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 안식하시니라 (2:1-3)

안식하시니라 (창세기 2:1-3)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거의 공식적인 용어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법으로 제정되면서 더욱 익숙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2004년부터 주 5일 근무제를 이미 시행해 왔습니다.

주 5일 근무제는 하루 8시간씩 5일을 근무하면 40시간이 되고, 주중 연장근무 12시간과 휴일 연장근무 16시간을 합쳐 일주일에 68시간 이상을 초과하여 일할 수 없도록 규정한 법령입니다. 그런데 14년이 지나 이제는 한층 강화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법으로 정해졌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찬반양론이 있고, 지금도 사회가 이 문제로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업현장과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조치가 아닌가, 지금은 52시간에 얽매여 있을 때가 아니라 더 열심히 일해야 할 때인데 시간을 너무 낮게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이제 이러한 흐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 전 세계에서 주 5일 근무제를 가장 먼저 실시한 나라는 프랑스였습니다. 1936년에 시작되었는데, 이웃 나라 독일이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30년이 지난 1967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 5일 근무제를 먼 나라 이야기로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주 5일 근무제를 넘어 주 52시간이 법으로 제정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젊은 세대의 인식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회사보다는 개인과 가정의 일을 훨씬 더 소중히 여깁니다. 한 세대 이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가정보다는 일터가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직장은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퇴근 이후에 저녁이 있는 삶을 그들은 삶의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워라밸의 핵심인 균형을 우리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그 중심을 찾고 있는지,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질문해 보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학생들은 5일간 학교에 나가고 2일은 쉽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삶이 편안해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말에 학원을 더 열심히 다녀야 하고, 과외도 더 집중적으로 해야 하며, 학생들의 삶은 훨씬 더 빡빡해졌습니다. 젊은이들은 어떻습니까? 경제력은 있으나 부양할 가족이 없는 젊은이들은 불타는 금요일, 이른바 불금을 즐기고 있지 않습니까? 유흥가가 넘쳐 흘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어, 시간은 있으나 경제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더 큰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쉼이 무엇인지, 왜 쉬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안식일을 제정하신 말씀은 안식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왜 쉬어야 하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들려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안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쉼의 이유와 목적이 우리 삶에 그대로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완전한 창조와 안식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께서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시고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루셨다'는 표현이 중요한데, 히브리어 '칼라(כָּלָ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하다가 만 창조가 아니고, 하다가 걸쳐놓은 창조가 아니며, 완전무결하게 흠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창세기 1장의 창조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님의 창조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흑암에서 빛으로의 창조였고, 혼돈에서 질서가 생겨난 창조였습니다. 공허했던 곳에 하나님의 창조 이후 가득 찬 채움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도 창조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아들 그리스도의 순종과 성령님의 죄를 미워하는 거룩한 본성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다스리게 하시는 동역자로 세우셨습니다.

이 사명에 잘 순종하는 자, 이 사명대로 잘 살아가는 자, 그가 바로 복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고 살 걱정 없도록 복에 복을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는 이처럼 완전무결한 창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안식하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의 이 안식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야말로 정녕 쉴 자격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창조 자체가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하게 창조하시고 이제는 편히 안식하셨습니다.

1-1. 사명 감당의 삶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 인간은 흙으로 빚어진 존재입니다. 길게 살아봐야 100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그것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세월은 그보다 훨씬 짧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중에 하나님 나라 갈 날이 가까워져서, 영원한 영혼의 안식에 들어갈 그날이 다가올 때, 우리 마음에 "나는 정말 사명을 다했다.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했으니, 이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겠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고, 그 형상대로 성실하게 다스리며 살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우리는 일평생을 살면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해 왔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평생을 살면서 성실하게 살고,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조금도 어김없이 살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자신 있게 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받은 사명을 열심히 감당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안식을 편안히 누리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를 받아주십시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받은 건강을 죄짓는 데 허비하며, 죄에 종 노릇하며 살아온 인생이라면, 불현듯 종말이 다가온다고 느낄 때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구원을 얻는다 해도 부끄러운 구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하나님께 고개도 얼굴도 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1-2. 바울의 고백

열심히 살아가서 후배들과 이 땅에 남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 인생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6절과 7절을 보겠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제같이 다 부어졌다고 했습니다. 전제는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마지막에 부어드리는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포도주의 색깔이 붉지 않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피를 포도주에 비유한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다 내어 드렸는데, 이제는 마지막으로 내 피까지 하나님께 다 드림받았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바울은 하나님 앞에 사명을 잘 감당하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안식 가운데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3. 하루의 성실함

그런데 우리의 일평생, 이 길고 긴 인생을 어떻게 하면 그처럼 성실하게 살 수 있을까요? 길고 긴 인생을 성실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매일의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의 매듭을 주셨습니다. 하루라는 매듭, 하루가 모여서 일주일, 일주일의 매듭이 모여서 한 달, 한 달의 매듭이 모여서 1년, 1년의 매듭이 모여서 평생이 됩니다.

우리의 하루를 보면 우리의 평생과 너무나 흡사하게 닮아 있습니다. 하루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침에 눈을 뜹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빛이 정오에 우리를 내리쬡니다. 청장년기의 뜨거운 열정입니다. 그런데 태양은 영원히 한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태양은 어느덧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갑니다. 우리 일생도 이제는 병들고 또 병들어서, 죽을 날이, 하나님 앞에 갈 날이 가까워져 오는 것입니다.

하루를 다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나는 오늘 하루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했는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는가? 원수 맺은 사람들에게 원수를 풀고 분을 풀고 살았는가? 과연 이 하루, 오늘 이 자리에 잠들어서 내일 눈 뜨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일 눈 떠보니 그곳이 천국이라 하더라도, 나는 부끄러울 것 없는 오늘 하루, 내 평생을 살았는가?"

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그 성실함이 모여서, 그 매듭들이 모여서 평생이 되는 것입니다. 거창하게 평생을 말할 것도 없이, 하루를 성실하게 산다면, 그 하루를 사명 감당하며 열심히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 없이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루는 어떻습니까? 후회할 것 없는 하루를 살고 계십니까?

사도 바울은 하루를 정리하라는 의미로 이렇게 권면합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을 보겠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이 하루에 모든 것을 다 정리하라는 뜻입니다. 분을 하루 넘겨 품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하루가 곧 우리 인생의 종말의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 하루가 우리의 일평생처럼 최선을 다해서, 이 하루를 성실하게, 진리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6일 동안의 천지창조를 완전하게 이루시고 영원한 안식에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가 우리 인생에 가득 차고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안식의 목적

우리는 또한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안식하셨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피곤하셔서 쉬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신 유일한 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 땅에는 아담 한 사람만 있었습니다. 아담을 위해서, 오고 오는 모든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은 안식하신 것입니다.

2-1. 복되게 하심

하나님의 안식의 목적과 이유를 3절 말씀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하나님이 안식하신 첫 번째 이유는 복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복되게 하셨다'는 표현에 히브리어 '바라크(בָּרַךְ)'라는 원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말은 우리가 1장에서 살펴본 복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바라크'는 무릎을 꿇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복되게 하신 것은 무릎을 꿇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멈춘다는 뜻입니다. 달리는 사람이 무릎을 꿇기 위해서는 멈춰야 하지 않습니까? 걸어가는 사람이 무릎을 꿇기 위해서는 걸음을 멈춰야 무릎을 꿇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무릎을 꿇으라 하신 말씀은 멈추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멈춤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달리기하는 사람이 숨이 턱에 차서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똑같은 방향으로 달리기 위해서 멈추는 것도 멈춤입니다. 그러나 달리던 사람이 "이 방향이 잘못되었구나. 내가 서쪽으로 가서는 안 되고 다시 동쪽으로 가야 하는구나" 하며 멈추어서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가는 것, 이것도 멈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복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릎을 꿇으라, 멈추라 하신 것은 전자의 이유일까요, 아니면 후자의 이유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후자의 이유입니다. 방향을 바꾸라는 뜻입니다. 철저하게 단절하고 멈추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시키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올려 보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했습니다. 430년 동안 종살이하면서 쉬었을까요, 쉬지 않았을까요? 그들 육체의 주인이었던 애굽의 왕 바로는 종들에게 쉼을 주었겠습니까, 주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들이 노예였기 때문에 쉬지 못했을 것이라고, 절대로 쉴 틈을 주지 않고 매일같이 채찍질하며 괴롭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는 그 정도로 어리석거나 우매한 사람이 아닙니다. 먹을 것도 넉넉히 제공했습니다. 잘 먹였습니다. 잘 쉬게 했습니다.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그리워하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가 애굽에서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 구워 먹었던 것, 마늘과 부추를 먹었던 일을 기억하노라.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러지 않습니까? 잘 먹었다는 뜻입니다. 잘 쉬었다는 뜻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애굽의 왕 바로가 그들을 잘 먹이고 잘 쉬게 한 이유는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해서였습니다. 더 많이 생산하라, 더 많이 일하라. 노예들이 기계가 아니고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쉬지 않고 일만 시키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일을 시키기 위해서, 더 많은 생산을 위해서 그들을 쉬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쉼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쉼은 그것과 정반대의 쉼이어야 합니다. 예배를 위한 쉼이어야 합니다. 출애굽의 명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바로에게 "내 백성을 애굽에서 내보내라"라고 하실 때, 출애굽의 명분이 바로 예배였습니다. 출애굽기 5장 1절 말씀입니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절기를 지킬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것이다. 이 말씀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절기를 지키는 이 예배는 애굽에서 430년 동안 일하기 위해서 쉰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배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예배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6일 동안 살아왔던 관성을 멈추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사셨습니까? 죄가 나를 지배하지 않았습니까? 탐욕이 나를 지배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잘못된 관성으로 달려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예배는 그것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잘못된 죄의 관성을 완전히 끊어내고, 이제는 내가 방향을 바꾸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방향대로 달려가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노예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노예의 관성을 끊어내고, 노예의 습관을 끊어내고, 애굽의 바로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네 인생의 주인이시다, 지금까지 달려왔던 그 길이 잘못된 것이니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겨라,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 그래서 멈추는 것,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잘못 드리는 분들은 예배 드리고 나서 한 주 동안 그다음 삶을 더 열심히 살아가려고 결단합니다. 탐욕스럽게 일주일을 살아왔는데 하루를 쉬고 그 탐욕이 더 가속화됩니다. 세상의 가치가 한가득 마음속에 차 있었는데 예배드리고 그 가치가 더 증폭됩니다.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왔는데 예배드리고 나서 그 미움이 더 가중됩니다. 잘못 예배드린 것입니다. 예배드리고 나면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던 것들이 다 멈추어지고 끊어내야 합니다. 무릎을 꿇는 행위가 예배이기 때문에, 달리다가 멈추고, 걷다가 멈추고, 잘못된 방향을 멈추고, 이제는 방향을 바꾸어서 다른 곳으로 달려가는 것,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기 위해서, 이것이 참 복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안식일을 제정해 주시고 "멈추어라, 예배드려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세력은 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려고 나간다 했을 때 순순히 보내주었습니까? 바로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열 가지 재앙이 임할 만큼 그들은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홍해 앞까지 달려왔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홍해 바다까지 뛰어들었습니다. 홍해 바다에 그들이 다 수장되고 나서야 멈추었습니다. 악의 세력, 사탄의 세력은 우리가 죄짓는 관성을 멈추지 않게 합니다. 계속해서 달려가게 만듭니다. 계속해서 이 방향대로 달려가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잘못 살아온 것, 잘못 달려온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끊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멈추라고 한 것입니다.

2-2. 오직 하나님께만

두 번째, 무릎 꿇음, 멈춤의 의미는 바로 하나님 한 분에게만 무릎 꿇겠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인 100명에게 "여러분은 누구를 섬기십니까?"라고 묻는다면, 100이면 100 모두가 다 "하나님을 섬깁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물질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고, 가족을 섬기고, 자식을 섬기고, 내 건강을 섬기고, 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신념과 이념을 섬깁니다. 수많은 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무릎을 꿇어라" 하신 것은 "너는 나 하나님, 너의 창조주이니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보기에 훌륭한 분들입니다. 점잖게 행세하며 다니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물질을 섬기지 않았습니까?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이용해서 돈을 재물 축적의 수단으로 삼지 않았습니까? 성전에 양 파는 자들, 소 파는 자들, 비둘기 파는 자들이 자리를 폈습니다. 그들에게 자리를 허락해 주고 돈을 받은 자들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돈 바꾸는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명절, 곧 예배드리는 것을 이용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은 맘몬을 섬기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돈 바꾸는 자들, 비둘기 파는 자들의 상을 다 둘러엎으시고 내쫓으셨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시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이 곧 예배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진실하게 안식일을 보내기 위해서, 우리가 정말 예배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서 결단해야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한 분만 섬깁니다. 사람도 섬기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영적 권위를 가진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저는 사람을 섬기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 한 분만 섬깁니다. 물질 따위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 한 분만 섬깁니다." 이 결단이 오늘 우리의 결단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3. 거룩하게 하심

또한 하나님께서 안식일의 목적과 의미로 주신 것은 거룩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거룩은 히브리어로 '카도쉬(קָדוֹשׁ)', 구별하다라는 뜻입니다. 다른 6일과는 다르게 하나님이 따로 떼어서 구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신 이유는 특별하기 때문에,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구별하신 것입니다.

옛날에 전기밥솥이 귀하던 시절, 아버지께서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시면 어머니가 아버지 식사를 따뜻한 밥을 사기 그릇에 담아서 아랫목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불 안에서 발장난치지 못하게 엄하게 단속했습니다. 구별한 것입니다. 거룩하게 가장을 위해서, 가장의 식탁을 위해서 거룩하게 구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거룩한 구별로 안식일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바통이 넘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셨으면 우리는 그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피조물의 의무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에서 안식일을 제정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였으니 너희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이 여러분에게 거룩한 날이 되십니까? 다른 날과 구별된 날이 되십니까? 다른 날은 나를 위해서 살았는데, 이날만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적대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아시고 우리 자신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제정하신 그날을 우리도 그날과 함께 하나님 뜻대로 거룩하게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창조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섭리입니다. 이 안식일이 그저 육체의 힘을 회복하고 그다음 다시 나가서 돈 벌기 위해서 쉬는 그날이 아니라, 죄짓기 위해서 다시 육체의 안식과 힘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멈추라, 무릎을 꿇어라. 너는 하나님 나에게만 무릎을 꿇고, 너는 하나님 나에게만 복종하여라. 너는 세상의 모든 죄를 끊어내라. 내가 거룩하게 구별하였으니 너도 이 날을 구별하여 나를 위하여 보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디 우리가 이 안식일의 귀한 의미와 목적과 방향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그 안식일을 제대로 성실하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완전하게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하나님처럼, 우리의 일평생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심판 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때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하루부터 한 주부터 한 달, 1년을 매일같이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안식의 목적이 무릎을 꿇는 날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멈추지 못했습니다. 죄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고, 미움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고, 탐욕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도 멈추지 못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멈추고 방향을 바꾸어서 회개하고 돌이키기 원하오니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옵소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섬기는 안식일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셨는데,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그 안식일을 오염시키며 살았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뜻대로 구별한 이 안식일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복된 날, 성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