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와 르우벤
본문: 창세기 30:14-21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를 정복하고 싶었으나 출혈이 너무 클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계략을 꾸몄습니다. 당시 백제의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바둑의 고수인 승려 도림을 백제에 보냈습니다. 도림은 백제 저잣거리에서 내기 바둑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그 소문이 개로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왕이 도림을 불러 바둑을 두어 보니 과연 탁월한 고수였습니다. 몇 번 바둑을 두면서 두 사람은 바둑 친구가 되었습니다.
도림은 바둑만 잘 두는 것이 아니라 입담도 뛰어났습니다. 바둑을 두면서 왕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을 던졌습니다. "지금 백제가 삼국 중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왕실의 모습이 이게 무엇입니까? 궁궐을 새로 짓는 것이 좋겠습니다. 백성들에게 토목공사를 시켜서 왕실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도로도 넓히고 제방도 쌓으십시오." 처음에 개로왕은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바둑 친구가 자꾸 말하니 결국 그 말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궁궐도 새로 짓고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국고가 그쪽으로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고, 국력이 그렇게 쏠려 갔습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장수왕이 쳐들어왔습니다.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개로왕은 남쪽으로 천도해야 했습니다. 결국 백제는 지금의 공주로 수도를 옮길 수밖에 없었고, 고구려는 한강을 차지한 것에 더해 충주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주변에 어떤 사람을 두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두어야 하는데, 주변에 어떤 사람을 두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운명도 좌우될 수 있습니다. 지리학자들은 환경을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으로 구분합니다. 자연환경은 자연 그대로의 환경이고, 인문환경은 사람의 손이 탄 환경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한 환경이 있으니, 바로 인적환경입니다.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있는가, 나는 자라면서 혹은 성인이 되어서도 누구와 소통하고 어떤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가,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상처받는 아이들
어린아이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서 양육을 받아야 하고, 학생들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삐뚤어진 심성을 고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는 야곱과 레아와 라헬이 벌이는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나옵니다. 이 세 사람의 대립으로 인해 결국 그 가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는 자녀들입니다.
야곱은 순식간에 아내가 네 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레아를 통해서 네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은 이를 지켜보다가 화가 나고 분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몸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서 단과 납달리를 낳습니다. 하나님 앞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던 레아도 이 지점에서 평정심이 무너졌습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결국 그들의 진흙탕 싸움에 함께 동참합니다. 레아도 자신의 몸종 실바를 남편에게 주고, 이 여인을 통해서 갓과 아셀 두 아들을 낳습니다. 순식간에 야곱은 아내가 네 명이 되었고 아들이 여덟 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복잡한 가정 상황 가운데에서 야곱도 불행하고, 네 여인 중에 행복한 여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녀들입니다. 여덟 명의 자녀들 가운데 누가 가장 불행했겠습니까? 빌하를 통해서 태어난 단과 납달리, 실바를 통해서 태어난 갓과 아셀, 이들은 아직까지 천지 분간도 못하는 어린 아기들입니다. 이제 막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레아가 낳은 네 명의 아이들은 다릅니다. 알 만큼 알고 성장했습니다. 이제 청소년기에 접어들었고 장년기에 접어들어 갑니다. 이들은 가정에 돌아가는 상황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 가장 큰 아들 르우벤은 마음의 상처가 깊어져 가고, 마음속 깊이 큰 갈등이 자리 잡아 갑니다.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창 30:14)
르우벤은 나가서 일할 정도로 성장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래로 동생을 일곱 명이나 거느리고 있고, 이제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어른의 몫을 감당할 만한 청장년이 되어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볼 때 당황스러운 것은 이 아이 르우벤이 들에 나가서 합환채를 구해서 자기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합환채가 어떤 식물입니까? 그 당시 고대 근동에서 임신 촉진제로 널리 알려진 식물입니다. 열매는 단맛이 나고 약간의 마취 성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임신 촉진제로 널리 알려진 식물입니다. 이 아이 르우벤이 합환채의 용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이것을 가지고 어머니에게 드리면 어머니가 기뻐하실 것이다, 어머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하고 이것을 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효자입니까? 효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하기 때문에 그 효성이 남다릅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들의 눈에 어머니가 얼마나 가엾게 보였으면, 내가 이 합환채를 가져다가 어머니에게 드리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눈빛 하나 주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형제 네 명을 낳고 출산이 멈추었습니다. 아버지의 눈빛은 느끼기에도 차갑습니다. 한 번도 어머니 레아를 향해서 사랑을 표현해 주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갈망합니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그 남편의 손길 한 번을 그리워합니다.
작은 어머니 라헬을 보면 기세가 등등합니다. 르우벤이 볼 때 밉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의 모든 권한은 라헬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라헬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고, 라헬이 어머니를 구박하고 천대하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라헬의 몸종 빌하까지 어머니를 무시하고 천대합니다. 아들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자라고 있고, 아들의 마음속에는 상처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 작은 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 빌하를 적대하는 마음, 그 마음이 마음속에 깊이 자라고 있고, 그것은 청소년기 르우벤에게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낳는 고통 가운데 자라게 합니다.
그런 가운데 합환채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어머니에게 드리면 어머니가 좋아하시겠지,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가지고 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하고 자란 르우벤이라면,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아이라면, 사춘기 나이에 넘쳐나는 힘을 발산하다가 사고도 치고, 이리 들이받고 저리 들이받고 좌충우돌 하면서 부모의 걱정과 근심이 되어야 정상적인 나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부모를 걱정하고 가정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만든 환경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자녀를 사랑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방식은 자녀의 성장 발달 단계에 따라서 달라져야 합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은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그들에게 억만금 용돈이 뭐가 필요합니까? 그들에게 넓은 집, 좋은 집이 중요하긴 하지만 가장 최고의 가치는 아닙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전인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열심히 뛰어놀고 적당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좋은 인간관계와 교우관계를 갖출 수 있도록 아이들을 양육하고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돌봐주고 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몫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하루에 10시간, 12시간 수학 공부를 시키고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한다면 그 아이가 행복하겠습니까? 아이의 발달 단계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대도시 학원가에 가면 빠지지 않고 존재하는 반이 있는데, 초등학생 의대 입시반입니다. 대도시마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 가면 네 살부터 '닥수'라는 반이 있습니다. '닥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닥치고 수학'입니다. 네 살부터 수학을 가르쳐서 영재교육을 시켜야 떨어지지 않고 뒤쳐지지 않고 고3까지 쭉 올라가서 수학을 열심히 해서 의대에 진학할 수 있다고, 지금 대한민국은 의대 광풍입니다.
네 살짜리가 학원에 앉아서 수학 문제를 푸는 나라가 정상입니까? 그 아이가 행복하겠습니까? 초등학교 아이가 의대 입시반에 들어가서 하루 10시간씩 공부하는 나라가 정상입니까? 그 아이가 어떻게 행복합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바로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까? 기성세대 어른들이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의 지금의 능력과 자질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학벌로 줄 세우는 사회를 지금의 기성세대 어른들이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자녀들이 이렇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제 갓 결혼한 30대 젊은이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자녀를 낳기가 싫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지금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른들이 만든 문제인데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야곱의 가정이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야곱과 레아와 라헬이 만든 이 지옥 같은 상황이 르우벤에게 그대로 전이되어서, 르우벤은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들에 나가서 일할 때도 합환채밖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어머니가 행복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 어머니가 무시당하지 않고 멸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것을 고민하는 르우벤이 정상이 아니고, 이런 가정을 만든 어른들이 문제입니다.
정상적으로 자랄 리가 없습니다. 그는 나중에 큰 죄를 범합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창 35:22)
물론 이 죄는 르우벤이 백 번 잘못한 것입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백 퍼센트 르우벤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 죄를 짓도록 만든 환경의 주범은 야곱이고 레아고 라헬, 어른들입니다. 르우벤 마음속에 라헬을 향한 증오와 분노, 빌하를 향한 적개심,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식으로 삐뚤어진 욕망으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만든 죄입니까? 어른들이 절반 이상의 죄를 감당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한국전쟁 때 징집 대상은 만 18세 이상이었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징집 대상입니다. 그러나 18세 이상만 군에 갔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4세에서 17세까지 학도병이라는 이름으로 징집됩니다. 그 아이들, 14살짜리 아이들은 총 한 번 잡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에게 소총이 지급됩니다. 자기 키만 한 총이 지급됩니다. 수류탄이 지급됩니다. 탄환이 지급됩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을 애국심을 가진 아이라고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만든 이 나라의 어른들이 문제입니다. 북한 공산 집단이 쳐내려 오는데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지 못한 이 무력한 나라의 어른들이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어떻게 애국심으로 그것을 다 포장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걱정도 내리 걱정이어야 정상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입니다. 자식은 부모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속도 썩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망아지처럼 들이받으면서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부모는 그런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돌보고 울타리가 되어 주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크면서 성장하고 자기 자리를 잡아 갑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속 썩이는 것이 정상이지, 거꾸로 부모가 자녀의 속을 썩이고, 자녀가 부모 걱정하고 염려하고, 자나 깨나 우리 어머니 걱정, 우리 아버지 걱정, 이 가정 걱정하다가 눈물로 잠을 새우고 눈물로 살아가는 그 가정이 정상입니까? 그런 아이들은 철이 일찍 듭니다. 누구든지 철이 일찍 든 아이들을 우리는 착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모름지기 우리 부모들이 '나는 어떤 부모인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나는 우리 자녀들에게 걱정거리를 안겨 주는 부모인가? 나는 우리 자녀들에게 염려가 되는 부모인가? 나는 우리 자녀들에게 자랑거리가 되는 부모인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청년들에게 당회가 걱정거리가 되어서야 정상적인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젊은 청년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 제목이 "하나님 우리 교회 당회를 바르게 세워 주십시오, 하나님 이 교회가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정상적인 교회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는 교회는 정상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어른들이 청년들을 걱정하고 넓은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그것이 정상입니다.
우리는 좋은 어른들입니까? 젊은이들이 어른을 걱정하는 세대는 희망이 없습니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걱정하고 그들을 돌봐 주고 섬겨 주고 좋은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부디 자랑스러운 부모 되시기 바랍니다. 좋은 어른 되시고 좋은 믿음의 선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해결하시는 분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창 30:14)
라헬이 뻔뻔하지 않습니까? 맡겨 놓았다는 듯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내놓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볼 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이렇게 요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창 30:15)
이 말을 보니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라헬은 가정의 모든 권한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라헬이 남편에게 허락해 주지 않으면 야곱은 레아의 방으로 건너갈 수조차 없습니다. 모든 권한을 다 가지고 있으니 그가 이렇게 당당하고 뻔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례해서 르우벤은 동시에 더 가슴 아프고, 미움은 더 증폭되어 갑니다. 어쨌든 라헬은 합환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창 30:17)
합환채는 라헬이 가져갔는데 아이는 레아가 낳았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여섯 번째 아들도 레아가 낳았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딸까지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라헬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해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생명의 근원도 하나님이시고, 우리 앞에 있는 당면한 문제를 풀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합환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합환채를 차지한 이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레아에게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레아의 태의 문을 열어 주셨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레아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함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신 것입니다. 지금 여기도 하나님께서 레아의 부르짖음과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소원을 들어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라헬은 하나님 빼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라헬은 기도해 보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다른 방법은 다 했습니다. 남편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합환채도 자기가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 당면한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풀어 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6-7)
한나는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는 분. 한나가 아이가 없어서 고통받을 때, 자기 대적 브닌나 때문에 가슴 아파 힘들어할 때, 한나는 이 문제를 브닌나와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풀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간구하고 기도하고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해결함을 받고 나와서 고백하는 찬양의 고백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모든 문제를 풀어 주시는 아버지이시라고.
이것은 단순한 논리입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논리를 모르면, 이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인생이 복잡해집니다.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하심을 아는 분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어쨌든 이 문제를 하나님과 해결하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면 합환채를 찾게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다른 데 가서 기웃거립니다.
시편 기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시 44:5-6)
활을 의지하지 않고 칼을 의지하지 않으면 누구를 의지합니까?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쓰실 종들을 훈련시키실 때 광야로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그렇고 다윗이 그렇습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없습니다. 요새도 없습니다. 숨을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그 사람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 되시고 나의 위로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사막 한가운데 광야에서 깨닫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훈련받고 난 이후에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1-2)
다윗이 훈련받고 나서 고백한 것입니다. 사막에 요새가 어디 있습니까? 사막에 반석이 어디 있습니까? 사막에 그의 의지가 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이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라헬은 합환채 의지하다가 실패했습니다. 한때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잡았던 사울 왕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위기에 몰리자 무당을 찾아갑니다. 무당을 찾아가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합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그는 전쟁에서 패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 한 분을 의지했던 사람들은 살아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십니다.
우리 인생에 여러 가지 답답한 문제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만나면 합환채도 의지하지 말고, 무당도 의지하지 말고, 내 능력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한 분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간절하게 매달리고 하나님께 엎드리면 하나님이 반드시 해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좋은 부모이고 싶습니다. 좋은 어른 되고 싶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청년들이, 우리 자녀들이 부모를 걱정하고 기성세대를 염려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가 자녀들에게,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좋은 울타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야곱의 가정에서 자라난 불행한 르우벤 같은 아이들을 우리가 만들지 않도록 도우시고, 아이는 아이답게, 청년은 청년답게 성장하도록 좋은 부모 되어서 그들을 돌봐 주고 섬겨 주는 어른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 인생에 답답한 문제들, 내 능력으로 풀 수 없는 문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라헬은 합환채를 의지하였고 사울은 무당을 의지했으나 다 실패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요새이시고 나의 반석이라고 고백하는 우리의 고백을 들으시고, 엎드려 구하고 간구하는 자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