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 유혹과 타락-1 (3:1-3)

유혹과 타락-1 (창3:1-3)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하지만 히틀러 뒤에서, 배후에서 활동하며 그의 오른팔이 되고 그의 입이 되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제프 괴벨스라는 사람입니다. 히틀러가 탁월한 카리스마로 독일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사람이었다면, 괴벨스는 그런 히틀러를 디자인했던 사람입니다. 괴벨스는 선전 선동에 아주 능수능란한 인물이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TV 프로그램을 정치 선동에 사용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특기가 하나 있었는데, 백성들의 마음과 심리를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꿰뚫고 사람들이 불평하고 불만스러워하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 당시 히틀러가 급부상하던 시기에 독일 국민들은 절망감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패전국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은 무려 320억 마르크나 되는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만 했습니다. 이 돈이 얼마나 엄청난 금액이었느냐 하면, 당시 독일 국민총생산의 4년 치에 해당되는 금액이었습니다. 독일 국민들은 자포자기했습니다. 우리는 그 돈을 갚을 길이 없고 갚을 능력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가는 인플레이션으로 고공행진을 하고, 백성들은 취업하지 못하여 실업률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도 물가는 그보다 더 빨리 올라가는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괴벨스와 히틀러는 그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안에 우리 민족이 아니면서 잘 먹고 잘 사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유태인들이다." 그 말을 들은 독일 국민들은 급격하게 우경화되어 갔습니다. 유태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괴벨스가 남긴 유명한 말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말이 이것입니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수십 장의 문서가 필요하고 증거도 필요하다. 반박할 때쯤 되면 그때 이미 대중은 선동되어 있다." 무서운 말이 아닙니까? 괴벨스의 특기는 사람들의 불안을 파고들고 불만을 파고드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호도했습니다.

사탄도 역시 우리에게 그와 같이 접근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평들, 불만들을 사탄은 적절하게 이용합니다. 그 불평 불만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서 결국은 사람을 시험에 들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거짓말합니다. 사탄은 그렇게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서 뱀도 역시 사람에게 그렇게 접근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인류 최초의 범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말씀을 기록해 두심으로써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다가오는 사탄의 계략에 잘 대처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영적 누수를 노리는 사탄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은 왜 여자에게 먼저 접근했을까요? 아담도 있지 않았습니까? 아담을 놔두고 왜 여자에게 먼저 접근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설하시고 선악과 금지 명령을 내리실 때 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여자는 아직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아담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 금지 명령을 내리셨을 때 여자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아담이 여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담이 만약 전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도 빠지지 않고 상세하게 전했는지, 제대로 여러 번 가르쳐 주었는지, 혹은 하와가 아담의 말을 정말 제대로 귀 기울여 들었는지 성경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뱀은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했습니다.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하와에게 접근하는 것이 그녀를 유혹하는 데 훨씬 더 유리할 것이라고 뱀은 판단한 것입니다. 뱀은 확률 높은 여자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오늘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나 교회에 영적인 누수현상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열려 있는 곳이 있습니다. 기울어진 곳이 있습니다. 그곳을 사탄은 귀신같이 잘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찾아내고 정확하게 공략해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 영적인 누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기울어진 공간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 공동체도 믿음이 어린 자들을 특별히 더 잘 돌봐 줘야 합니다.

특히 우리 가정에 있는 자녀들, 여러 사정으로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조차 어려워진 자녀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상세하게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들이 믿음 안에서 예배를 잘 드리고 말씀으로 잘 다져져서 그들에게 사탄이 틈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고 돈 들여서 공부시키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그것은 바로 그들의 영적인 건강입니다. 교회 공동체에도 믿음이 어린 지체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들에게 말씀을 잘 가르치고 양육해야 합니다. 사탄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 한 사람이 무너지면 곁에 있는 사람도 함께 무너집니다. 결국은 가정 공동체 전체가 사탄의 밥이 됩니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불행은 곧 나의 불행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2. 말씀을 왜곡하는 사탄

2-1. 하나님의 축복을 지우다

이제 뱀이 여자에게 말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한번 봐야 합니다. 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창세기 2장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를 네가 임의로 먹으라, 네 마음대로 먹으라는 뜻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동산의 나무를 다 허락하셨습니다.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99퍼센트의 축복을 빼버렸습니다.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너희에게 많은 것들을 허락하셨구나, 하나님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금지된 것 한 가지가 마치 전체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실 우리에게 한두 가지가 금지되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우리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잘 빠집니다. 모든 것이 다 허락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먹고 누리고 가지고 즐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가 타고난 권리처럼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복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직 한두 가지 금지된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내 인생은 이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망한 인생이라고 자기 인생을 저주하고, 함께하는 사람을 불평하고,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탄은 그 틈새를 파고들어 옵니다.

이런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명약이 한 가지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명약인데, 사탄의 틈새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는 감사밖에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 우리 가정과 일터와 교회 공동체, 나에게 주신 건강,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게 하신 사람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는 적극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만약에 하와가 뱀이 이렇게 자기를 유혹해 올 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을 한번 보라, 이 모든 동산의 나무 열매를 나와 아담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라고 말했더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한 가지만 금하셨는데 이것 때문에 하나님 주신 모든 것들을 나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더라면 뱀은 유혹을 멈췄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사탄은 결단코 유혹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감사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한다면, 사탄이 어떻게 우리를 틈탈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우리가 시험에 드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 마음이 분주하고 힘들고 어려운 이유는, 여전히 사탄의 시험에 계속 걸려 넘어가는 이유는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2-2. 절대 명령을 상대화하다

1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우리말 "하시더냐"로 번역된 원어를 보면 '아마르'(אָמַר)로 되어 있습니다. '말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더냐"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뱀의 이 말은 굉장히 무서운 독을 숨기고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절대 명령을 상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2장 16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하나님은 "명하여 이르셨다"고 합니다. 원문을 보면 '차바 아마르'(צָוָה אָמַר)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뱀은 '차바'라는 말을 빼버렸습니다. '아마르'만 남겨 두었습니다. "명하여 이르셨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상대적인 인간의 말로 격하시켜 버렸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를 대충 살아도 되는 문제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은 이렇게 오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것은 우리에게도 다가오는 사탄의 시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예수 참 별나게 믿는다"고, "세월이 변하고 시대가 바뀌었는데 너는 왜 그렇게 변하지 않고 예수를 그렇게 믿느냐"고, "다른 사람들은 대충대충 믿어도 잘 먹고 잘 사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사느냐"고, "주일날 한 번만 교회 가도 되는데 너는 왜 그렇게 새벽기도도 가고 수요기도회도 가고 금요일도 기도하고 매일같이 그렇게 기도하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사느냐"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 내가 한심해 보입니다. 다른 사람은 대충 믿어도 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내가 참 못난 사람 같아 보입니다. 다른 사람은 대충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그렇게 살아도 변하지 않는 인생을 보면, 나아지지 않는 내 삶을 보면, 돈도 많이 벌지 못하는 내 인생을 보면 원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사탄은 이런 식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 '차바 아마르'를 '차바'를 빼버리고 '아마르'만 남겨둔 사탄의 전략, 오늘 우리에게 사탄은 이렇게 문화적으로 접근합니다. 문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동성애를 한번 예로 들어봅시다. 성경 말씀에 동성애는 하나님이 죄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오경을 보면 곳곳에서 하나님이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라고, 그렇게 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신약 성경 말씀에도 바울서신에도 동성애는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죄라고 기록된 말씀은 세월이 지나도 죄입니다.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하나님이 죄라고 말씀하신 것이 죄가 아닌 것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한번 죄라고 말씀하신 것, 명하여 이르신 '차바 아마르'의 말씀은 여전히 세월이 지나도 '차바 아마르'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세상의 문화를 한번 보십시오. 영화나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십시오. 동성애를 얼마나 미화하고 있습니까? 동성애자들이 핍박받는 소수로 그려집니다. 동성애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교회 공동체로 그리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의 그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게 미화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마치 오늘 세상의 문화는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을 문화적인 왕따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중심 집단으로 교회를 놓고 있습니다. 세상과 교회의 대척 관계로 몰아가고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문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렇게 말했지 않습니까? 이사야 40장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은 풀처럼 꽃처럼 마르고 시듭니다. 세월은 이렇게 마르고 시들어 가면서 변해 갑니다. 시대는 과거, 현재, 미래로 급속도로 변해 갑니다. 그러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부릅니다. 진리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변함없는 말씀, 그것이 바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과거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명하여 이르신 '차바 아마르'의 말씀은 4차 산업혁명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이 시대에도, 앞으로 5세대 우리 후손들의 세계에도 영원토록 변함없는 유일한 한 가지 말씀, 이 말씀이 진리의 말씀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세월에 따라 흔들린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맞춰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말씀을 가감하는 죄

3-1. 말씀을 빼고 더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자는 뱀의 이 유혹에 넘어가 버립니다. 3절을 보십시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행하게도 여자는 '아마르'만 남겨 두었습니다. 순서를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은 원래 '차바 아마르'를 말씀하셨고, 뱀은 그중에 '명하셨다'는 말씀을 빼버렸습니다. 그 말을 받아서 여자도 역시 '차바'를 빼버리고 '아마르'만 남겨 두었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 인생에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 위에, 우리도 변함없는 그 말씀 위에 집을 짓고 그 말씀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이제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빼기도 하고 더하기도 해 버립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 '먹다'라는 동사가 '아콜'(אָכַל)이라는 동사입니다. 그런데 원래 원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원본을 보면 '아콜'이라는 동사가 두 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2장 16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임의로 먹되" 이 말씀이 원문에 보면 '아콜 토켈'(אָכֹל תֹּאכֵל)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콜'이라는 동사가 형태를 바꿔서 '토켈'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아콜 토켈' 이 말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먹고 또 먹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너희가 배부를 때까지 먹고 먹고 또 먹어라.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양식이다. 원하는 대로 와서 먹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그중에서 한 단어를 빼버렸습니다. '아콜'만 남겨 두었습니다. '먹되'라는 말씀만 남겨 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감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모릅니다.

3절을 보시면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과연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원본을 보겠습니다. 2장 17절을 보십시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말씀을 더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원문에서 보면 '모트 타무트'(מוֹת תָּמוּת)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트'(מוּת)는 '죽다'라는 뜻입니다. '모트 타무트'를 직역하면 "죽고 또 죽으리라"라는 뜻입니다. "반드시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무트'라는 동사를 한 번만 쓰고 있습니다. "죽을까" 하나님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모트 타무트", "죽고 또 죽으리라" 말씀하셨지만, 여자는 "죽을지도 모르겠다"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멋대로 가감해 버린 것입니다.

3-2. 가감의 심판

여러분,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더하는 자, 감하는 자를 이렇게 심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말씀을 더하면 재앙을 더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빼면 생명나무와 그 기록된 이름에서 빼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재앙 중에 이보다도 무서운 재앙이 있습니까? 얼마나 무서운 심판인지,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마음과 방식을 다시 한번 돌이켜 봐야 합니다.

만약 오늘 여러분들에게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한 적이 있습니까? 감한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할 생각도 없고 뺄 생각도 없습니다. 저는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이렇게 다들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런 죄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자기 뜻대로 취사선택하는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복 준다는 말씀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집에서도 복을 받고, 내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자손 만대 큰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런 말씀은 얼마나 잘 외우는지 모릅니다. 기록해 둡니다. 가정 곳곳에 붙여 둡니다. 자녀들의 가방에도 넣어 줍니다. 마치 부적처럼. 그런데 반대의 말씀을 우리는 수용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지라는 말씀, 고난당하라는 말씀, 순종하라는 말씀, 헌신하라 충성하라는 말씀은 부담스러워 피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처럼 너희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을 우리는 못 들은 척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잘 따라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척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복 준다는 말씀은 내가 원하고 그 말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만, 십자가 지라는 말씀은 못 본 체하고 못 들은 체합니다. 그 길을 걸어가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은 마음껏 원하고, 부담스러운 말씀은 적극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태도, 성도들의 그런 태도를 잘 알기 때문에 강단에서도 복을 선포하는 말씀이 넘쳐납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강단에서 "여러분,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하다 보면 지옥불에 불쏘시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설교가 사라진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만약 강단에서 지옥을 선포하지 못한다면, 그 강단은 죽은 강단이요 그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구원이 있다고만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도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없다면, 그 교회, 그 강단은 죽은 강단이나 다름없습니다. 목회자나 성도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는 대로 취사선택하고, 성도들의 입맛에 맞고 귀에 맞는 말씀만 전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탄에게 놀아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3. 말씀 위에 서라

하나님의 말씀은 더하거나 빼거나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나에게 부담이 되는 말씀이건, 이 말씀이 나에게 가슴 벅찬 말씀이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다 수용하고 받고 그 말씀대로 따라가야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말씀을 취사선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사탄은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영적인 누수가 있는 곳, 영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곳,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곳에 찾아옵니다. 가정을 잘 살펴보십시오. 교회 곳곳을 살펴보십시오. 기울어져 있는 곳을 북돋아 주시기 바랍니다. 누수가 있는 곳을 메워 주시길 바랍니다. 사탄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명령을 상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한 불변의 말씀으로 붙들고,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 절대적 주권의 말씀으로 붙들고 사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때 그 길 끝에 구원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