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강 / 다시 칠 년 (29:21-30)

다시 칠 년

본문: 창세기 29:21-30

지난 6월 경찰은 불법 사금융 범죄조직 일당 123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들 조직은 2012년 4월부터 영세 자영업자들, 가정주부들,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소액 대출을 해주고 연 5천%에 달하는 이자를 갈취했습니다. 법정 최고 이자가 20%이니 무려 250배에 해당하는 고리대금입니다. 이들의 수법은 이렇습니다. 인터넷에 소액 대출 광고를 올린 뒤, 찾아오거나 연락한 분들에게 30만 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에 50만 원을 갚으라고 합니다. 어떻게 30만 원이 일주일 사이에 50만 원이 됩니까? 그런데 당장 돈이 급한 분들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대출받습니다. 일주일 뒤에 돈을 갚지 못하면 이자가 원금으로 치환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일정 기간 동안 돈을 갚지 못하면 또 다른 대부업체를 소개해줍니다. 빚을 내어 빚을 갚게 하는 구조로 다중 채무자를 만들어 버리는데, 알고 보면 모두가 한통속입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서운 추심이 기다립니다. 피해자들의 얼굴을 인쇄한 전단지를 직장 주변에 뿌리기도 하고 가족들을 협박하기도 합니다. 심한 협박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약 130명에 이르렀고 피해액은 500억 원이 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악한 방식의 사기를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합니다. 세월이 악해져서 그렇다고들 말하지만, 수법이 다양해져서 알아채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사기꾼이 없었겠습니까?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이래로 세계 어디에나 사기꾼들이 있었고, 사기 행각은 있어 왔습니다. 갈수록 진화하고 악해져 가는 것 이외에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라반도 사기꾼입니다. 라반은 야곱의 노동력을 7년 동안 갈취했고, 오늘 본문에서 다시 7년을 더 갈취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런 라반 같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런 사람을 만나지 않을 방법은 없는 것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교훈 얻기를 바랍니다.

사명을 잃어버린 칠 년

야곱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약속의 사람, 축복의 계보 가운데 있는 사람, 사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인데 사명이 본질이고 결혼은 비본질입니다. 그런데 비본질인 결혼에 발목 잡혀서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묻지 않았으며, 자기 부모님께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가는 혹독했고 칠 년의 세월을 흘려버리고 맙니다. 사명의 시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간적으로 야곱과 라헬에게는 그 시간이 달콤했습니다. 서로 연애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7년을 마치 며칠처럼 여길 정도로 이들은 서로에게 빠져 있었습니다.

마침내 7년이 지나갔습니다. 몸으로 떼운 노동력의 기간, 결혼 지참금을 다 갚은 기간이 지나갔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말합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창 29:21)

7년을 다 채웠으니 내 아내를 달라고 당연히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라반이 순순히 결혼을 시켜줍니다. 이웃들을 불러 모으고 일가친지들을 모아 잔치를 열어줍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결혼식 잔치는 대개 일주일 정도 지속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지 일주일이면 결혼 잔치에 다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날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창 29:23)

라헬이 아닌 레아가 첫날 밤에 신부로 들어왔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야곱은 당연히 라헬이 신부인 줄 알았습니다. 레아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라반이 작정하고 벌인 일이었습니다. 사람을 분간하기 어려운 캄캄한 밤에 신부를 레아로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첫날 밤이 지나고 아침에 눈 떠보니 곁에 라헬이 아니라 레아가 누워 있습니다. 야곱은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레아를 위해서 7년을 봉사한 것이 아닌데, 나는 라헬을 위해서 7년 동안 일했는데, 눈 떠보니 레아가 누워 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외삼촌에게 찾아가서 따집니다. 왜 이렇게 하시느냐고. 그러자 라반이 침착하게, 아주 차분하게 대답합니다.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창 29:26-27)

차분하고 침착하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라반이 대답합니다. 이 대답을 들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치밀하게 짜인 각본, 시나리오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 지방에서는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이 법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그 말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야곱은 라헬을 좋아했습니다. 외삼촌에게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품삯을 정할 때 "제가 라헬을 위하여 7년을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원래 이것이 이 지방의 법이었다면,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이 이 집안의 법이 아니니 레아를 먼저 시집보내야 한다, 그래서 너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레아를 위해서 신랑감을 찾을 때까지 조금 기다려라, 그리고 나서 라헬을 너에게 보내주겠다, 그렇게 말해야 옳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입도 뻥긋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지방의 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새빨간 거짓말일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리고 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이미 잔치가 열렸는데, 오늘이 첫날이 지나고 둘째 날인데, 잔치판을 깨지 마라, 멀리서 이웃들이 오고 일가친지들이 왔는데 네가 여기서 잔치를 엎어버리면 내 낯은 뭐가 되느냐, 일주일 동안 이 잔치를 무사히 잘 치르게 하면 잔치가 끝나고 나서 라헬을 너에게 주겠다, 그리고 나서 네가 라헬을 선불로 받았으니 7년 동안 또 나를 섬겨라. 이것을 어떻게 거절합니까? 야곱의 목적은 라헬이었는데, 7일 동안만 잘 견뎌주면 라헬을 주겠다고 하는데. 이미 준비된 각본, 시나리오입니다. 7일을 던져놓고 7년 동안의 노동력을 사취하는 것입니다. 라반은 완벽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정확하심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고 하나님은 결단코 건너뛰는 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뒤바뀌었습니다. 첫날밤에 신부가 바뀌었습니다. 라헬인 줄 알았는데 레아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짓은 이전에 이미 야곱이 한 행동입니다. 창세기 27장에 자기 아버지 이삭이 기력이 쇠하여 시력이 떨어져서 사람을 분간할 수 없을 때, 아버지 이삭은 에서인 줄 알고 축복하려고 했는데 그때 야곱이 거기에 끼어들었습니다. 자기 형 에서의 옷을 입었습니다. 염소 털로 목과 손을 감쌌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가서 에서인 척했습니다. 사람이 뒤바뀌었습니다.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그대로 당했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뿌린 대로 그대로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그가 여기 올 때 이 모든 일을 청산하고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잘못으로 인해서 에서는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축복을 사모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 과정에서 거짓이 난무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사람을 속이고, 자기 형 에서는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살인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그런데 형에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내가 형을 속였다고, 내가 아버지를 속였다고, 형의 눈물을 닦아준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그 앞에서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형의 발을 잡고 빌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하루아침에 두 형제를 함께 잃어버릴까 봐 동생 야곱을 멀리 피신시켰습니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것을 청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인생의 오점, 형제의 가슴에 피눈물 지게 한 이 잘못된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오니 하나님이 해결하시지 않습니까? 너도 한번 똑같이 느껴보라고, 사람이 바뀌는 이 황당함, 사람이 바뀐 거짓의 희생자가 한번 되어 보라고. 아침에 눈 떠보니 라헬이 아니라 레아가 누워 있는 너의 마음은 어떠냐고. 에서인 줄 알고 축복했는데 그것이 에서가 아니라 야곱인 줄 알았던 그 아버지의 황망함, 밖에 가서 사냥감을 잡아 요리를 만들어 가지고 왔는데 자기인 척하고 축복받고 도망가버린 야곱을 보는 그 형의 황망함, 그것을 한번 네가 느껴보라고.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시려고 하는데, 그를 들어서 사용하시려면 깨끗하고 정결하게 해서 사용하시려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계보, 야곱이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고 털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털어내지 않으면 하나님이 털어내시는데, 하나님은 아주 정확한 방식으로 되갚아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수 갚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에서가 칼을 들고 길길이 날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정확하게 갚아주시는데 그렇게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하나님은 예배받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안식일을 정하시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셨습니다. 예배만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형제와 화목하라 하셨습니다. 예물을 가지고 와서 예배드리기 위해서 나왔는데, 형제와 화목하지 못한 것이 기억나면 먼저 가서 그 형제의 문제를 풀어주고 털고 와서 하나님 앞에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태로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까? 우리 인생 살아가다 보면 그냥 덮어버리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해결하지 않고, 해소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고 이 문제를 그냥 덮어버리고 가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냥 건너뛸지라도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건너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짚고 넘어가시고, 다루고 가시는 분입니다. 사람들 눈에 피눈물 나게 하고, 타인의 가슴에 대못 박고, 우리가 어떻게 성도라 하고, 어떻게 믿음의 백성이라 하고, 어떻게 약속의 계보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것을 야곱에게 철저하게 계산하고 계시는 과정입니다. 똑같이 사람을 뒤바꾸시면서. 오늘 정확하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동기와 과정을 살피시는 하나님

두 번째로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받아야 할 교훈은, 하나님은 결과를 사랑하는 분이 아니고 동기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야곱을 한번 보십시오. 야곱은 복 받고 싶었습니다. 축복을 사모했습니다. 자기 형은 장자로 태어나서 모든 복을 다 가져가는데 나는 복을 받지 못한다, 이것이 억울하고 원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복을 사모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잘한 것입니다. 당연히 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틀려먹었습니다. 복 자체가 목적이 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온갖 불법과 탈법이 난무했습니다. 거짓말했습니다. 속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 26:51-52)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허리춤에서 칼을 빼어 대제사장 종 말고의 귀를 베어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예수님이 떨어진 귀를 주워다가 붙여주시고 치료해 주시며 하신 말씀, "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칼과 검과 몽치로 나를 체포하기 위해서 오지만 그것은 틀린 방법이지 않느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당한 방법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지 않느냐, 네가 칼을 쓰면 반드시 그 칼로 네가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동기와 과정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마음을 관찰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면 된다. 개같이 벌면 안 됩니다. 정승같이 벌어야 합니다. 모로 가면 안 됩니다. 정상적인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길을 가야 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당한 방식으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과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정답을 찾기 위해서 과정은 철저하게 무시해버립니다. 하지만 반대로 되어야 합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선한 의지를 가지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과정에 충실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나보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올바르고 그 과정이 바르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그것이 우리 믿음 아닙니까? 그런데 좋은 답을 얻기 위해서 과정을 엉망으로 하면 그 책임은 다 내가 져야 합니다. 야곱처럼. 그런 일이 우리 인생에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피할 수 없는 라반의 제안, 거절하기 어려운 라반의 제안을 야곱이 어떻게 했습니까?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창 29:30)

이런 야곱이 어떻습니까? 여성들은 어떻습니까? 이런 신랑 만나고 싶지 않습니까? 나 하나를 위해서 14년을 일하는 이런 로맨티스트, 낭만주의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지금 내 신랑은 목석같이 무뚝뚝한데. 그런데 야곱은 이 일로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창 26:34-35)

34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에서가 40세에 두 여인을 맞이했는데, 각자 다른 집안의 두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큰 근심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에서를 많이 책망하고 비난했습니다. 어떻게 같은 해에, 한 해에 두 여인을 아내로 한 집안에 들일 수 있는가, 결혼의 원리를 파괴했다고 우리가 에서를 많이 비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혼의 원리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인데, 그것도 같은 해에 한 집안에 두 여인을 같이 데리고 살면 그 가정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야곱은 훨씬 더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주일 사이에 한 집안의 자매를 자기 아내들로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일주일 사이에.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심각한 범죄행위입니다. 율법에서도 이런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정해놓고 있습니다.

"너는 아내가 생존할 동안에 그의 자매를 데려다가 그의 하체를 범하여 그로 질투하게 하지 말지니라" (레 18:18)

어떻게 되었든 야곱의 아내는 레아였습니다. 아내가 생존할 동안에, 그것은커녕 일주일 만에 다시 라헬과 결혼합니다. 그래서 그 집안이 쑥대밭이 되고 맙니다. 두 여인의 질투와 갈등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레아가 낳은 아들이 여섯 명입니다. 라헬이 아이가 없자 자기 종 빌하를 첩으로 줍니다. 그 여종에게서 두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러자 다시 질투가 난 레아가 자기 종 실바를 첩으로 줍니다. 그 여인에게서 두 아들이 태어납니다. 라헬도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집안에 열두 아이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네 명입니다. 네 명의 여인들이 갈등하고 다투고 싸웁니다. 모든 피해는 열두 명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그대로 떨어졌습니다.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르우벤부터 베냐민까지 열두 명의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부모 눈치 보고, 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함을 보고, 그들도 열등감을 느끼고, 그들도 좌절하고, 그들도 피눈물을 쏟고, 자기들끼리 갈등하고 싸우고 다투는 이 갈등의 씨앗이 바로 야곱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이 책임을 누가 져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열두 명의 아들들이 서로 다투고 갈등하다가 결국 나중에 형들이 요셉을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을 죽이려고 하다가. 모든 갈등의 책임은 다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멈추지 못한 비극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이라고 한번 가정하고 생각해 봅시다. 만약에 야곱이 아침에 눈 떠보니 옆에 레아가 누워 있습니다. 거기서 멈췄다면. 내 인생에 기대하지 않았던 돌발적인 상황이 생겼습니다. 나는 라헬을 기대했는데 눈 떠보니 레아가 누워 있습니다. 외삼촌에게 2~3일 시간을 달라고 하고 하나님 앞에 홀로 엎드려 기도했더라면, "하나님, 왜 내 인생에 이렇게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러면 하나님 말씀해 주셨을 것입니다. "너는 왜 사명을 두고 비본질에 집착하느냐? 네가 사람을 바꾼 그 죄 해결하지 않고, 풀지 않고 여기 와서 너 그대로 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하나님 앞에 잠깐 멈추고 기도했더라면, 자기 인생을 돌아보았더라면, 자기 인생에 해결할 수 없는 이 문제들을 스스로 살펴봤더라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거기서 멈추었다면, 거기서 멈추고 일주일 뒤에 라헬을 받지 않았더라면 레아가 행복했을 것입니다. 결단하고 기도했더라면 라헬도 다른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입니다. 야곱과 레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 한 부모 밑에서 서로 갈등하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입니다. 모두가 다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멈추지 못했습니다.

내 인생에 예기치 않은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는데 화부터 냅니다. 나는 라헬을 위해서 7년 동안 일했는데 왜 레아냐고 발끈해서 외삼촌을 찾아갑니다. 달려갑니다. 그런데 라반은 사기꾼입니다. 덫을 치고 딱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자기 발로 들어가서 갇혀버린 것입니다. 달려가지 말았어야 합니다. 라반에게. 거기서 멈추었어야 합니다. 내 인생에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내가 소망하고 내가 바랐던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거기서 멈추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 봐야 합니다. 더 이상 진도 나가면 안 됩니다. 그러면 수렁으로 빠질 뿐입니다. 7년이 14년이 되고, 14년이 20년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자기 사명의 시간 20년을 송두리째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바로 왕 앞에 서서 말합니다. 내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그 험악한 세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까? 자기 스스로 자초한 20년의 험악한 세월입니다. 이 20년을 하나님 앞에 사명 감당하고 살았더라면 많은 열매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었을 텐데, 멈추지 않아서,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시는데 멈추지 않아서 일어난 비극입니다.

결론

야곱의 이 교훈이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살피고 돌아보는 시간, 다시 살피십시오. 하나님은 건너뛰시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잘못도 묻어버리고, 모른 척하고, 사과하지 않고,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려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계산하시고 분명히 짚고 넘어가십니다. 이 분명하신 하나님 앞에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형제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 그들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한 일,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동기와 과정을 순수하게 가져가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 가지고 선한 방법으로 일하시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 인생에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면 멈추십시오. 멈추고 기도하십시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달려가지 마십시오. 악으로 달려가서 라반 같은 사기꾼이 쳐놓은 올무에 걸려서 사명의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건너뛰는 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잘못도 묻어버리고 모른 척하고 사과하지 않고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려 하지만, 반드시 계산하시고 하나님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십니다. 이 분명하신 하나님 앞에 돌이키게 하시고 해결하게 하시며, 형제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 그들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한 일 해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결과에 집착하지 않게 하시고 동기와 과정을 순수하게 가져가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 가지고 선한 방법으로 일하게 하시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기 원하오니 책임져 주시옵소서. 우리 인생에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면 멈추겠습니다. 멈추고 기도하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님께 묻겠습니다. 달려가지 않겠습니다. 악으로 달려가서 라반 같은 사기꾼이 쳐놓은 올무에 걸려서 사명의 시간 20년을 낭비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다. 주여,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