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강 / 유혹과 타락-2 (3:4-6)

유혹과 타락-2 (창세기 3:4-6)

영어 단어 중에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체험적인', '경험적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심리학 용어로 바뀌게 되면 뜻도 조금 달라집니다.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여러 요소를 두루 살펴서 결정해야 하는데, 그러한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이전에 개인의 체험과 경험이 개입하여 판단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를 '휴리스틱'이라고 말합니다.

두 가지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가전제품을 가정에서 구입한다고 할 때 어떤 과정을 통해서 가전제품을 구입하십니까? 성능이 좋은지, 우리 가정에 꼭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이 가전제품을 살 만한 경제적 여력이 있는지, 가성비도 따져 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가운데 휴리스틱이 발동하게 되면 브랜드를 맹신하게 되든지, 무조건적으로 불신하게 되든지, 근거 없는 소문에 휩싸여서 잘못된 판단으로 가전제품을 구입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선거할 때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4년에 한 번씩 치르는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공약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이 지역을 위해서 일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인지 제대로 살피고 따져봐야 합니다. 그런데 중간에 휴리스틱이 발동하게 되면 그 사람의 학벌과 외모와 목소리, 그리고 이미지 등에 좌우됩니다. 그러면 선거를 망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가전제품을 사는 것이나 선거는 그다지 큰 피해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물질적으로 조금 손해를 보거나 4년 뒤에 선거를 다시 하면 됩니다.

그런데 영적인 판단에서 휴리스틱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어떤 영적인 판단을 내릴 때 하나님의 불변하고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제대로 판단하고 제대로 살펴야지, 그렇지 않고 개인의 체험과 경험이 앞서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영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최초의 인류 아담과 하와가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의지를 따라서 결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말씀에 뿌리 박고 있지 않아서 그들은 결국 에덴을 상실하게 됩니다. 오늘 이런 불행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교만하지 않게 사는 것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1. 뱀의 유혹 전략

뱀은 여자를 우선 공격했습니다. 성공 확률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직접 듣지 못한 여자를 유혹했고, 하나님의 절대 불변의 말씀을 상대화시켰습니다. 여자는 거기에 호응합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기도 하고 더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뱀은 확신을 가졌습니다. 떠보았는데 여자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몰랐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뱀은 확정적인 말을 던집니다.

4절을 보십시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 말씀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는데 어떻게 뱀이 이렇게 뒤바꿔서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뱀이 이렇게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까닭은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틈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쩍슬쩍 던져 보았는데 잘 모른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뱀은 이제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180도 뒤바꾸어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할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여자는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틈을 보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말씀에 틈을 보이면 그 틈으로 반드시 치고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약점을 잘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여기서 단호하다는 것은 사탄의 멱살을 잡으라는 말이 아니고, 우리의 완력을 쓰라는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말입니다.

1-1. 예수님의 대응

사탄은 예수님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배가 얼마나 고프셨겠습니까? 사탄은 이것이 예수님의 약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가서 주님을 시험합니다.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님의 자존심도 흔듭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신명기 8장 말씀을 가지고 응수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예수님은 말씀에 빈틈이 없었습니다. 완벽한 말씀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두 번 다시 이런 내용으로 예수님을 시험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견고한 집을 짓고 계십니까? 혹시 빈틈이 있어서 사탄이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농락하고 휘두르는데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사탄의 꾀에 빠져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1-2. 말씀으로 대처하라

시중에 나가보면 이단 대처법이라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조금만 해보아도 이단이 어떤 식으로 우리를 미혹하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단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신천지도 있고, 통일교도 있고, 여호와의 증인도 있고, 안상홍 증인회도 있습니다. 그 외에 기타 등등 수많은 이단들이 있는데, 그 이단 대처법만 봐서는 위험합니다. 거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그 이단 대처법 책을 보면 이단들이 어떤 식으로 평신도들을, 길 밖의 성도들을 미혹하는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책자로 발간되었으면 이단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들은 더 발전하고 더 진화합니다. 우리가 대응하는 만큼 그들은 또 다른 전략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항상 뒤쫓기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치다가 볼일 다 보는 것입니다. 항상 그들의 뒤꽁무니 쫓느라 바쁜 인생입니다.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이단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 우리 것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깊이 있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단에 대해서 공부하는 건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제대로 알고 그 위에 견고한 집을 짓고 있으면, 이단이 아무리 간판을 바꿔 달아도, 이단이 어떤 식으로 그들의 모습을 바꾸고, 세월이 바뀌어서 그들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공격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들어보면 '이건 아니구나', 들어보면 '이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구나' 충분히 우리는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매일같이 말씀을 읽고, 말씀을 입에 붙이고, 말씀을 암송하고,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악한 사탄 마귀에게서 우리 자신을 지키는 지름길입니다.

그 옛날 에덴에서도 사탄이 뱀으로 사람을 유혹한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사탄은 여전히 유혹의 손길을 던집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무섭지 않습니까?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지금도 우리 주변에 사탄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누구를 삼킬까 틈을 엿보고 있습니다. 틈을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틈새를 메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악한 사탄 마귀도 우리를 감히 침범하지 못하도록 견고한 말씀의 아름다운 집을 지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선악과의 참된 의미

이제 사탄은 조금 더 진도를 나갑니다. 뱀은 없는 말까지 만들어 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5절 말씀을 근거로 창세기 1장과 2장을 아무리 찾아봐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뉘앙스를 가지고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뱀이 없는 말을 지어낸 것입니다.

뱀의 전략을 한번 보십시오. 뱀은 처음부터 없는 말을 지어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킵니다. 하나님은 "명하여 이르셨다" 하셨는데 뱀은 거기서 "명하셨다"는 사실을 떼어버렸습니다. 거기에 여자가 넘어갔습니다. 여자도 역시 "명하셨다"는 말씀을 빼버렸습니다. 거기서 사탄은 확신을 가집니다. 뱀은 확신을 가지고 거짓 독소를 주입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 다음에는 없는 말까지 지어냅니다. "선악과 열매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 선악을 알 줄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선악과 나무를 독식하기 위해서 너희에게 보여 주지 않은 거야."

뱀은 그 논리로 여자를 미혹했습니다. 뱀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하나님이 굉장히 나쁜 분이 됩니다. 하나님 혼자 이렇게 좋고 아름다운 열매, 선악과 열매를 독식하기 위해서 사람의 접근을 막으신 것이 됩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하와는 얼마나 하나님에게 서운했을까요?

2-1. 하나님의 창조 의도

그런데 하나님이 과연 정말 그러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과 2장을 통해서 인간을 창조하신 과정을 한번 다시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흙에 불과한, 먼지밖에 되지 않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우리를 살아 움직이는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피조 세계를 인간에게 위임하셨습니다. 대리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이 선악과 열매를 감추어 두시고 "네가 이걸 먹는 날에는 나와 같이 될까 봐" 하나님께서 그걸 감춰 두시고 거짓말하셨겠습니까? 뱀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굳게 서 있지 않으면 뱀의 이간질에 놀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2-2. 선악과는 축복이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과연 선악과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과연 정말로 선악과를 두신 이유가 무엇인가, 선악과는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사람을 위한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선악과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선악과는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악과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동식물의 이름을 짓습니다. 자기 맘대로 에덴을 다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이 들어옵니다. 자기도 모르게 이 땅의 주인이 스스로인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그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바라보면 '그렇구나, 내가 이 에덴동산을 다스리지만 그러나 나를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고,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만들고, 하나님과 인간의 창조주와 피조물의 질적 차이를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선악과입니다. 새는 어디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습니까? 공중을 날아다닐 때 가장 자유롭지 않습니까? 물고기가 물속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습니다. 물 밖을 넘어서면 물고기는 죽음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선악과 명령을 지킬 때, 그때 가장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선악과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창조하셔서 사람을 미혹하고 시험에 들게 해서 선악과를 따 먹어서 오늘 우리가 이 고통 가운데 살게 하셨는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악과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옛날 에덴에서도 선악과를 두셨는데, 하나님이 오늘 나라는 인간에게, 내가 살아가는 이 아름다운 에덴이라는 정원에 나를 위하여 두신 선악과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2-3. 오늘의 선악과

하나님이 저에게도 선악과를 주시고, 여러분 각자에게도 선악과 나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선악과는 저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서 담임 목회를 맡은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담임 목회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이 여러 가지가 있었고 제가 여러 말씀을 붙잡고 왔는데, 그 중에 중요한 말씀인 선악과라는 말씀을 붙잡고 왔습니다. 하나님은 담임 목사가 되는 저에게 시간이라는 선악과를 주셨습니다.

부목사 시절에는 시간 활용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위임받은 목회를 감당해야 하고, 설교 사역도 하고, 목양도 해야 합니다. 교회가 정한 시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담임 목사가 되면 시간에 대해서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주중에 담임목사가 사용하는 시간을 누가 통제하겠습니까? 아침에 출근할 시간, 점심 먹고 집에 들어갈 시간을 누가 통제하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시간을 함부로 사용한다면 그건 하나님께 위임받은 담임 목회자의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이 아름다운 교회의 대리 통치권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이곳은 제가 하나님이 아니고, 담임목사가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공간이고 저는 대리 통치로 위탁받은 존재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설교하고 목양하고 목회하지만, 그러나 저는 담임 목사인 제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합니다.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매 순간 매 순간 시간을 허투루 써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성도들의 삶을 돌아보고, 심방하고, 성도들의 아픔과 함께하고, 성도들의 즐거움과 함께하는 생활,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저는 선악과를 지키는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나가야 합니다. 만약 제가 담임 목사로서 시간의 선악과를 제거하는 순간, 내가 이 교회에 하나님이 되려고 생각하는 순간, 저에게도 지옥이 시작됩니다. 교회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선악과는 그러므로 저에게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악과가 다 있습니다. 물질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땀 흘려 벌고, 내가 수고하여 노력하고,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취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이 내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 아닙니까? 물질의 선악과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명확하게 고백하지 않으면, 우리는 물질의 선악과를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 와서 귀한 헌금을 드리는 것은 이 물질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는 물질의 선악과를 손대지 않겠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 동안, 삶을 마치는 그날까지 저는 물질로 하나님을 힘들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런 결단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가정이 내 것입니까? 가정의 부모가 자녀를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대리 통치로 위임받은 가정 아닙니까? 가정에서 부모가 돈을 벌어 온다고 자녀를 함부로 매질해도 됩니까? 자녀들에게 함부로 막말을 퍼부어도 됩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절대로 따 먹어서는 안 되는 선악과가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과 화합을 위해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습니다. 그 선을 지켜나갈 때 가정이야말로 진정한 에덴동산이 됩니다. 그걸 따 먹으면 내가 이 가정에 하나님이 될 것 같지만, 뱀은 그렇게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지만, 그러나 그 선을 넘어가는 순간 나도 불행하고 식구들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세계사 역사를 한번 보십시오. 주권자인 왕에게 하나님은 백성을 주셨습니다. 백성은 곧 천심입니다. 민심이 곧 천심 아닙니까? 백성이 곧 왕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악과입니다. 그걸 제거하고 백성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순간 그 나라는 이미 그때부터 쇠락의 길을 걸어갑니다. 역사는 그렇게 해서 흘러가고 그렇게 해서 나라는 다 망해 왔습니다. 세계의 위대한 제국들이 왜 망했습니까? 그 왕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악과를 탐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제거하면 자기가 하나님이 될 줄 알았지만, 사탄이 그렇게 그를 미혹했지만, 그러나 금을 넘어가서 선악과를 제거하는 순간 자기 스스로도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선악과가 저주입니까? 축복입니까? 선악과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의 선물입니다. 이 선악과를 잘 지켜 나가시길 바랍니다. 이 선을 지키고, 이 선악과를 내가 잘 지켜나가는 순간 우리는 영원히 에덴에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힘들고 악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러나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악과 나무를 손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굳게 서고, 선악과 손대지 말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그러나 그 교만을 자극하는 사탄의 말에 현혹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듣는 것의 중요성

이제 하와가 뱀의 말에 현혹된 이후에 선악과를 바라보니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듣지 말아야 할 뱀의 말을 들었습니다.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믿음이 결정되고 방향이 결정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놓고 뱀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후에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기회만 있으면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요한계시록을 보면 교회마다, 대목마다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들으라는 말입니까? 로마서 10장 17절, 바울이 로마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진리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이 사람들,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의 말을 듣고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는데, 그 말씀은 듣기 싫어하고 주변의 가까운 사람, 피조물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까? 저 사람이 나를 구원해 줄 것 같습니까? 사람은 결단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의 달콤한 말, 우리 인생에 달콤한 말을 속삭일 뿐 우리 영혼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진짜 들어야 할 말씀, 정녕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말씀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3-1. 쉐마의 명령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말씀은 '쉐마(שְׁמַע)' 말씀입니다. 신명기 6장 4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여기 '쉐마(שְׁמַע)'가 있습니다. 쉐마라는 말의 원형을 가져오면 '샤마(שָׁמַע)'입니다. '듣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들을 낳아서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이 샤마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래서 '시몬'이라는 이름을 자주 지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몬 베드로도 그의 부모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낳고 이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잘 듣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시몬'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마에도 이 말씀을 붙이고, 손목에도 붙이고, 들어가나 나가나 '쉐마 이스라엘'의 말씀을 암송했습니다.

듣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듣는 것은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지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봅니다. 뱀의 말을 들으면 뱀의 시각으로 세상을 봅니다. 뱀의 시각으로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선악과를 보면 '저건 내가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임을 우리는 깨닫게 될 텐데, 그런데 불행하게도 뱀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 뱀의 시각으로, 전도된 가치가 결국은 그녀의 시선을 뒤바꿔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어떤 시선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가 바른 가치관, 바른 시선을 가진다는 것은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주의 말씀 사랑하시고,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듣고,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4. 결론

불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여자는 자기 손을 들어 선악과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아담도 저항하지 않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받아먹고 말았습니다. 충격이지 않습니까? 아담은 말씀의 최초의 담지자입니다. 선악과 금지 명령을 직접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신앙생활 30년 40년을 하건, 3대 4대째 믿음 생활을 하건,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가장 먼저 말씀을 받은 것이 훈장이 될 수 없습니다. 말씀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듣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매일같이 시험을 던져 주는데, 우리는 그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노출되어 있어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사탄보다 우리가 더 부지런해야 할 것 아닙니까? 사탄보다 우리가 더 성실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 그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단호하게 대처하시고, 틈을 보이지 마시고, 말씀 위에 좋은 집, 단단한 집, 튼튼한 집을 지으시고, 교만하지 마시고, 선악과가 우리 인생의 축복임을 깨닫고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악과를 꼭 붙들고 지켜 나가시길 바랍니다.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좋은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 백성답게 승리하며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