버리시고, 때로는 징계하시고 꾸짖으시고 견책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그 당시에는 괴로웠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나서 보니까, 철없던 시절에 내가 기도한 것 하나님이 다 들어주셨더라면 나는 과연 지금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까 생각해 보기만 해도 아찔하지 않습니까? 들어주지 않으신 것이, 잘못된 험한 길을 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책망해 주신 것이 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고 고백합니다.

심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판이라는 말만 들어도 얼마나 두렵습니까? 그런데 그 심판 안에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뱀을 심판하시는 장면입니다. 뱀이 에덴에서 하와를 꾀어서 선악과를 따 먹게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뱀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은 분명히 뱀을 심판하시는데, 인간 편에서 보면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그 심판 자체가 우리에게 주시는 크고 극진하신 은혜인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을 깨닫고 기억하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질서를 파괴한 뱀

먼저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여기서 '이렇게 하였다'는 말은 뱀이 여자를 꾀어서 선악과를 따 먹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땅에 있는 모든 짐승보다 저주를 받아서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땅의 흙을 먹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심판하셨습니다.

1-1. 창조의 원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뱀을 심판하신 이유는 뱀이 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키워드가 세 가지 있지 않습니까? 흑암에서 빛으로, 공허에서 충만으로, 혼돈에서 질서로. 하나님은 그 가운데 질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따르면 하나님이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위탁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받아서 대리 통치합니다. 그리고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짓습니다. 동물과 식물은 인간의 통제 아래 있어야 됩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뱀도 사람의 통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뱀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질서 안에 거하지 않고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장난을 쳤습니다.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하와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하와도 또한 하나님 말씀에 굳게 집을 짓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뱀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어기는 뱀, 그 뱀에게 다시 한번 너의 자리는 바로 이 자리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계십니다. 모든 들짐승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배로 다녀라. 평생 동안 흙을 먹을 것이다. 너는 사람의 지배 아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다시금 질서를 명확하게 해 주셨습니다.

1-2.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오늘 이 사건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도 상당히 크게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원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신 말씀의 언약, 그 첫 시작은 십계명이었습니다. 십계명의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두 가지로 요약하셨는데, 하나는 하나님 사랑이요, 또 하나는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였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함께하는 모든 이웃을 함께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축원의 질서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지금도 우리에게 다가와서 속삭입니다. "너, 위로는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먼저 사랑하면 그럼 너는 어떻게 되는데? 너부터 챙기고, 너부터 사랑해야지. 너를 먼저 챙기고 너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면 그럼 너는 나중에 낙오되고 말 것이다." 사탄은 그렇게 우리를 미혹합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질서를 파괴하고 먼저 자기 사랑에 빠져듭니다. 자기애에 탐닉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부터 먼저 하고, 내가 필요한 것부터 먼저 챙겨 놓고, 그다음 이웃도 생각하고, 그다음 하나님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질서 파괴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주권과 말씀의 언약의 질서는 먼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넉넉하게 채워 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지금도 우리를 그렇게 미혹하고 있습니다.

1-3. 아모스 시대의 교훈

그 옛날 역사적으로 수많은 타락한 왕들이 이런 미혹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했던 시절도 그랬습니다. 그는 남유다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에 가서 예언합니다. 남유다는 웃시야가,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굉장히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전쟁에 연전연승했습니다. 무역과 상업에 아주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여러 나라와 무역해서 그 나라에 돈이 마르지 않게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물질의 부를 누리는 만큼 영적으로는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데 그 사랑이 흘러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성전 안에 물질이 가득했는데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궁전 안에는 왕과 고관대작들이 물질을 가득히 누리고 자기 멋대로 부어라 마셔라 하고 살고 있었으나, 그러나 백성들에게 물질과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모스 5장 24절입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정의와 공의가 흐르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물과 강은 흘러갈 때 의미가 있습니다. 물은 흘러야 오염되지 않고, 강의 생명은 흐르는 데 있습니다. 흐르게 할지어다. 성전 안에 갇혀져 있었던 그 모든 물질, 궁전 안에 가두어져 있었던 모든 물질과 탐욕을 이제는 흘려보내라. 성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전이 되어야 하고, 궁전은 백성들을 섬기는 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자기 사랑에 탐닉하고 거기에 빠져 있으면 그것이 바로 타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왕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거기서부터 기울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앗시리아에게 패망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탄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속삭이지 않습니까? 너부터 사랑하라고, 그래야 너희가 행복할 수 있다고.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질서, 그것을 우선적으로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지켜 낼 때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한없는 복을 부어 주신다는 사실을,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최초의 복음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는 하와입니다. 너는 뱀입니다. 뱀의 후손은 곧 사탄의 권세를 말합니다. 그럼 여자의 후손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여자의 후손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진노가 다 드러나 있습니다.

2-1. 이미 이겨 놓으신 싸움

하나님은 질서를 파괴한 사탄 마귀를 그냥 가만히 두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다시금 이 질서를 바르게 세우리라. 그 질서 안에서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는 뱀의 머리, 사탄의 권세를 파괴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할 것이다. 그러나 뱀도 끝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머리가 상하는 것과 발꿈치가 상하는 것은 머리가 상하는 것이 치명상입니다.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은 대세에 지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첫 번째 복음으로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미 이겨 놓으신 싸움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악한 사탄 마귀의 권세를 파괴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권세 아래에 있는 모든 주의 백성들, 주님을 따르는 모든 주님의 자녀들은 결국은 승리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있으면 어떤 악한 사탄 마귀도 우리를 침범치 못할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2-2. 출애굽의 증거

이 약속은 성경을 통해서 구체화되고 확정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여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이나 종살이했습니다. 남자만 60만 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린아이, 여자, 노인까지 합치면 총 200만 명이나 넘는 거대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광야 40년 동안 농사 짓지도 않았습니다. 가지고 나온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셨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고, 목이 마르면 오아시스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이겨 두신 싸움, 믿음으로 발걸음을 전진하기만 하면 무조건 승리하신다는 하나님의 확정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땅에 무혈 입성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7족속이 이미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철제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훈련된 군사들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합지졸입니다. 훈련받지 않았습니다. 무기도 변변치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겨 두신 싸움이니 믿음으로 전진하라, 안 된다 포기하지 말고 믿음으로 그 발을 내디뎌라, 그러면 내가 너희와 함께해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 승리를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나옵니다. 아말렉이 어떤 자들입니까? 사막의 해적이라고 할 만큼 그들은 아주 무섭고 야비한 자들입니다. 금품을 빼앗기는 물론이고 생명도 빼앗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합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이깁니다. 팔이 아파서 손을 내렸더니 이스라엘 군대가 밀립니다. 이 패턴을 정확하게 깨닫고 끝까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손을 내리지 않고 하늘 높이 쳐들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승리를 주시고 아말렉을 진멸하게 하셨습니다.

아말렉보다 여호수아가 잘 나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싸움을 잘해서 이긴 것도 아닙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하신 원시 복음, 너희들이 비록 약하다 할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전진하면 여자의 후손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7장에만 머물러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십자가 보혈을 붙들고 의지하는 자, 이 세상의 어떤 사탄 마귀와 맞서 싸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2-3. 요단강과 여리고성

요단강을 건널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강은 넓고 수심은 깊고 물살은 아주 강합니다. 강물을 보기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웠습니다. 강을 건너려면 상식적으로 배를 만들어서 띄워야 하지 않습니까?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백성들을 성결하게 하라." 뜬금없는 대답이 아닙니까? 강을 건너는 것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몸과 영혼을 성결하게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상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제사장들이 자신의 몸을 성결하게 하고 언약궤를 메고 그 발이 요단강 물에 닿았을 때 강물이 멈춰 섰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그 강을 마른 땅 같이 건넜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 15절,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험산준령을 만난다 할지라도, 어떤 물살 센 강을 만난다 할지라도,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큰 시련들이 닥친다 할지라도 그 시련들에 주눅 들거나 불안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하신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전진하기만 하면 됩니다.

여리고성 전투도 생각해 보십시오. 성문은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놀라운 방법으로 그 성문을 열게 해 주셨습니다. 순종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우리 앞에 요단강이든 여리고성이든 아말렉 군대든 거칠 것이 없고 겁날 것이 없지 않습니까?

2-4. 베드로의 믿음

그런데 우리는 사탄의 권세에 지금도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왜 사탄의 권세에 떨고 있습니까? 사탄이 우리에게 겁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사탄은 우리의 발꿈치 정도만 상하게 할 뿐인데, 우리를 마치 집어삼킬 것처럼 거대한 풍랑을 일으켜서 우리 눈앞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두려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됩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진 사건이 그 사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4장 29절과 30절을 보십시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를 걸어서 제자들이 탄 배로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혼비백산했습니다. 야단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안심시킵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그때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저도 물 위를 걷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배에서 내려 나에게로 다가오라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배에서 내렸습니다. 예수님과 시선을 마주치며 뚜벅뚜벅 물 위를 걸어갑니다.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시선과 베드로의 시선이 하나로 함께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선이 빗겨 나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주님의 얼굴을 보고 자신이 한 걸음 한 걸음 물 위를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바람이 눈에 보입니까?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을 보았다는 말은 바람이 일으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뜻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바람이 베드로의 뺨을 스치고 지나갈 때 그는 두려웠습니다. 바람이 일으키는 풍랑에 그 물결이 베드로의 얼굴에 닿았을 때 그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시선이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풍랑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실체도 없는 바람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 속절없이 물에 빠져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바람은 결코 베드로를 침몰시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려웠기 때문에 물속에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손을 내밀었더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잡아 그를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하셔야 됩니다. 바람은 실체가 없습니다. 결단코 하나님의 백성을 침몰시킬 수 없습니다. 겁만 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에 빠져서 주님과의 시선이 흩어져 버리면, 그때 우리는 다시금 물속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인생을 반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5. 요한계시록의 성취

창세기 3장 15절에 이 최초의 복음의 말씀이 요한계시록에 가면 그대로 성취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9절과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악한 사탄 마귀는 성을 둘러싸고 겁만 줄 뿐입니다. 우리를 해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다 태워 버리고 그들을 불과 유황 못에 던져 버린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창세기 3장 15절의 이 말씀이 계시록에 가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그 피의 공로는 우리를 충분히 구원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우리 앞에 어떤 험산준령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시선을 주님과 함께 맞추며 나아가고 걸어가기만 한다면 결단코 우리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머리를 이미 파괴하셨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그의 머리가 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의 발뒤꿈치를 물고 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발꿈치를 상하게 하다'라는 뜻의 동사 '슈프(שׁוּף)'라는 동사를 쓰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물어뜯어서 피를 흘리고 상처를 주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원어는 오늘 여기서 미완료 동사를 쓰고 있는데 '테슈펜누(תְּשׁוּפֶנּוּ)'라고 쓰여지고 있습니다. 테슈펜누, 미완료 동사는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고 계속해서 물어뜯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 악한 영의 세력들이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따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따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를 공격해서 발꿈치를 공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우리 삶에 사탄의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은 교회를 계속 공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린 이걸 당연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발뒤꿈치를 계속 물어뜯고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이것조차 당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가 전투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싸우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성도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의 군사, 병사라고 말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믿음 안에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 쓰면서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사랑하는 자에게 왜 고난을 받으라고 말하겠습니까? 이것이 성도의 정체성이고 교회가 밟아가야 될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탄은 대세에 지장은 주지 못하지만 끝까지 우리의 발꿈치를 공략하고 물어뜯어서 피 흘리게 하고 상처를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군인이 되어야 됩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고결하게 옷 입고 어떤 상처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 군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군복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면 당연히 상처가 남지 않습니까? 팔이 부러지기도 하고,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총알이 우리의 몸을 관통하기도 할 것입니다. 피 흘리기까지 사탄과의 싸움에서 전투할 것입니다. 그걸 겁을 내면 안 됩니다. 당연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담대하게 나아가야 될 이유는 최후 승리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싸워서 이겨 놓으셨고,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 15절에서 이미 말씀하신 놀라운 약속, 이것이 계시록에서 성취되고 오늘 우리의 삶에서 성취될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고, 결국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요, 하늘의 권세와 하늘의 권능을 붙들고 싸우는 싸움이라는 사실, 이 싸움의 최후 승리자는 결국 우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 꼭 기억하시고,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소중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창조 질서를 어긴 뱀을 심판하셨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님 말씀의 질서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오늘 우리에게 자기 사랑, 자기애에 탐닉하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꾀고 있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자기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도우시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지키고, 그 안에서 복을 누리는 믿음의 백성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주여,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승리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그 승리의 길, 주님께서 확인하셨고, 우리도 그 뒤를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이미 이겨 놓으신 싸움 믿음으로 전진하게 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끝까지 우리의 발꿈치를 물어뜯을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 분명히 싸움 끝에 최후 승리를 확인하는 믿음의 백성들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