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본문: 창세기 26:16-22
이완용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은 없습니다. 매국노 중의 매국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세 가지 사건의 주범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의 을사오적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1907년 정미7조약의 정미칠적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1910년 경술국치의 주범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주권을 넘겨준 세 번의 고비마다 결정적인 순간 그 자리에서 이완용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일제에 국권을 넘겨주고 받은 것은 백작의 작위였습니다. 당시 돈으로 15만 원을 받았는데, 지금 시세로 약 30억 원 정도 됩니다. 나라를 팔아먹고 3년이 지난 1913년에 약 3,700여 평의 저택을 지었습니다. 국권을 넘긴 지 10년이 지난 1920년 그가 보유한 현금이 당시 돈으로 약 300만 원, 현재 시세로 600억 원 정도가 되었습니다. 10년 사이에 재산이 20배로 불어난 것입니다. 그만큼 그 기간 동안 각종 이권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깊이 개입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1926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어느 신문에서 이런 제목을 뽑았습니다. "팔아서는 안 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사람."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죽은 후 그의 재산을 환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고스란히 그의 자손에게 상속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분노합니다. 친일파의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이런 재산은 받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 후손들 입장에서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내 아버지가, 내 할아버지가, 내 증조할아버지가 이완용이고, 그분이 나라를 팔아서 만든 돈으로 내가 지금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도 제정신이 아닙니다. 부끄러워서 숨기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유산은 남기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합니다.
아브라함이 남긴 우물
사람들은 영향력을 남기건 물질을 남기건 반드시 흔적을 남깁니다. 특히 자손들에게 무언가는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기왕에 남기려면 좋은 것을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위대한 믿음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유산인 우물도 남겼습니다. 이것이 이삭에게 크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자손들과 자녀들에게 어떤 것을 남기며 살고 있는지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상식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맺은 언약을 상식선에서 잘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도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초보농부였던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지어 그해에 백 배의 수익을 내자 그만 이성을 잃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를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우물에 흙으로 메워버리고 돌을 넣어서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이 그들에게 떠나라고 말합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창 26:16)
말은 점잖게 '우리를 떠나라'고 했지만 사실상 추방 명령이 아니겠습니까? 떠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이삭과 리브가 가족이 여기서 농사짓고 있지 않습니까? 초보농부로서 밭을 일구고 논을 일구어 열심히 농사지었습니다. 그해에 백 배 수익을 얻었습니다. 떠나라고 하는 것은 농사지은 농토와 땅과 모든 것을 다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골짜기로 간다는 것은 이삭과 리브가 가족이 이제는 겨우 연명하겠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이어가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크게 농사짓고 크게 목축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이삭에게는 생각이 있었고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창 26:18)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도 그 땅에서 농사짓고 목축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브라함이 거기에서 여러 개의 우물을 이미 파둔 적이 있습니다. 이삭은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장소도 알고 있었고, 아버지가 불렀던 우물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서 우물을 파고 다시 생명을 연장해 나갑니다.
창세기 21장 25절과 3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창 21:25)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창 21:31)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농사지었는데 역시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을 위협했습니다. 우물을 빼앗아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항의합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하나님 앞에서 맹세했습니다. 그래서 그 우물이 맹세의 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후손들을 위해 그 우물을 등기한 것입니다. '앞으로 영원히 이 우물은 우리 자손의 것입니다. 내 것인 동시에 우리 자손의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이미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받아 놓았습니다. 그 덕분에 이삭이 그 우물에서 다시 물을 길어 먹고, 위기에 빠졌을 때 죽지 않고 생명을 연장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 남긴 유산은 바로 이렇게 좋은 우물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자녀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주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겨주고자 하는 것은 돈입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동산과 부동산을 어쨌든 많이 쌓아두면 자녀들이 좀 편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돈은 쓰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쓰면 없어집니다. 혹시 투자라도 잘못하면 한순간에 종이 조각이 되어버립니다. 명예는 어떻습니까? 아버지가 누렸던 명예를 자녀들에게 그대로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예라는 것이 한번 땅에 떨어져서 추락하기 시작하면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한번 추락한 그 집안의 명예는 다시 세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돈도 명예도 자녀들에게 영원한 영향력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신비로운 것은 이 우물을 물려주었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흙으로, 돌로 메워버렸는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이삭이 그것을 파보았더니 여전히 거기서 생수가 솟아납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먹고 마실 수 있는 좋은 우물에서 양질의 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이런 것들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의 유산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어머니들이, 아버지들이 금요일 저녁이 되면 어린아이들을 집에 둘 수가 없어서 아이를 데리고 금요 철야 기도회를 갔습니다. 요즘은 금요 기도회가 길어봐야 한두 시간으로 끝나지만, 과거 몇십 년 전에는 철야 기도가 아니었습니까? 밤새워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서 방석 두 장에 그냥 눕혀 놓고 담요 덮어놓고 거기서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어린아이들은 그저 그 자리에서 졸리니까 누워서 잡니다. 그런데 자다가 어머니가 흘리는 그 뜨거운 눈물이 얼굴에 떨어져서 잠이 깹니다. 그 어린아이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어머니 눈물을 얼굴에 뒤집어쓰면서 자랐습니다.
눈 떠서 둘러보니 우리 엄마도 울고 있고, 옆집 아줌마도 울고 있고, 교회 집사님 권사님들이 다 통성으로 기도하고 울고 있습니다. 무엇을 그리 구하는 게 많은지,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간구하고 구하는 기도가 그렇게 많은지, 그런 부모님에게서 그 눈물을 흠뻑 받아먹고 자랐습니다.
새벽이 됩니다. 새벽에 초종이 치고 재종이 치면 급하니까 아이를 들쳐 업고 새벽기도를 갑니다. 새벽에 아이를 앉혀 놓으면 목사님 설교 길게 하시는데 그 어린아이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설교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억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차가운 칼바람이 부는 새벽에 우리 엄마는 왜 나를 들쳐 업고 이 새벽에 와서 기도하는가. 매일, 그것도 매 순간 새벽마다 와서 기도하는가. 하루 종일 일하고, 논일 밭일하고, 손이 부르트도록 일하고,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픈데, 저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 재단 깨우고 가서 왜 우리 엄마가 저렇게 기도하는가.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나고 하나님을 떠나 살기도 하고, 자식들이 믿음을 잃어버리고 살기도 하고, 내 인생의 기도의 우물이 블레셋 같은 악당들이 흙으로 메우고 돌로 메워서 하나도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제는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고 없습니다. 도움을 구할 데가 없습니다. 인생의 어려운 일이 닥치는데 내 힘으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사방으로 위협을 당하는데 돌파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생각난 것이 그 금요일 밤에 뜨거웠던 어머니의 기도의 눈물이고, 새벽 칼바람을 가르고 나가서 기도하던 부모님의 기도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신비롭고 놀라운 것은 수십 년 동안 기도하지 않아서 기도가 다 막힌 줄 알았는데, 흙으로 돌로 다 메워져 버린 줄 알았는데, 가서 기도하니까 다시 거기서 새로운 생수가 용솟음쳐 올라옵니다. 역사가 일어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금 마음에 뜨겁게 올라옵니다.
부모가 남긴 유산이, 기도의 유산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기도의 유산, 부모가 자녀들과 영적인 체험과 경험을 공유하는 놀라운 역사가 오늘 이 세대의 믿음의 사람들을 만든 힘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녀들과 체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시간을 오래 보내려고 합니다. 자녀들과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달력에 빨간 날이 되면 무조건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캠핑도 가고, 국내 여행도 가고, 심지어 해외여행도 갑니다. 그런데 왜 영적 경험은 함께 하지 않습니까? 예배를 함께 드리고, 금요기도에 함께 나오고, 새벽 제단 함께 세우고, 가정에서 가정 예배드리고, 함께 기도하고 공유하는 영적 체험이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깊은 우물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나이 차이가 99세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살 때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영적 체험을 오래 함께 했습니다. 모리아 산에 올라갈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삭이 말하지 않습니까? "아버지, 번제할 나무는 여기 있는데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아들아,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올라가 보니 그 어린 양이 자기입니다. 아버지가 밧줄로 꽁꽁 묶는데 차마 자기 눈을 마주치지 못합니다. 그냥 그대로 묶여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천사의 소리가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건너편에 보니 어린 양 한 마리가 숲에 걸려 버둥거리고 있습니다.
위대한 여호와 이레의 경험을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이 함께 공유했습니다. 그때 이삭이 무엇을 느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헌신하고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면 하나님이 가만히 있지 않으신다는 것, 하나님이 여호와의 산에서 미리 준비하신다는 것을 아들이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아버지의 헌신을 보면서 가장 귀한 나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아끼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철저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신다는 사실을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경험했습니다.
우물 팔 때도 이삭은 함께 있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블레셋 지경에서 우물을 팠습니다. 여기서 우물 파고, 저기서 우물 파고, 우물의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아들 이삭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놀라운 영적 경험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여기서 우물을 파셨고, 저기서 우물을 파셨고, 이 우물의 이름은 이렇게 지었고, 저 우물의 이름은 저렇게 지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영적 체험이 오늘의 이삭을 만든 것입니다.
오늘 부모님들, 할아버지 할머니들, 우리 자녀, 우리 손자 손녀들과 영적 경험을 함께 공유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을 행하는 자
또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한 가지 궁금하게 여겨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 메워버렸습니다. 화가 나서, 기분 나빠서 메워버렸습니다. 흙으로 넣고 돌로 다지고 다 덮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고대 사회에서 우물이란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한 집안이 먹고 마시는데, 동물들을 먹이는데, 농사짓는데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 땅에 기근이 왔습니다. 그러면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물의 위치를 자기들이 메웠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고 다시 파헤쳐 보면 거기서 물이 나올 것 아닙니까?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이 메운 우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찾지 못했습니다. 이삭이 찾아냅니다. 이삭이 와서 그 우물을 정확하게 발견합니다. 이름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이 우물을 판 적이 없습니다. 빼앗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와 함께 직접 우물을 팠습니다. 직접 우물을 파본 사람은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압니다. 우물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직접 우물을 파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영적 교훈을 줍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그래야 그 우물이 내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간증을 듣습니다. 은혜로운 간증을 들으면 은혜를 받습니다. '아, 저분이 정말 고생하셨구나. 저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그런데 내가 그 말씀 붙들고 살아내지 않으면 그 간증은 내 것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것이 되지 못합니다. 말씀 붙들고 실천하고 살아가야 그 말씀이 내 것이 됩니다. 말씀 붙들고 살아갈 때 그 말씀이 온전히 나를 변화시키는 은혜의 말씀이 되고, 그 우물이 내 것이 됩니다.
파지 않는데, 남의 것 빼앗기만 하는데, 어떻게 그 위치를 알겠습니까? 이삭은 직접 파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3-25)
그 옛날 거울은 청동이었습니다. 희미한 거울입니다. 거울을 보고 돌아가지만 곧 자기 얼굴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곧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었으면 실천해야 됩니다. 열심히 실천하고 살아가야 내 것이 되고, 그 우물이 내 것이 됩니다. 이삭처럼 우리도 말씀 한 절 한 절이라도 읽고 듣고 실천해서 우리 것으로 온전히 소유하고 만드는 지혜로운 백성 되시기 바랍니다.
원천을 소유한 자의 여유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창 26:19)
샘 근원을 얻었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삭의 종들이 이삭의 지도를 받아서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팠습니다. 파다 보니 올라가고 올라가다 보니 근원을 발견했습니다. 원천을 발견했다는 말입니다. 블레셋 그랄 지방에 흐르고 있는 그 물줄기의 원천을 드디어 이들이 발견했습니다.
누가 주인입니까? 정치적 주인, 군사적 주인은 블레셋 사람들이지만, 이 땅 밑에 흐르고 있는 물줄기의 흐름과 원천을 발견한 사람이 실질적 지배자 아니겠습니까? 열심히 땅을 파면 우물 몇 개는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천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원천을 가지는 자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여유를 가집니다. 이 흐름을 다 알고 있으니까 여기를 파면 우물이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고, 저기를 파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유가 있습니다. 다툴 일이 없습니다.
원천을 알고 있으면 누가 달라고 하면 줘 버리면 그만입니다. 이것 붙으면 목숨 걸고 싸우지 않습니다. 원천이 없는 사람은 그 작은 것 하나 때문에 시비 걸고, 싸우고, 분쟁하고, 다툽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창 26:20)
블레셋 사람들은 원천을 모르기 때문에 남의 것을 빼앗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계속 다툽니다. 빼앗으려고 합니다. 줘버리면 그만입니다. 나는 원천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창 26:21)
또 빼앗습니다. 또 줘 버렸습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창 26:22)
이제 이쯤 되면 블레셋 사람들이 겁이 납니다. 저들은 땅만 파면 우물이 나오니까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더 이상 시비 걸지 않습니다. 원천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여유롭습니다.
우리가 물질이 많아서 여유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이 많은 사람,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항상 불안해 합니다. '이거 다 써버리면 어떻게 하지. 이 물질이 잘못되면 어떻게 해야지. 그때 난 어떻게 살지.' 겁이 납니다. 그래서 여유가 없습니다. 베풀지 않습니다. 나누지 않습니다. 물질이 저렇게 많은데도 쓰지도 못하고 항상 입에 돈 돈 돈을 달고 다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질이 없어도 여유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삶의 주인이시고 내 인생의 원천이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우리가 다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땅을 지으시고 지금도 통치하시고, 이 땅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이가 내 아버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 원천을 소유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원천이 내 것인데 왜 싸웁니까? 왜 다툽니까? 여유를 가지고 베풀어 줘야 됩니다. 나누어 주고, 베풀고, 싸우지 않고 여유를 가지는 자가 되셔야 됩니다.
정말 하나님 만난 사람들은, 믿음의 백성들은 다툴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다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 17:7-8)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 원천이 깊은 곳 하나님께 다 있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는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염려가 없습니다. 더 이상 걱정하고 염려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과 함께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려서 주님을 찬양하고, 주와 함께 아름다운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과 권력과 명예, 물질을 물려주려고 하지만, 우리는 다시 파고 새롭게 해도 영원히 솟아나는 생수를 물려주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기도의 우물, 말씀의 우물, 예배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물을 많이 많이 준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과 영적 체험을 더 깊게 더 많이 더 오래도록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저 버리는 자 되지 않도록 도우시고, 그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깊게 파서 온전한 생수를 그곳에서 길어내는, 그 우물을 내 것으로 만드는 지혜로운 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을 소유한 자는 원천을 가진 자이니 여유 있다 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다투지 않도록 도우시고, 원천을 소유한 우리가 오히려 풀고 나누고 넉넉한 인생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