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강 / 라반을 상대하는 법 (24:28-53)

라반을 상대하는 법

본문: 창세기 24:28-36, 50-53

2023년 12월 30일,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바바라 월터스는 '인터뷰의 여왕'으로 불린 전설적인 방송인이었습니다. 미국 ABC 방송국에서 40년간 앵커로 활동하며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들을 인터뷰했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스캔들의 당사자였던 모니카 르윈스키를 인터뷰할 때는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고, 약 7천4백만 명이 동시에 시청할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녀는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대신 물어주는 인터뷰로 유명했습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당신은 술을 많이 마신다는 소문이 있는데, 도대체 얼마나 마시는 겁니까?"라고 직접적으로 물었고, 푸틴 대통령에게는 "부하를 시켜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대놓고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인터뷰를 잘하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자기 페이스대로 인터뷰를 이끌어 갈 수 있습니까?"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원칙이 한 가지 있습니다. 주눅 들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나는 주눅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더 중요합니다. "주눅 들지 않으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나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납니다." 그 이른 시간에 일어나 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세계의 동향을 철저히 파악했습니다. 인터뷰 대상이 정해지면 그 사람이 쓴 책을 읽고, 관련 기사와 심지어 소문까지 모아 마음에 새겼습니다. 철저한 준비 끝에 인터뷰 대상을 만났기에, 강한 사람이든 무서운 사람이든, 말이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상대방의 페이스에 끌려가지 않고 결국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만약 원칙을 정하지 않으면, 철저한 기준이 없으면, 강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약자가 되고, 말 많은 사람을 만나면 그 말의 늪에 허덕이게 되고, 말없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말없는 사람이 되어 상대방의 페이스대로 끌려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 원칙과 소신, 기준이 분명히 있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주도적으로 사람을 이끌어 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라반을 만납니다. 라반은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상대하기가 버거운 인물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종의 진짜 실력이 드러납니다. 라반을 어떻게 다루는가, 이 사람의 페이스대로 끌려가는가 아니면 자기 페이스로 끌고 오는가, 이것이 그의 진짜 실력입니다.

금붙이를 보고 달려 나온 자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리브가는 급히 물동이를 내려놓고 상대의 피로를 살피는 여인이었습니다. 낙타에게까지 물을 먹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을 정해 놓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새기는 인물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여인이었습니다.

이제 리브가에게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앞장서라고 합니다. 리브가의 가족들을 만나러 갑니다. 리브가도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듣고 경험했지만 얼떨떨했을 것입니다. 과연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이 일이 진짜인가?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일을 소상하게 말합니다. 그러자 버선발로 뛰어나온 한 사람이 있습니다. 라반이었습니다.

"리브가에게 오라버니가 있어 그의 이름은 라반이라 그가 우물로 달려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창 24:29)

라반이 여동생 이야기를 듣고 달려 나갔습니다. 라반은 왜 달려 나갔을까요? 리브가처럼 아브라함의 종을 환대하기 위해서였을까요? 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환영하고 기쁘게 맞이하는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라반에게는 속셈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간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누이의 코걸이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또 그의 누이 리브가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이같이 말하더라 함을 듣고 그 사람에게로 나아감이라 그 때에 그가 우물가 낙타 곁에 서 있더라" (창 24:30)

바로 금붙이 때문입니다. 코에 달린 코걸이와 손에 달린 손목고리를 보았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청혼하지도 않았고, 결정된 것도 없는데 내 동생에게 이 정도의 금붙이를 주는 사람이라면 내가 만나봐야 되겠다, 이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면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일확천금을 얻을 수도 있겠다 — 아마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라반이 달려 나갔습니다.

라반은 물질주의의 표상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도 많습니다. 돈이 된다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라반입니다. 라반은 돈이면 다 하는 인물입니다.

훗날 이삭의 아들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온 적이 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길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갔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딸 라헬을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이 상황을 다 알고 있었던 라반은 야곱의 마음을 이용합니다. 딸을 주는 대가로 7년 동안 부려 먹었습니다. 노동력을 착취했습니다. 돈 한 푼 주지 않고 그의 노동력을 착취했을 뿐 아니라 그의 지혜와 지식과 시간까지 도둑질했습니다.

그런데 결혼만 이루어졌다면 별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이 되었습니다. 첫날밤, 깜깜하게 불 꺼진 방에 라헬을 들여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언니 레아를 들여보냅니다. 신부가 바뀐 것입니다. 야곱은 아침에 눈 떠서야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집니다. 그때 라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창 29:25-26)

만약 그 지방의 풍속이 정말 이랬다면 미리 말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그냥 야곱을 묶어두기 위한 술책입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말합니다. 네가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이 혼인잔치를 뒤집지 않으면, 그냥 묵묵히 이 잔치가 다 지나가도록 견뎌주면 라헬을 주겠다고 합니다. 라헬을 사랑했던 야곱은 일주일을 견딥니다. 그 대가로 다시 7년 동안을 종처럼 일합니다. 라헬 한 사람을 위해서 14년 동안 돈 한 푼 받지 않고 일했습니다. 라반은 그런 인물입니다.

아이가 어려서 떠날 수도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6년, 모두 20년 동안 라반은 야곱을 부려 먹습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서 야곱이 레아와 라헬에게 길을 떠나자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창 31:6-7)

거짓말쟁이 라반입니다.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시켰습니다. 이런 인간이 라반입니다. 돈이 된다면 자기 조카까지도, 자기 조카의 노동력까지도 20년 동안 착취해 먹는 사람이 바로 이런 인물입니다.

그런 라반의 정체를 알고 31절 말씀을 봅니다.

"라반이 이르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서 있나이까 내가 방과 낙타의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 (창 24:31)

라반의 말이 어떻게 들립니까? 순전하게 들립니까? 그의 마음이 순수하게 다가옵니까? 그는 아브라함의 종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 탐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뽑아 먹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지금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라반 같은 인물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을 볼 때 돈으로 환산하는 자,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에게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저 사람에게서 내가 얻을 수 있는 물질로 환원되는 가치가 얼마쯤 될까, 그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물질주의에 물든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요?

밥보다 사명이 먼저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종은 라반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주도권을 라반이 쥐고 있습니다. 이제 라반은 더 자기 주도권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그 사람이 그 집으로 들어가매 라반이 낙타의 짐을 부리고 짚과 사료를 낙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 동행자들의 발 씻을 물을 주고 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 (창 24:32-33)

이제 라반이 주도권을 가지고 행사합니다. 아브라함의 종과 동행자들과 낙타를 자기 집으로 들입니다. 낙타가 먹을 짚과 사료를 내어옵니다. 아브라함의 종과 동행자들의 발을 씻을 물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리고는 음식을 베풀어 줍니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음식을 드십시오." 진수성찬을 차렸을 것입니다. "밥 먹으면서 우리 할 이야기를 한번 해 봅시다." 이제 주도권을 라반이 쥐고 있습니다.

배가 얼마나 고프겠습니까? 밥 먹는 건 아무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지금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왔습니다. 이삭의 신붓감을 찾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직까지 가족의 허락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리브가를 만나기만 했을 뿐입니다. 가족들에게 아직 허락받기도 전인데 마치 끝난 것처럼 밥을 먹고 배부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라반에게 이 주도권을 넘겨줄 수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겠습니다."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하고 자기 선을 긋고 있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 특히 물질주의에 물든 사람들, 물질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속지 않으려면, 거기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선이 분명해야 합니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그리고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을 분명히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이 없으면 상대방이 이끄는 대로 끌려갑니다. 목소리 큰 사람, 힘센 사람이 하자는 대로 끌려갑니다. 그러다 보면 질질 끌려다니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지금 사명을 가지고 여기에 왔는데 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밥 먹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밥은 다 끝나고 나중에 먹어도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내 입에 음식을 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끌려간 자의 비극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한 왕은 아합이었습니다. 아합은 자기 아내 이세벨과 함께 북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초토화시켰습니다. 바알 신앙으로 말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을 끌어들입니다. 사돈을 맺자고 합니다.

여호사밧은 상당히 괜찮은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우유부단한 인물입니다. 남의 청을 거절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아합 왕이 여러 번 청을 하니까 피하다 피하다 거절하지 못해서 사돈을 맺어 버립니다.

그것으로 끝나겠습니까? 아합이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옵니다. "동맹을 맺읍시다. 당신의 나라와 우리나라가 군사적 동맹을 맺고 아람과 전쟁합시다.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그 땅을 가져옵시다. 전쟁 없이 쉽게 됩니다." 그렇게 부추깁니다. 여호사밧은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다가 결국 그렇게 해버립니다. 선을 긋지 못합니다.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병력을 일으키고 군사력을 일으켜서 전쟁터에 나가서야 아합의 본심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왕상 22:29-30)

이스라엘의 왕 아합이 자기 사돈 여호사밧에게는 왕의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왕의 옷을 입고 전쟁터로 나가면 집중적인 표적이 됩니다. 활을 쏘면 왕만 쏘지 않겠습니까? 왕이 죽으면 끝나는 전쟁이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교묘하고 교활한 사람이 아합이었습니다. 그래놓고 자기 자신은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갔습니다. 바람막이로 앞세워 놓고, 자기 사돈 여호사밧을 전쟁에서 죽게 하고, 자기는 뒤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아합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 전쟁에서 죽다 살았습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거기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가 만약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바알을 섬기는 우상숭배자 아닙니까? 나와 당신이 어떻게 한자리에 설 수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사람인데 당신과 사돈 맺을 수 없고,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니 당신과 동맹을 맺을 수 없습니다"라고 그 원칙을 정확하게 지켰더라면 이런 일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끌리면 끌리는 대로 그냥 딸려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죽다가 살아납니다.

우선순위를 지키는 것, 일의 선후를 분명히 하는 것,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야 할 곳,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먼저 해야 할 것, 나중에 해야 할 것을 정리하는 것은 중요한 지혜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그 지혜를 가지고, 그 지혜를 보여주고, 주도권을 가져옵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가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창 24:34)

말을 시작하면서 자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간단한 진술이지만 중요합니다. 왜 중요할까요? 굳이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아브라함의 종인 것을 — 지금 아브라함은 거기에 없습니다. 이 사람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전권을 위임받아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은금 패물, 물질을 더 줄 수도 있고 덜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고, 아예 판을 걷어 치울 수도 있는 전권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굳이 "나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라는 이야기를 왜 하는 것일까요?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창 24:35)

아브라함이 부자 된 이야기를 합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이 부자가 된 것은 아브라함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셔서 그가 부자가 된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 정리해 봅시다. 나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내 주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의 종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종 아닙니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 소속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나는 당신처럼 물질의 종이 아닙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지, 물질의 종으로 이 자리에 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이야기를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신앙인입니다. 나는 교회에서 이 직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얼마나 자주 밝히십니까? 그렇게 내가 말하고 내가 밝히면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 봐, 갑을 관계에서 내가 을이 될까 봐 두려우십니까?

그런데 요즘 세상은 동성애자도 커밍아웃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임을, 내가 하나님의 종임을, 나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면 우리는 동성애자들보다 못한 사람 아닙니까? 무엇이 부끄러워서, 무엇이 무서워서 내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자유로워집니다. 그렇게 말하고 자기 선언을 하고 나야 영역이 생기고 공간이 생깁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자기 정체를 분명히 나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1)

바울이 자기를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 택정함을 입은 사람 — 전부 다 수동태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일감을 받는 존재입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택정함을 입었다, 이것도 수동태 아닙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편지 쓸 때마다 자기를 그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자기를 정확하게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선언하고 들어갑니다.

그래야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사탄이 침범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숨기고 내 정체를 숨기고 들어가면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20년 30년이 지나면 그 관계 안에서는 내가 나를 드러낼 기회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몫을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난 네가 예수 믿는 사람인 줄 몰랐어. 네가 말하지 않았잖아. 당신이 말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 그 책임 누가 집니까? 내가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물질은 내가 통제하고 다스려야 할 대상이지 섬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절부터 하나님 자리에 같이 올라가 있는 것이 물질이었습니다. 이렇게 숭배의 대상이 된 물질을 우리는 맘몬이라고 부릅니다. 물질을 따르고 물질을 섬기고 물질주의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우리는 맘몬주의자라고 부릅니다.

라반은 맘몬주의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서로 길이 다르지 않습니까? 서로 결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섬기는 사람이 어떻게 맘몬주의자 뒤를 따라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선언을 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입으로 시인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이 악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부디 그런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이제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룹니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려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창 24:50-51)

라반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주도권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맘몬주의자도 원칙을 지키는 아브라함의 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자기 정체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간증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아브라함의 종이 결국은 승리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창 24:52-53)

아브라함의 종이 기뻐서 라반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리브가의 아버지 브두엘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순서가 무척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리브가에게 패물을 주고, 이제 그의 가족들에게 가져온 패물을 줍니다.

만약 이 순서가 바뀌었다면, 은금 패물을 먼저 줬다면,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 환심을 사기 위해서 물질부터 먼저 건네줬다면, 라반이 그것 받고 끝내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식사하면서 가지고 온 모든 것을 다 털어갈 것입니다. 야곱에게 그랬던 것처럼 라반은 그런 인물입니다.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고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잘 지킨 아브라함의 종이 결국은 승자였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지혜를 원하십니다. 이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으니 용기를 내어 세상의 수많은 라반들을 향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라반 같은 인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을 물질로 보고, 사람을 이용해 먹고, 결국 돈이 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하고, 돈이 되지 않으면 사람까지도 버리는 악한 사람들이 세상의 라반 같은 인물들입니다. 주여, 우리는 이들과 상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피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칙을 정하기 원합니다. 말씀의 원칙을 정하게 하옵소서. 해서는 안 될 일과 해야 할 일을 정하게 하시고,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을 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기 소개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소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추지 않기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임을 만백성에게 알리게 하여 주시고, 그 고백 위에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는 놀라운 은혜도 경험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