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신 대로
본문: 창세기 21:1-7
사회 소요지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폭동, 대규모 시위, 약탈, 심지어 정부 전복 시도까지 이러한 사회적 불안 요소를 수치로 나타낸 개념입니다. 198개국 중 현재 101개국에서 사회 소요지수가 상당히 불안정하게 높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2016년에 조사를 처음 시작한 이래로 매년 보고서가 발표되고 있는데, 그중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합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뿐만 아니라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고 여겨졌던 유럽연합 국가들 중에도 사회 소요지수가 상당히 높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수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식량 문제입니다. 실제로 2008년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것은 바로 식량 문제였습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독재정권이 아랍 여러 나라에서 무너지고 사회적 소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문제는 현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는 더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성인 남자가 하루에 소모하는 빵이 약 1kg 정도였습니다. 그때 프랑스 사람들이 그 1kg의 빵을 사려면 자기가 버는 돈의 88% 정도를 지출해야 했습니다. 돈을 벌어서 먹는 데 88%를 쓴다면 자녀교육과 그 외 여타의 비용을 쓰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모자랐을 것입니다. 그만큼 인플레이션이 극심했고 흉작과 기근으로 사람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프랑스 대혁명이 촉발된 것입니다.
여기에 더 기름을 끼얹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정치인들의 말입니다.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정권을 주면, 나를 뽑아주면 이런 경제 문제는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믿고 그 사람을 뽑아줍니다. 그런데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전혀 나아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삶은 어렵고 이전보다 오히려 더 피폐해지고 더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회는 더 불안정해집니다. 이토록 사람의 말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사람들이 이런 약속 저런 약속을 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경험해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말 저런 말로 약속을 하지만 내가 한 말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은 아마 얼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 당신이 하신 말씀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응답하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을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는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시고 돌보시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창 21:1)
말씀대로 돌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돌보다'라는 말은 '파카드'(פָּקַד)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합니다. '방문하다', '보살피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방문하시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부르실 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고 너를 창대하게 하겠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 돌봐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돌보시는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하셨는데 자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하나님, 우리 집에 똘똘한 종이 하나 있는데 이 종이 내 후사입니까? 이 사람을 세울까요?"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도 행하지 않으십니다.
그 과정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약속의 땅에 머물지 않고 애굽으로 그냥 내려가 버립니다. 거짓말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위기 가운데서 그들을 돌봐 주셨습니다. 24년이 지나서 블레셋 땅 그랄 지방에 가서도 역시 거짓말합니다. 자기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위기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무너질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곳에서도 아브라함과 사라를 돌봐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전쟁하는 무모한 일을 벌여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지키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성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신 32:9-10)
사람은 자기의 분깃이 평생 동안 모은 재산입니다. 건물이 분깃이 되기도 하고 자기 명예가 기업이 되기도 하고 자기가 지금까지 소중하게 생각했던 땅이 자기의 분깃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천지 만물을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관심을 두시고 이것이 나의 기업이고 분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우리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분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분깃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눈동자같이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 눈앞에 어떤 물체가 가까이 오면 눈을 감아 버립니다. 내 눈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눈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눈을 감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신다는 말씀은 그만큼 소중하게 돌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비단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하나님께 선택받고 하나님께서 일을 하라고 맡겨 주신 모든 사람을 하나님은 그렇게 돌보고 지켜 보호해 주십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실 때 그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을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 이방인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담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릇으로 바울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릇이 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릇에 문제가 생기고 그릇에 금이 가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애초에 계획하셨던 이방 선교와 이방인들을 전도하고 구원하는 일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눈동자같이 지켜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릇이 깨어지지 않도록, 금 가지 않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이 1차 선교 여행을 하다가 루스드라에 갔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들은 그 사람들과의 사이에 오해가 생겨서 사람들이 돌팔매질을 합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서 사람들이 죽은 줄 알았습니다. 끌어다가 성 밖에 던져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호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보호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을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릇이 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지켜 주셨습니다. 멀쩡하게 일어났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각 교회에서 거둔 연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체포됩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미결수 상태로 호송선을 타고 배를 타고 로마로 갑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도가 심해서 배가 난파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십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23-25)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을 지키십니다. 이 사람은 이방을 위해서 택한 나의 그릇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이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복음 전파에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의 사자를 보내서 내가 너를 보호하겠다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 담대함을 가지고 바울이 사람들에게 안심하라, 걱정하지 말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뿐만 아니라 바울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도 눈동자같이 지키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돌본다는 뜻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눈동자같이 살피고 지키고 계시다가 우리 인생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보호하시고 돌봐 주십니다.
그러면 지켜 보호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죄짓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다 살펴보고 계시는데 어떻게 죄 짓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보호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거짓말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았습니다. 바로에게 책망받고 아비멜렉에게 책망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말씀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지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야 됩니다. 당당하게 살아야 됩니다. 어깨 펴고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일을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믿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그것이 돌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의 태도입니다.
말씀대로 행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창 21:1)
이제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습니다. 사라에게 행하셨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들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하신 바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를 따라 일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행위를 보고 결정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행동을 보고 할까 말까 망설이고 결정하셨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너희들이 10가지를 다 잘 지키면 내가 아들을 주마" 하셨다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실망시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따라서 일하신다 하셨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받을 상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를 따라 일하지 않고 하나님은 당신이 말씀하신 바를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그러셨습니다.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 두셨습니다. 죄가 들어왔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쫓겨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시면서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면서 결심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 결심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15, 21)
여자의 후손이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납니다. 뱀의 후손, 사탄의 후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탄의 후손들, 그런데 여자의 후손이 결국 부활하셔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를 예수님의 권세 아래 굴복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쫓겨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가죽이 나오려면 짐승이 죽어야 됩니다. 피를 흘려야 됩니다. 지금은 비록 짐승을 잡아 너희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지만 이제 앞으로는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 독생자의 피로 너희들을 구원하겠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하신 바를 하나님은 신실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서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4-5)
여기서 '그'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이사야의 예언 이후로 700년이 지나서였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수천 년이 지나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신 분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행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를 따라서 행하셨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보고 실망하셔서 일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행위에는 눈감으시고 당신이 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고 이루어 가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데 그 시기와 때를 특정해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 행하겠다, 언제 이루겠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부르실 때 "내가 100살 때 아들을 주마" 말씀하셨다면 25년 동안 마음 놓고 편안하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와 시기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때를 모른 채 오랫동안 힘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때와 시기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때와 시기를 모르기 때문에 그 시기를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겨 두어야 합니다. 기다려야 됩니다.
기다리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면서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도모하는 실력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를 성실하게 잘 감당하고 이루어 나가야 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두 가지를 다 실패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와 롯이 똑같이 애굽에 내려갔다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이 땅을 너희들에게 주겠다는 말씀을 믿지 않고 소돔 땅으로 떠나버렸습니다. 말씀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땅에 가서도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키지 않습니다. 자신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어떤 일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가정을 위험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하루는 주인이 종들 세 명을 불러 모아놓고 먼 나라로 떠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먼 나라로 갔다 올 때까지 내가 지금 너희에게 맡기는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장사해서 많은 것을 남기라고 했습니다. 두 명의 종들은 주인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반드시 오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열심히 장사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늡니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일취월장했습니다. 5달란트 받은 종은 5달란트를 남겼고 2달란트 받은 종도 2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1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와야 오는 것이지, 올까?" 아직까지 오지 않았는데, 주인의 말을 신뢰하지 않으니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일을 하지 않습니다. 게을렀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그 일을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게으르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오셨습니다. 주인이 떠날 때는 "내가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에 오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는데 오셨습니다. 오셔서 1달란트 받아서 묻어둔 종을 책망합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6)
"악하고 게으른 종아" 책망하셨습니다. 게으른 종은 이해가 됩니다. 게을렀습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묻어 두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악한 종이라고 책망하는 것일까요? 이 사람이 사람을 죽였습니까? 누구를 때렸습니까? 도둑질했습니까? 주인의 돈을 그냥 땅에 묻어둔 것밖에 없는데 왜 악한 종이라고 책망하는 것일까요?
기다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반드시 온다고 했는데 "올까? 안 올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실력을,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키지 않았습니다. 게으르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악한 종입니다.
주인께서는 5달란트, 2달란트 받아서 5달란트, 2달란트 남긴 종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다림에 성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각자,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을 읽거나 예배드리거나 말씀 듣거나 기도할 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그때와 시기를 알려주지 않아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행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때를 기다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 기다리는 동안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서 우리 믿음이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께 칭찬받는 종이 됩니다.
웃음으로 가득 찬 가정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아 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창 21:3)
드디어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라는 이름은 아브라함이 지은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지어 주신 이름이었습니다. 이삭이 태어나고 나서 그 가정에 기쁨이 솟아납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창 21:5-6)
이제 이 가정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이 가정이 웃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가정이 이렇게 활짝 웃어 본 적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창세기 11장 말미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가정을 공부하고 살펴보고 말씀 들었는데, 아브라함의 가정이 이렇게 웃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아들 하란이 죽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묻었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생깁니다. 그곳에 살 수가 없습니다. 먼저 세상 떠난 자식이 그리워서 그래서 가족들을 다 이끌고 길을 떠납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죽은 아들의 이름과 똑같은 하란이라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그 하란이라는 곳에 살면서 아들이 그리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곳에 삽니다. 아브라함의 가정, 아버지 데라는 죽은 아들의 환영에 사무쳐서 그 죽음의 그림자가 그 가정에 짙게 드리워져서 거기에서 한 번도 빠져나오지 못한 가정이었습니다. 웃을 일이 없었습니다. 슬픔이 가득 찬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가정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불러내십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그런데 그 가정도 자녀가 없어서 어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자녀가 없습니다. 자녀가 없어서 롯을 대안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롯은 소돔 땅으로 떠나버렸습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떠나간 롯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역시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어둠이 짙게 자리 잡습니다. "다메섹 엘리에셀, 이 사람이 대안입니까?" 하나님께 물어봐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 마냥 기다립니다. 10년을 기다렸습니다. 의심하면서 기다리고 믿으면서 기다리고, 그래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제 할 만큼 했다 싶어서, 10년이 지나서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기뻐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쁘지 않습니다. 가정에 갈등이 생깁니다. 하갈이 임신하자마자 가정에 풍파가 일어났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 아브라함과 사라, 팽팽한 긴장감이 가정에 가득 차 있습니다. 누가 하나 뻥하고 터트리면 폭발할 것 같습니다. 문제가 생깁니다. 왜 그럴까요? 가정이 원하는 아들이 태어났는데 기쁘지 않습니다. 누구 하나 드러내놓고 웃을 수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이 하신 방법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 이 말씀을 붙잡아야 되는데, 자기 원하는 대로, 자기 뜻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제는 참으로 기쁩니다. 가정에 웃을 일이 생겼습니다. 행복하고 기쁜 일이 넘치니, 아브라함과 사라뿐만 아니라 함께한 사람에게도 웃음이 넘쳐납니다. 잘 기다리면,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신뢰하고, 기다리면서 우리의 믿음의 깊이를 더해가면 이렇게 웃을 일이 많아집니다.
우리 가정에 왜 웃을 일이 없습니까? 우리 가정이 왜 행복하지 않습니까? 우리 가정에 왜 자꾸만 문제가 생깁니까? 들여다보십시오.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다림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잘 기다려야 되는데, 그 시와 때를 알려주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기다려야 되는데, 자기 방식대로 일해 버리니까, 내 방식대로 시작하니까, 거기서부터 얽히고설키고 꼬여서 풀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가정의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원하신다면, 우리 인생이 아무런 문제 없이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면, 기다림에 성공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돌보시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니 그 하나님을 믿고 잘 기다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해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이 주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가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말씀하신 대로 돌보셨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때와 시기를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우리는 그 시기를 믿음으로 기다려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잘 기다리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기다림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며, 믿음의 성장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기다림에 실패해서 자기 방식대로 일해서 가정에 기쁨이 없고 우리 삶에 항상 슬픔과 아픔과 고통만 있었다면, 주여,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기쁨이 충만한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