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본즉
본문: 창세기 28:10-15
지난 4월 독일 남서부의 작은 도시 오스텔하임에서 시장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때 시장에 당선된 사람은 29세의 청년 리안 알세블였습니다. 20대 청년이 독일의 소도시라 하더라도 시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분이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 독일에 온 지 8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이분의 진면목과 열정, 실력을 알아본 알텡슈테트 시의 괴츠 시장의 안목, 그리고 이 사람의 열정과 넓은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2015년 리안 알세블은 여느 난민들과 마찬가지로 시리아 내전을 견디지 못하고 고무보트에 자신의 생명을 의지하여 유럽으로 건너왔습니다. 생명을 걸고 와서 겨우 살아남아 독일에 정착한 것입니다.
1년이 지난 2016년, 알텡슈테트 시에서 시청 인턴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면접을 보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거절했습니다. 거절의 이유는 아직 독일어가 익숙하지 않으니 손으로 하는 일을 알아보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빵을 하든지, 재봉을 배우면 어떻겠느냐는 합리적이고 합당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앞서가는 나라 독일의 시청 행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사도 열심히 하고 밝은 얼굴로 허드렛일도 좋으니 여기서 일하게 해달라고 찾아왔습니다. 이런 그의 밝은 모습과 열정을 눈여겨보았던 괴츠 시장은 그를 전격적으로 인턴으로 영입합니다. 작은 일부터 한 가지씩 해보라고 일거리를 주었습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주변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으며, 장벽이었던 언어도 완벽하게 극복해냅니다. 시간이 지나서 정규직을 뽑는 시험이 있었고, 그 시험에 응시하여 당당히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정식 직원이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실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고, 공공 분야의 학위 과정을 이수하게 됩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하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높여갔습니다. 주변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친절했으며 자기 분야에서 실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바로 옆 도시인 오스텔하임에서 시장 선거가 있었는데, 괴츠 시장이 그에게 출마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무슨 시장 선거에 출마합니까? 그런데 할 수 있다고, 당신이 가진 전문성이라면, 그 열정이라면, 또 친화력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시청 직원들도 모두가 출마를 권유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출마했고 당당히 당선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저 이 사람이 입지전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했다는 것만이 관심이 아닙니다. 이분은 현실이 비참했습니다. 난민의 현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보트 타고 유럽 대륙으로 건너온 난민입니다. 언어도 서툴고, 그저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것에 감사해야 될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가졌습니다. 더 큰 꿈을 가지고 배워보겠다, 열심히 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한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기회를 붙잡고 열심을 다해서 일어났습니다. 결국 8년 만에 자기 힘으로 일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이 청년 외에도 우리도 역시 비참한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멀쩡하게 이 자리에 앉아 있어서 그렇지, 남들에게 제 형편이 이렇습니다, 지금 제 마음이 이렇습니다 말할 수 없어서 그렇지, 우리 인생도 밑바닥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난민이 아니라서 그렇지 영적 난민으로 사는 사람도 많고, 우리 인생도 힘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면 현실에 지쳐서 꿈을 가지지 못합니다. 고개를 들어서 하늘 한번 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먹고 사느라 지쳐서 힘들게 그냥 살 뿐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이기게 하는 것은 꿈이고 비전입니다.
밑바닥에 떨어진 야곱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야곱도 역시 그런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야곱의 현실은 밑바닥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꿈을 갖게 하셨고, 그는 그 꿈을 쫓아서 현실을 극복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나갑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 들려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야곱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형이 그를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뜁니다.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가 그를 피신시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도주였고 피신이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부르심이었고 그를 믿음의 자리에서 달구어 보는 과정이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그는 지금 훈련받고 있는 중입니다.
훈련에서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두 가지 요소, 그 첫 번째는 고통입니다. 훈련은 고통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군대에서 군인들을 훈련시키는데 편안하게 훈련시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극한의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육체 한계를 뛰어넘는 고통이 있어야 그 고통을 넘어서 다음 성장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도 고통이 따르고 무엇을 해도 고통은 훈련에 필수적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 쐬면서 집에서 두발 뻗고 누워 잠자는 것을 훈련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고통이 있어야 훈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훈련이 고통으로만 끝나버린다면, 그냥 고통만 받다가 인생 고생만 하다가 끝나버린다면, 그것을 훈련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훈련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지향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훈련을 잘 이겨내고 나면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까?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까? 이 훈련을 잘 받고 나면 나는 얼마만큼 성장해 있을까? 그 기대감을 가집니다. 우리는 그것을 비전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을 꿈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훈련에는 고통과 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고통의 이유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이 고통의 이유는 비전을 성취하기 위함이라는 것,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훈련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 아닙니까?
야곱은 고통받았는데 그 고통에 꿈이 더해집니다. 먼저 야곱이 받은 고통을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 28:10-11)
야곱이 자기 집 브엘세바를 떠나 밧단아람 하란으로 가는데, 그 거리가 무려 800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직선거리로 800킬로미터이니, 걸어서 꼬부랑길을 가면 얼마나 오래 걸리겠습니까? 가다가 운이 좋으면 마을을 만나고, 더 운이 좋으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하룻밤을 거기에 유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시간은 노숙하는 것입니다. 홀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는 이 길에서 노숙하는 것을 밥먹듯 하고 살아갔습니다.
노숙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돌을 베개 삼아서 누워 잠자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후회가 막심하지 않았겠습니까? 영적인 욕심을 가지는 것은 좋았으나, 그 영적 욕심을 이루는 방법이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때 그 거짓말을 해서 형을 저렇게 속이고 가정을 풍비박산 내고 부모를 떠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정을 떠나서 이 고생길에 들어섰다고 후회가 막급했을 것입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되는데, 그 후회가 매일 밤마다 찾아왔을 것입니다. 원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 나는 안 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나를 부추겨서 거짓말을 하게 하고 아버지 앞에 가서 머리 들이밀고 안수 받은 것이 지금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그는 밤마다 눈물로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낮에는 강도의 위협도 만났을 것이고, 밤에 노숙하면서 울부짖는 짐승의 소리를 들으면서 맹수의 위협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 고통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그가 내적인 힘과 은혜를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매 순간 자신의 삶이 무너지는 듯한 경험을 하고 삽니다.
성경에 이런 종류의 고통을 겪은 사람은 야곱뿐만이 아닙니다. 다윗도 역시 그랬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시 11:2-3)
마음이 바른 자는 다윗 아닙니까? 어두운 데서 마음이 바른 다윗을 쏘려고 하는 자는 사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세월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십수 년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쫓겨 다니던 세월, 밝은 대낮에 광야를 다닐 수가 없습니다. 등골이 서늘해서, 사울과 그의 군사들이 숨어서 나를 쏘려고 하는 것이 두려워서, 무서워서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을 터가 무너진다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터는 자신의 존재 기반입니다. 땅이 흔들리고 터가 무너지는 듯한 경험, 그러면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전 존재 기반이 무너지는 듯한 경험, 그것을 다윗은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아버지 이새의 집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도 그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그를 불러내십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만드십니다. 사울의 궁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울의 궁정에서 군대 장관이 됩니다. 그런데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그의 터가 완전히 무너집니다. 든든한 터였습니다. 입지가 든든했습니다. 사울의 궁전에서도 그는 군대 장관으로서 입지가 튼튼했고, 자기 아버지 집에서도 훌륭한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그의 존재 자체가 흔들립니다.
야곱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자기 어머니 집, 아버지 집에서 사랑받는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광야에서 자신의 터가 흔들리고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욥의 고난을 보십시오.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자녀들도 다 잃었습니다. 건강도 잃었습니다. 터가 무너지는 듯한 경험입니다. 존재 기반이 다 흔들립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그냥 멀쩡하게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러분은 터가 흔들리는 듯한 경험, 내 존재가 다 무너지는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까? 나는 정말 안정적으로 살았다고 했는데, 단 한 번의 실수로, 그때 그거 하지 말았어야 되는데, 그때 내가 그렇게 판단하지 말았어야 되는데, 그때 내가 그 악한 사람과 손잡지 말았어야 되는데, 그때 내가 조금 더 생각했어야 되는데, 그 후회가 지금 몰려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 무너지고 터가 흔들리는 듯한 경험으로, 야곱처럼 광야에서 돌을 베개 삼아서 무너지는 듯한 경험을 하고, 내가 지금까지 일구어 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무너지는 듯한 경험, 다윗처럼 쫓겨 다니는 경험, 야곱처럼 흔들려 무너지는 듯한 경험, 욥처럼 잃어버리는 경험, 이를 꽉 깨물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도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은 어쩔 수 없는 그 경험, 우리는 해본 적 없습니까?
그때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그런 경험을 할 때, 나의 인생의 존재 기반이 가정이었는데 가정이 무너지고, 내 인생의 터가 일터였는데 일터가 한순간에 내려앉고, 내가 정말 사랑했던 내 존재의 기반이 내 사람들이었는데 이 사람이 나를 속이고 다 떠나가는 그 경험, 그때 우리는 어떤 인생으로 어떤 희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까?
야망이 깨진 자리에 채워지는 비전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것만 존재한다면 너무 가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다음 장을 열어주십니다. 야곱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창 28:12)
꿈을 꿉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꿈이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옵니다. 그 사닥다리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황홀한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꿈을 자주 꾸지만,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꿈을 꾸다가 갑자기 깨면, 결정적인 순간에 깨면, 다시 잠을 청하는데 그 이야기가 이어집니까? 내가 꾸고 싶다고 해서 꾸는 것이 꿈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꾸고 싶다고 꾸어지는 것이 꿈이 아닙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여기서 야망과 비전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꿈, 비전은 내가 꾸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망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가 붙잡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망입니다.
야곱의 인생을 보십시오. 그는 야망가였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장자권을 가지고 싶은 야망가였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싶어서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어머니와 공모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가가 무엇입니까? 빈털터리 아닙니까? 광야에서 돌베개 하고 완전히 다 무너지고 다 망해서 쓰러져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야망이 무너지고 나니까, 내가 가진 꿈, 그 야망이 쓰러지고 나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꿈을 보여 주시는데, 야망이 없어진 자리에 하나님의 비전이 채워집니다. 여러분, 꿈이라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이라는 것은 내 야망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야망이 박살 나야, 그것이 무너져야 그 자리에 하나님의 꿈이 채워집니다. 그것이 비전입니다. 야곱은 그것을 본 것입니다. 보고 싶어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셔서 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창 28:13-14)
두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자기를 소개하십니다. 두 번째 부분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복도 두 가지인데, 하나는 땅의 복이요 또 하나는 자손의 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한 가지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빠져 있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어떻게 소개하십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자기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뒤에 빈칸이 하나 빠져 있습니다.
네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 길을 이어서 이 위대한 가문의 믿음의 후손이 되어서, 그 다음 야곱이라는 이름이 채워지면, 그러면 이 복이 너에게 주어질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를 이어서 그 빈칸에 너의 이름이 새겨지도록 노력하라, 그것을 위해서 지금 네가 훈련받고 있는 것이라고, 그것을 위해서 지금 네가 이 고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 빈칸이 채워지면 그 다음 땅의 축복과 자손의 축복이 너에게 임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그렇게 꿈을 주시고 비전을 주시는 것입니다.
야망이 있으면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채워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훈련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는 야망가였지만, 이제는 그의 야망이 산산이 다 무너지고 다 부서지고,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하나님의 손에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 훈련이 끝나고 나면, 그 훈련이 온전하게 채워지고 이루어지는 그날, 그는 땅의 복을 받을 것이고 자손의 복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 이 복 받고 싶으냐, 너에게 주고자 하는 이 복이 다 너의 것이 되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너는 훈련받아야 된다고, 너의 야망이 이제 깨어졌으니 내가 너에게 보여준 대로 꿈을 가지고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야 된다고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뿐만 아니고 우리 믿음의 조상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모세는 한순간에 혈기를 이기지 못해서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주합니다. 40년 동안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살았습니다. 나이가 80이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실패자가 되고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도 모세를 찾는 이가 없습니다. 나이 80이 되어서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네 발에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라고 말씀하시고, 떨기나무가 타고 있었지만 나무는 타지 않은 채로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 3:9-10)
모세도 한때는 야망가였습니다. 애굽에서 애굽 왕자로 살 때, 잘만 하면 이 권력 암투를 이겨내면 파라오가 될 수 있으니까 그 야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자기만의 꿈,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이 아닌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습니다. 광야로 도주합니다. 세상이 바뀌면 누군가 나를 찾아주겠지, 그런데 40년 동안 아무도 찾는 이가 없습니다. 나이 80이 됩니다.
야망이 다 부서지고 자기가 가져왔던 권력에 대한 소망이 다 부서지고 나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오셔서 비전을 주십니다. 이제 가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낼 사람으로 내가 너를 택했다고, 이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야망이 사라지고 나니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감당할 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3:11)
내가 누구이기에, 자신이 없다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옛날에 야망가로 살 때는 자신 있었는데, 이제 비전을 품으라고 하니 힘이 없습니다.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야곱에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야곱은 자신감이 땅바닥입니다. 엄마에 대한 원망, 자신의 인생에 대한 후회, 이것으로 그냥 패배자가 되어서 멀고 먼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모세에게 주셨던 말씀과 야곱에게 주셨던 말씀이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3:12)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모세에게 하신 말씀, 야곱에게 하신 말씀,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함께하겠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을 모세에게도 하셨고 야곱에게도 하셨습니다. 모세는 자신감이 없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함께하겠다, 너에게 비전을 주었으니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셨고, 야곱에게도 내가 너에게 비전을 주었으니 그 비전을 이루는 데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망가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망이 깨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이 꾸게 하시는 비전을 가지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모세에게 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게 했으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야곱에게 힘을 주어서 그가 800킬로미터 떨어진 밧단아람에 가서 20년을 견디게 만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야곱처럼 저 밑바닥 한가운데 떨어져 있는, 이제는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는 그 인생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야망이 깨어진 자리에 비전을 보여주시고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시면 얼마든지 일어설 줄로 믿습니다. 야곱이 본 것을 우리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개를 들어 봐야 됩니다. 눈을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비전을 보면 얼마든지 일어설 수 있고 얼마든지 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이와 상황을 초월해서 일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과 함께 힘차게 다시 일어서서, 다시 일어나서 전진하고 또 달려가시는 믿음의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야곱이 가졌던 야망, 장자권의 야망, 잘못된 선택으로 이루려고 했던 그 자리를 하나님이 부수시고, 모세가 가졌던 파라오에 대한 야망도 하나님이 깨뜨리시고,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그들에게 비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전을 이룰 때 하나님은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준 비전이니 내가 너와 함께 있고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오늘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때로는 나의 실수로, 내 죄악으로, 한순간에 잘못된 선택으로, 야곱이 광야에서 돌베개 하고 사는 것처럼 우리도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 저 밑바닥에 떨어진 그곳에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인생을 살 때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비전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시 용기 내어 일어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셨사오니 그 말씀 붙잡고 다시 용기 내어 달려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망도 품게 하시고 믿음도 가지게 하시고 다시금 자신감도 갖게 하시고, 다시 일어서서 믿음으로 투쟁하고 걸어갈 용기와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