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강 / 에서가 본즉 (28:6-9)

에서가 본즉

본문: 창세기 28:6-9

핀란드는 지난 6년 동안 행복지수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나라입니다. 참고로 작년에 우리나라는 57위였습니다. 핀란드 하면 행복지수 1위 외에도 자일리톨, 자작나무, 산타마을 등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2007년까지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했던 기업은 노키아(Nokia)였습니다. 요즘이야 핸드폰이라 하면 애플의 아이폰이나 삼성의 갤럭시를 떠올리지만, 스마트폰 이전 세대에는 노키아가 대세였습니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고, 당시 노키아는 핀란드 전체를 이끌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향력이 상당했습니다.

핀란드 전체 GDP의 약 4%를 차지했고, 해외 수출액의 25%, 전체 주식 시가총액의 70%를 상회할 정도로 국가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핀란드의 노키아'가 아니라 '노키아의 핀란드'라 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08년부터 노키아가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적자에 적자를 거듭하다가 결국 2014년에 사업의 핵심 부분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핀란드는 무역 적자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노키아가 무너지면 핀란드도 무너지고 망할 줄 알았는데, 역사적인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노키아가 구조조정을 이유로 공학 부문 인재 1만여 명을 해고했습니다. 회사에서 나와야 했던 이들이 갈 곳이 없으니 벤처기업을 창업했습니다. 벤처를 창업하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토록 갈고 닦았던 실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스스로 절감하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자기주도 학습으로 다져진 핀란드인의 실력이 그제서야 빛을 발했습니다. 한 예로 2010년에 설립한 슈퍼셀(Supercell)이라는 회사가 우리가 잘 아는 앵그리버드라는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그 회사는 설립 4년 만에 순이익만 약 2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핀란드에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공룡 기업이었던 노키아가 몰락한 이후에 오히려 핀란드의 기업 생태계는 더 건강해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사람들이 보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전 세계 기업인들과 경제인들은 노키아가 무너지면서 핀란드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의 실력이 드러났고, 2017년부터 지금까지 6년 연속 그 나라는 행복지수 1위인 나라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우리가 본다고 하지만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 질문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대로 보여주시는데 우리는 우리 각도로, 내가 원하는 대로, 자기 방식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말씀은 에서가 본 것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에서가 본 것, 사실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에서가 들은 것도 사실은 하나님이 들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셨다는 것은 이유가 있었는데, 에서가 그 이후에 합당하게 고치고 제대로 인생을 살아갔는지는 의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기를 원하는지, 무엇을 들려주시기를 원하는지, 하나님이 보여주고 들려주시는 바를 따라 우리가 잘 실천하고 따라가고 있는지를 함께 점검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들려주신 음성

에서는 이삭의 맏아들이었습니다. 타고난 혈통을 자랑했고 탁월한 재능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야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신 것 자체도 이미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미스테리입니다. 그러나 따져보면 에서는 선택받지 못할 만한 행동을 오랫동안 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셨지만 그것은 무혈입성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약속의 계보를 이을 만한 인물인지 하나님은 반드시 바라보십니다. 시험대에 올리시고 하나님의 저울에 올려서 달아보고 시험하십니다. 그래서 야곱이 저 멀고 먼 밧단아람으로 떠납니다. 인간의 편에서는 도주이고 피난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를 불러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면서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당부하는 장면입니다.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창 28:6)

에서가 이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에서가 뭐가 좋다고 아버지가 동생 야곱을 축복하는 것을 따라다니며 보았겠습니까? 보여지니까 본 것입니다. 우연히 이 모습을 본 것입니다. 보기도 하고, 아버지가 야곱에게 신신당부하는 것을 듣게도 되었습니다. 에서가 보고 듣게 된 것, 이것은 마치 우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것입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는 밧단아람에서 네 아내를 택하라,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마라. 한마디로 말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을 네 아내로 맞이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에서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음성입니다. 네가 지금 이렇게 실패한 이유가, 지금 여기 이렇게 패배자로 절망하고 낙심하며 머물러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그에게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서라면 투쟁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열국의 아비가, 열국의 어미가 되는 자리입니다. 사라처럼, 리브가처럼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을 택해도 그 길을 걸어가기가 쉽지 않은데, 그는 자기 마음대로 결혼을 이루어 버렸습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두 여자를 데리고 와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의 입을 통해서 에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실패한 이유는 바로 너의 방종 때문이다. 네가 원하는 대로, 네 욕망대로, 네 정욕대로 살아간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이것이 아니냐고 들려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는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가슴을 치면서 내가 그랬구나, 돌아보니 내 정욕과 내 욕망만 앞세웠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돌이킴이 옳지 않습니까? 그래야 하나님께서 이삭의 입을 통해서 그에게 들려주시는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에서는 그렇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우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매일 같이 하루에 한 장씩 혹은 두 장씩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으로 다양하게 역사합니다. 또 하나님은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설교입니다. 선포된 말씀,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각자 다양하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영적으로 예민해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나타낸다는 것은 자연 만물이 하나님의 음성을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자연 만물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그대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이 정교한 피조 세계를 창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지으시고 여자를 지으시고 가정을 이루신 것에 하나님의 음성과 메시지가 들어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것, 하나님의 섭리로써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를 통해서, 창조의 섭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매일같이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피조 세계를 보면 암수가 함께 있어서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피조 세계에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이 그대로 다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시는데, 그 자연 만물의 창조 섭리를 모르는 자들이 죄를 짓고 범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역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시는데,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귀에 들려주십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은 동물의 입을 열어서 말씀하기도 하십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삼상 19:20)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민 22:28)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냅니다. 군사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강하게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언하기 시작합니다. 예언은 하는 자가 있고 듣는 자가 있습니다. 그들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의 마음을 알리십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발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고, 돈을 얻기 위해서 길을 떠나니까 하나님이 나귀의 입을 여셨습니다. 동물의 입을 열어서 그의 주인을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나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려 하면 우린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주시는 음성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겸손하고 낮아져야, 겸허한 마음과 열린 마음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성인인데, 성인쯤 되면 나에게 싫은 소리 혹은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인격과 인격이 만나고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데, 눈에 거슬린다고 거슬리는 족족 누가 싫은 소리를 잘 해주겠습니까? 가족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이루실 때 아담의 돕는 배필로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돕는 배필, 히브리어로 '에제르 카네그도'(עֵזֶר כְּנֶגְדּוֹ)인데, 여기에 '어게인스트'(against), 반대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무작정 동의하고 무작정 편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될 때는 반대하는 존재가 부부 관계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싫은 소리 하고 반대하면 하나님 음성으로 들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내 아내를 통해서 나에게 반대하시는구나 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되는데, '여자가 도대체 뭘 알아?'라고 나가기 시작하면 그 과정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잘 되라고 권면하고 훈계하면, 자녀는 겸손한 마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부모의 훈계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의 입을 통해서 에서가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네 정욕과 네 방탕과 네 방종 때문에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약속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에서가 가슴을 치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랬군요!' 사람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우리 가정에서도 매일같이 우리는 만날 수 있고, 우리 일터에서도 만날 수 있고,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면 얼마든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나를 세워 가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보여주신 순종

이제 에서가 또 본 것이 있습니다.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창 28:7)

야곱이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 명을 받들어 저 멀고 먼 밧단아람으로 떠나는 것을 에서가 보았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야곱이 어떤 인물입니까? 야곱은 한마디로 말하면 집돌이입니다. 집 밖을 나가는 걸 싫어합니다. 그냥 집에 있으면서 엄마 치맛폭 졸졸 따라다니면서 엄마 도와주고 음식 만들고 요리하고 집에서 살림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입니다. 그렇게 타고났습니다. 그것이 그의 성격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부모의 명을 받들어 밧단아람, 저 멀고 먼 곳, 8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길을 떠납니다. 하고 싶어서 갑니까? 자기가 가고 싶어서 이 먼 길을 떠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의 명을 따라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성격과 내 기질과 나의 캐릭터로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방식으로는 도무지 수용할 수 없지만 부모가 명령을 내리니까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에서가 뭘 배워야 합니까? 지금까지 에서는 부모에게 순종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자기 멋대로 살았습니다. 자기 생긴 대로 살았습니다. 사냥 좋아하니까 들판으로 쏘다니고, 배고프면 장자권도 팔아치워 버리고, 여자가 눈에 들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도 데리고 와서 그냥 살아버리고, 자기 멋대로 살았습니다. 생긴 대로 살았습니다. 한 번도 부모의 명령에 순종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의 동생을 보라고, 지금까지 너의 삶을 돌아보라고, 넌 어떻게 살았느냐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들이 꽤 있습니다. 나는 생겨 먹기를 이렇게 생겨 먹었으니 누구든 나에게 딴소리하지 마라, 나는 원래 말도 험하고 나는 원래 이렇게 생겼고 평생 이렇게 살았는데 누가 나에게 잔소리해도 난 고치지 않을 테니까 딴소리 하지 마라고 하는 분들, 주변에 많이 보셨지 않습니까? 길게 살아봐야 80년 인생, 조금 더 살아봐야 100년인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야지 그만 좀 간섭하고 그만 좀 잔소리하라, 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거라고 하는 에서 같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조금 투박하게 말하는 것이고, 요즘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많이 유행하는 것이 MBTI입니다.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16가지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입니다. MBTI를 왜 합니까? 나는 ENTJ입니다, 나는 또 뭐입니다... 16개를 다 외우는 것도 놀라운데, 그러니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으니 나를 터치하지 마십시오, 나의 기질과 나의 성품,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날 인정해 주십시오 하는 것 아닙니까? 요즘 젊은 아이들이 서로 미팅하고 서로 만나면 자기 성향을 이 영문 네 자로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야곱의 MBTI를 한번 보십시오. 야곱은 외향적입니까, 내향적입니까? 내향적인 인물입니다. 야곱은 계획적입니까, 즉흥적입니까? 야곱은 계획적입니다. 장자권을 딱 노리고 있다가 형이 배고플 때를 노려서 팥죽을 끓여 냄새를 피우고 팥죽을 딱 내밀어서 장자권을 팔라고 말하는, 굉장히 계획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나는 내향적이고 나는 계획적이니 나의 생긴 것을 하나님 인정해 주십시오? 하나님 그런 것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향적이고 계획적이면 집에 그냥 그대로 둬야 합니다. 그런데 내보내지 않습니까? 밧단아람 800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내보내시는데 거기에 인간의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800킬로미터나 떨어진 그 먼 곳을 가야 하는데, 그것도 걸어서 가야 되는데, 자기가 계획 세운다고 그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집니까? 나는 몇 살에 결혼하고 나는 몇 명의 아이를 낳고 내 인생은 이렇게 만들어 가겠다 철저하게 계획 세운다고 그 계획이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은 그것 다 박살 내십니다. 20년 동안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는 집, 그의 어머니의 품안을 다 떠나게 하십니다. 내향적인 인간을 갈고 닦아서 하나님 손에 쓰기에 편안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이런 식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나는 이런 식으로 생겨 먹었으니 나를 인정하십시오, 이 말은 고급스럽게 표현해서 그렇지 저는 훈련받기 싫습니다, 당신이 나의 영역을 인정하시고 들어오지 마십시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는 훈련받는 곳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내 인격이 갈고 닦여지는 곳입니다. 내가 네모난 인간이라면 또 다른 세모난 인간을 만나서 나도 둥글둥글해지고 저 사람도 둥글둥글해지는 곳입니다. 네모와 세모가 만나서 함께 뒤엉켜 살아가며 스파크가 일어나고 깎여 나갈 때 고통이 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공동체입니다. 나도 양보하고 상대방도 양보하고, 서로 훈련받고 서로 훈련하고, 나의 인격에 모난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기도합니다. 나도 타인을 갈고 닦는 훈련의 도구가 될 수 있고, 타인도 나를 훈련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하고 안 맞는 사람을 하나님이 교회에 두셨습니다. 어떡하겠습니까? 같이 맞춰 살아야지요. 그래서 둥글게 둥글게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딱 맞는 일꾼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내버려 두십시오. 전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죽겠습니다.' 그러면 자기 스스로 나를 에서라고 인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야곱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훈련받아서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복을 누리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훈련에 나를 내놓고 맡기고, 그 훈련받는 과정에서 고통스럽더라도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하나님과 담을 쌓은 에서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창 28:8-9)

에서가 가만히 보니까 자기 두 아내들이 부모를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기쁘게 할까 고민하고, 아내들을 가르치든지, 회개를 하든지, 하나님 앞에 울며 나오든지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뛰쳐나갑니다. 또 다른 한 여인을 데리고 옵니다. 누굽니까? 이스마엘의 딸을 데리고 왔습니다. 자신과 촌수로 따지면 사촌입니다. 사촌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아버지와의 관계 단절을 하겠다는 결단이고, 하나님과도 이제는 영원히 상관하지 마십시오라는 선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가 어떻습니까? 에서가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집안에 장남으로 수십 년 동안 나고 자랐는데 이스마엘과 이삭, 하갈과 자기 할머니 사라의 관계를 왜 모르겠습니까? 하갈과 이스마엘이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한 행동을 어려서부터 수없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브라함이, 그리고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냈는데, 지금 와서 다시 이스마엘의 딸을 그 집에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와 이제는 영원히 담 쌓고 지내겠다는 선언입니다. 아버지의 결정적인 부끄러운 부분을, 아버지의 치명적이고 고통스러운 부분을 다시 한번 들추어내는 것입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 나에게 장자권을 주지 않으셨죠? 저에게 축복하지 않으셨죠? 그러니 아버지가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싫어하는 일을 제가 하겠습니다.' 그것 아닙니까?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도 엄청난 불순종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창 21:12)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했고, 하나님도 그렇게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그래서 아브라함이 밤새도록 기도하고, 밤새도록 눈물로 결단하고 통회하면서, 하나님 앞에 이 죄의 싹을 끊어내겠습니다 결단하고 내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마엘의 딸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불순종과 죄의 뿌리를 도려내고 잘라냈는데, 그 불순종과 죄의 씨앗들을 다시 자기 집안으로 끌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이제 너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에서에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보여주셨습니다. 네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되는지, 너의 동생의 순종은 어떤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들은 것, 본 것 그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서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극단으로 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것들을 들려주시고, 다양한 것을 보게 하십니다. 겸손하게 사람들의 말에 잘 귀를 기울이고 듣고, 보는 것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실천하고 순종해서 믿음의 백성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에서처럼 하나님이 들려주시는데 귀를 닫고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에서처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데 눈을 감고 보지 않았습니다. 들어도 못 들은 척이었고, 보아도 불순종했습니다. 주여, 우리를 고쳐 주시옵소서. 훈련받고 또 훈련받아서 나의 성품과 성격과 기질을 갈고 닦아서 하나님 손에 꼭 맞는 사람으로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에게 사람을 통해서 들려주시면 겸손하게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결단과 겸손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