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대로 (창 1:26-31)
소설가 김동인은 1920년대와 1930년대 대한민국 소설계를 대표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중에서 인간의 인간성과 휴머니즘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단편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1932년에 발표되었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작중 화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의사이고, 그의 오랜 친구는 서른 두 살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의 20대 시절은 아주 방탕했습니다. 사창가를 드나들었고 술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 대가로 그는 성병을 얻었고, 그 때문에 남자로서의 생식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이 사람은 의사 친구를 두었지만, 의사 친구인 작중 화자도 그를 돕지 못해 안타까워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친구가 아무도 모르게 결혼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의사인 화자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내 될 사람에게 알렸을까? 비밀로 했을까? 그러나 자기 일이 아니니 섣불리 나설 수도, 도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참 시간이 지나서 더 놀라운 소식을 듣습니다. 친구의 아내가 출산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을지 짐작이 되었지만, 함부로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친구가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그것도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그러다가 아이 얼굴을 보라고 말하며, 이 아이가 자기 증조부를 쏙 빼닮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기 양말을 벗습니다. 아기를 둘러싸고 있는 강보를 펼치고, 아이의 가운데 발가락과 자신의 가운데 발가락이 너무 똑같이 닮지 않았느냐고 동의를 구합니다. 그러자 의사인 화자는 이렇게 대답해 줍니다. "자네 발가락뿐 아니라 이 아이가 자네 얼굴까지 쏙 빼닮았네." 그렇게 말해서 친구를 위로하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깨닫습니다. 닮은꼴을 찾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식을 보면 우리와 닮은 모습을 찾고자 합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닮아서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또 그분들의 부모님을 닮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위로 위로 계속해서 올라가면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납니다. 아담은 누구를 닮았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셨고, 이 때문에 아담은 하나님을 닮아서 이 땅에 지음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장면입니다.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와 방향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을 설계하셨을 때 이런 모습으로 살라고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 의도를 제대로 다시 살펴보고, 과연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의도대로 살고 있는지 우리 자신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형상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왜 '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여기서 말씀하시는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땅과 세계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때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 땅에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주권자로 계셨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성령님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계셨습니다. 그래서 여기 '우리'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1-1. 형상의 의미
그러면 우리가 다음에 생각해봐야 할 것은 '형상'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형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형상은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면, 하나님의 겉모습이 우리 속에 혹은 우리 외면 속에 그대로 있다는 말일까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에도 보면 형상을 만드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사람에게 보여 주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시는 형상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히브리어 성경을 읽어보면 '첼렘'(צֶלֶם)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고, 영어 성경은 'image'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즉 하나님의 외적인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 따른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본성을 따라 지음받았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가 만약 태초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태초에 지으신 인간 아담을 만나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담을 본다면,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서, 아담에게서 하나님 당신의 본 모습, 그것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기 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의 본성이, 우리 안의 형상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거듭난 존재가 되었습니다. 거듭났다, 회복되었다 하는 의미는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회복했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가 과연 거듭난 존재라면,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그 모습이 회복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1-2. 삼위일체의 본성
이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차례대로 살펴봐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라고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십니까?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창조의 주권자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본성을 일컫는 단어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성경 전체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혹은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아는 사람들이 우리 자신을 본다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야 합니다. 사랑은 어떤 단어입니까? 사랑은 그 자체로 보면 추상명사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활동할 때, 드러날 때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베풀고, 나누고, 섬겨 주고, 사랑의 수고로움이 그 사람을 통해서 드러날 때, 사랑은 비로소 가치 있는 단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너를 보니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만약 그런 말을 단 한 번이라도 들어 보셨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창조의 주권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저 사람은 참 차가운 사람이야", "저 사람에게는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인생을 하나님의 주권대로, 창조의 섭리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사랑을 느끼게끔 만들어 줘야 합니다. 적어도 내가 하나님의 피조물로 지음받은 존재라면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이 드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특징짓는 단어는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대표하는 한 가지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순종일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 보좌, 저 높고 높은 아름다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예수님께서는 이 낮고 천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셔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33년을 사셨는데, 그 가운데 공생애 3년의 기간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시간들이었습니다. 순종입니다. 예수님을 순종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당신의 뜻과 아버지의 뜻이 충돌할 때, 우리 예수님은 온전히 당신의 뜻을 꺾으시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뜻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주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고 계십니까? 우리의 뜻과 내 생각과 나의 의지와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 그때 어떤 선택을 하십니까? 나의 의지를 전적으로 꺾고 그 의지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창조의 주권대로, 창조의 섭리대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이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하고 싶은 것이고, 말씀 따로 내 생각 따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창조 섭리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불쌍하고 안타까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특징짓는 단어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성령은 거룩의 영입니다. 거룩은 죄를 미워합니다. 죄와 성령은 함께 공존할 수 없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죄가 관영한 곳에 어떻게 거룩한 성령이 임재하실 수 있겠습니까? 성령충만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입니까?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고, 삼위일체 중 성령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그 본성을 따라 지음받았다면 우리 속에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를 좇는 인생을 살지 않고, 성령을 좇아 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음받은 존재 의미이고 존재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형상을 회복했다고 말하면서, 나는 거듭난 존재라고 말하고 그렇게 부르짖고 있으면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파되고 전해지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나에게는 죄가 사라지고 거룩의 영인 성령이 나와 함께 아름답게 거하고 계시는가? 돌아보시고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창조 질서와 주권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1-3. 교회의 형상
교회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믿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 불신자들의 입장에서 교회는 어떤 공간일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건물로만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건물로서의 교회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행실, 행동 그 자체를 교회라고 포괄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인근 각처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을까요?
교회도 당연히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 교회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사랑이 넘쳐나는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에서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파하고, 보이는 사랑을 수고롭게 전하고 있습니까? 그들의 고통에 함께 우리 교회가 동참하고 있습니까? 인근 각처에 가난하고 병들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가 베풂의 정성을 전달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교회가 되고 만 것입니다.
교회가 순종하는 공동체입니까? 물론 교회의 이익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단순하게 생각해서 유익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씀과 충돌한다면 우리는 단호하게 그 이익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교회는 이기적인 집단이야", "저 교회는, 한국교회 모든 공동체가 자기들만의 이익과 유익을 좇는 곳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우리가 잘못 살아오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유익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내려놓고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손해 보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며 순종하는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공동체일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입니까? 죄가 없는 곳입니까? 다툼이 없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교회를 손가락질하고 걱정합니다. "저렇게 다툼이 있고 분열이 있어서야 교회가 어떻게 되려고 저러는가?" 교회가 정말 하나님의 형상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다. 죄가 떠나가고 다툼이 떠나가고 사랑과 순종이 가득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나 우리 한 사람의 인격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부디 이 형상을 회복하는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동역자
26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이 말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 목적은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첫날부터 6일까지 창조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고 통치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을 세워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 전체를 인간으로 하여금 대리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즉 여기서 중요한 하나님의 창조 원리 한 가지가 나오는데, 하나님은 인간을 동역자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주권의 질서 가운데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 원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까지 이어오고 계십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모세를 보십시오. 다윗은 또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함께했던 열두 제자를 보십시오. 그들은 때로는 죄 짓고, 때로는 인간의 약함과 연약함 때문에 무너지는 한심한 존재들 아니었습니까? 죄 지을 때는 하나님이 그들을 채찍질하시고 깨닫게 하셔서 다시 돌이켜 일어나 하나님의 일 하게 도와주셨습니다. 연약할 때는 두 손 잡아 이끌어 세워 주셨습니다. 무릎이 꺾여 쓰러져 있을 때는 위로해 주셨습니다. 고쳐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놀라운 동역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얼마나 죄가 많습니까? 항상 넘어지고 쓰러지고 무너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기다려 주시고 고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함께 손잡고 이 일을 하자, 함께 위대한 일을 이루어 보자."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도 동역자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이 놀라운 것을 우리는 은혜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아는데, 나를 보면 하나님의 동역자 될 자격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창조 시에 약속하신 것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이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창조 주권과 섭리를 결단코 변개치 않으시고 하나님의 동역자로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2-1.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몫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 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동역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까요? 그건 딱 한 가지, 딱 한 가지만 결단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보냄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이라는 그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통치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에게 주셨지 않습니까? 사랑과 순종과 거룩의 본성을 주셨지 않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 열심히 섬기고 열심히 일하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젊은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합니다. 사랑이 열매가 되어 결혼을 합니다. 자녀를 낳습니다. 가정의 부모가 됩니다. 그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대리 통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정의 자녀들을 섬기고 돌보고 키우고 훈육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자녀뿐만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모든 어린아이들을 섬기고 돌봐 줘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유아 세례를 할 때 부모에게만 서약을 받지 않습니다. 함께한 회중들에게도 오른손을 들고 서약을 받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부모 된 마음으로, 같은 마음으로 이 어린아이, 이 어린 생명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보겠습니다, 양육하겠습니다 하는 결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이 땅의 모든 부모가,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의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돌보고 양육하고 섬긴다면, 안타까운 아동학대 사건 같은 일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법과 제도를 새롭게 정비한다고 야단입니다. 그렇다고 똑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적어도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정을 돌보고 섬기고 함께 해야 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어린 생명들이, 이 땅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모든 어린 생명들을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봐줘야 한다는 극진한 책임의식이 우리 속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2. 교회와 일터에서
하나님께서 목회자들에게, 그리고 교회 중직자들에게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교회는 어떤 마음으로 섬겨야 할까요?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면, 그 옛날 예수님 시절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 서기관,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처럼 어떻게 교회를 그런 식으로 이끌고 갈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교회를 그들의 부를 축적하는 치부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연약하고 불쌍한 자, 배우지 못한 자들, 가난한 자들의 고혈을 빨아 먹는 일을 일삼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으로 교회를 섬겼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를 비롯해서 교회 모든 목회자들, 교회 중직자들은 이 교회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이 순종하신 그 순종으로, 성령이 죄를 미워하시는 그 거룩한 마음으로 교회 공동체를 섬기지 않으면, 우리는 크게, 호되게 아버지께 책망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일터는 어떻습니까? 이 일터도 역시 같은 마음, 하나님의 마음으로 크고 작은 모든 책임지는 자리에서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 옛날 19세기, 20세기 초에 서구의 열강들이 제국주의 팽창 정책으로 식민지를 개척했습니다. 그들은 유럽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럽은 기독교 문화가 아름답게 꽃 핀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학살했습니다. 원주민들의 피를 보았습니다. 그들의 탐욕으로 그 땅의 자원을 가져오는 대가로 원주민들을 마구 죽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다면, 내가 속한 모든 곳이 천국이 될 것입니다. 죽어서 가는 나라가 천국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내가 발 딛는 이 모든 공간이 천국이 될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뜻대로 그렇게 살아가시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원복의 의미
2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중요한 말씀,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말씀, 복이 나옵니다. 이 복을 원복(原福)이라고 일컫습니다. 원죄는 들어봤는데 원복은 처음 들어보시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죄는 창세기 3장에 가서야 처음 나옵니다. 원복은 창세기 1장부터 나오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사명을 주시고 복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복의 정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복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복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나에게 결여된 것이 채워지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물질이 필요한데 물질을 주시고, 건강이 필요한데 건강이 회복되고, 자녀 문제와 인간관계 문제로 고민했는데 그런 것들이 다 해결되면 우리는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3-1. 바라크의 의미
하지만 하나님이 태초에 정하신 복은 그런 복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 복은 히브리어 '바라크'(בָּרַךְ)입니다. '무릎을 꿇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무릎을 꿇다'라는 말로 정의하신 이유는 순종을 요구하신다는 하나님의 귀한 뜻을 여기에 포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순종, 성령님의 거룩, 이것을 가지고 우리 각자의 현장에 나가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하나님의 대리자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 거기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 그들에게 하나님은 복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복은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전적으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이 복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2. 순종과 공급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십니다. 29절과 3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한마디로 이 두 구절을 정리하면, 먹고사는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먹고사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주신다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태초에 설계하신 하나님의 설계도입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먹고사는 모든 문제를 걱정하지 마라, 내가 책임진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시든지 저는 그대로 행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순서는, 태초에 정하신 하나님의 이 순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을 다 더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위해서 충성하고 섬기겠습니다. 절대로 그 순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창조 설계가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길 원하십니까? 무릎을 꿇으십시오. 순종하십시오. 말씀 앞에 엎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앞에 성실하게 봉사하십시오. 그러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4. 자연과의 조화
3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대단히 많이 오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는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고, 인간을 창조하신 여섯째 날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셨으니, 인간이 최고가 아닌가? 하나님은 인간을 특별하게 대우하신 것 아닌가?
오해입니다. 큰 오해입니다. 다시 한번 이 구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첫째 날에 빛의 창조부터 여섯째 날 인간의 창조까지를 다 포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6일간의 창조를 보시고 하나님은 보시기에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조화가 깨어지면,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이 파괴되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근심하십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서, 혹은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우리가 자연을 얼마나 많이 파괴했습니까?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얼마나 많이 깨어져 있습니까?
자연은 자연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하나님은 살 공간을 다 허락해 주셨는데, 인간의 욕심, 탐욕으로 말미암아 그 조화로움이 깨어졌습니다. 지구온난화 이 한 가지만 떠올려 보더라도, 인간에게는 큰 재앙이 닥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화가 깨어지면 다가오는 것은 재앙밖에 없습니다. 여름에는 폭염이, 겨울에는 혹한이, 폭염이 있는 곳에는 가뭄이, 혹한이 있는 곳에는 폭설이, 여름에는 구름이 발달해서 가는 곳마다 비가, 태풍이 끊이지 않습니다. 짐승들은 살 곳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벌목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일어난 각종 감염병 사태가 있지 않습니까?
이 자연의 부조화를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자연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주권과 질서를 깨뜨리는 주범이 되는 것입니다. 실천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부터 제대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음 세대에 물려줄 자연의 명분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인간과 자연의 공존, 이 조화, 이 균형이 훨씬 더 큰 가치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고 제정하신 것입니다. 부디 우리와 자연의 조화를 위해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질서와 주권과 섭리를 깨닫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순종과 성령의 거룩으로, 하나님께 보냄받은 그곳에서 대리자로, 대리 통치자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순종하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먹을거리, 살거리를 다 책임져 주십니다.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와 공존 가운데 실천할 것들을 찾고 행하시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을 오늘 우리를 통해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의도와 목적이 이러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모르고 우리 원하는 대로,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순종과 죄를 미워하시는 성령의 거룩으로, 하나님께 보냄받은 곳에서 순종하며 무릎을 꿇고 성실하게 살아야만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탐욕스럽게 살았습니다. 먹고살 것 때문에 염려하고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복을 구하며 먼저 주께 순종하며 무릎을 꿇는 자가 되게 하시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아버지의 영광과 기쁨이 되기 위하여, 자연을 사랑하고 공존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기 원하오니 주여, 우리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