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하지 못하고
본문: 창세기 27:5-23
과거 중국의 진시황은 대륙을 통일한 후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까이 한 사람은 오직 환관 조고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환관 조고를 통해 검증된 인물만 만났고, 보고를 받을 때도 반드시 그를 통했습니다. 그런데 진시황이 세상을 떠난 후 그렇게 신임했던 환관 조고가 유언장을 위조했습니다. 큰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유언장을 바꾸어 열여덟 번째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주는 것으로 조작해버렸습니다. 희대의 사기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고려 말 공민왕은 신돈이라는 승려에게만 의지했습니다. 주변에 고관들과 신하들이 있었지만, 오직 신돈의 말만 들었습니다. 열두 살에 왕이 된 조선의 열세 번째 왕 명종 역시 환관을 끼고 살았습니다. 명종이나 공민왕이나 진시황이나 주변에 신하가 없었겠습니까? 훌륭한 신하들, 공부를 많이 한 신하들, 나라를 누구보다 사랑한 신하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신하들과 함께 일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라는 조직이 있고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과 시스템 안에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크고 작은 조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는 가정도 있고 일터도 있고 국가도 있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모든 조직에는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신앙생활에 그대로 가져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게 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만나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눈에 보이는 여러 조직을 만들어주셨습니다.
1. 이삭의 실수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가정에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을 두신 이유는 가정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 조직, 여러 체계와 시스템을 만들어 주시고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삭은 하나님이 이미 그에게 주신 선물, 그 조직을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그 결과 빚어진 일들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창 27:5)
이 본문은 매우 이상합니다. 지금 이 가정에 아주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정의 장자권을 계승하는 결정적인 자리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삭으로, 이삭을 통해서 에서냐 야곱이냐, 장자권을 물려받을 사람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 결정의 주체가 과연 누굽니까? 이삭과 리브가가 함께 의논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리브가가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불러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즐기는 별미를 위해서 너는 가서 사냥하여 고기를 잡아와라. 그걸 내가 마음껏 먹고 너를 축복할 테니 어서 가서 고기를 잡아와라." 그 이야기를 리브가가 문 밖에서 들었습니다. 리브가가 누굽니까? 이삭의 아내 아닙니까? 이삭의 일생의 동역자, 평생의 동역자 아닙니까? 그런데 일생의 동역자인 리브가가 이 중요한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하고 문밖에서 들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정상입니까? 옳은 일입니까?
이삭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하고 난 다음에 리브가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이삭은 자기 문제로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 문제를 가지고 와서 20년 동안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끌어안고 함께 기도하고, 엎드려서 20년이 지난 이후에 하나님이 이 가정에 에서와 야곱 쌍둥이 형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부부가 함께 작은 일이든지 큰일이든지 같이 의논하고 기도하고, 함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리브가를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자기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자기 일을 자기 멋대로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조직과 시스템을 주셨습니다.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장관들과 함께 일해야 하지 않습니까? 국민들이 자기 지역구에서 대표로 뽑아서 국회로 보낸 국회의원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뜻과 방향을 달리하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을 때로는 설득도 하고 때로는 만나기도 해서 함께 같은 뜻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국가를 위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는 당회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재직회도 있습니다. 공동회도 있습니다. 공적인 기관과 공적인 조직이 있습니다. 이 공적인 조직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사적 조직을 통해서 일하면 교회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에 하나님께서 남편과 아내를 주셨습니다.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실 때 돕는 배필을 허락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 '에제르 크네그도'는 무작정 돕는다는 말이 아니라 반대하는 돕는 배필입니다. 때로는 협력도 하고 때로는 잘못되었으면 반대도 하는 자가 돕는 배필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리브가를 돕는 배필로 허락해 주셨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공식적인 시스템입니다. 이 공식적인 가정의 시스템을 철저하게 배제시키는 것은 문제를 전제로 하는 행동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 혼자 200만 명이 넘게 지도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조직을 주셨습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이 조직을 통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돕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조직과 시스템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고 가는 힘이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행 6:2-4)
사도들이 초대교회를 이끌어 가는데 하나님께서 시스템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일곱 집사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구제하는 일과 교회 살림살이를 맡게 하시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조직이고 이것이 시스템입니다. 만약에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것을 순종하지 않고 일곱 집사를 세우지 않고 자기들이 다 하겠다고 했으면 그 조직이 엉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일곱 집사 가운데는 첫 번째 순교자 스데반 집사도 있었고,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한 복음 전도자 빌립 집사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들과 함께 교회를 이끌고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하나님이 주신 가정이라는 조직을 소외시켰습니다. 특별히 믿음의 동역자 리브가를 배제시켰습니다. 그러니 올바른 결정이 일어날 리가 있습니까?
만약 우리 가정에 남편 된 사람이 아내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자기 혼자 모든 일을 결정하면 영안이 어두워진 이삭 같은 존재입니다. 만약에 우리 가정에 아내라는 분이 남편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모든 일을 결정해 버린다면 믿음의 눈이 어두워진 이삭 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가 같은 마음으로 함께 마음을 열고 의논하고, 아주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같이 결정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가 있습니다.
2. 어두워진 영안
이삭은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창 27:1)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다. 이것은 자연적인 노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졌다는 뜻입니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신 34:5-7)
모세가 죽을 때 나이가 120세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이 흐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눈이 흐리지 않았다는 말은 영안이 아직까지 밝았다는 의미이고, 눈이 흐려졌다는 것은 영안이 어두워졌다는 뜻입니다. 이삭이 눈이 흐려졌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영적인 안목이 흐려졌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옛날에 꽤 괜찮았던 이삭이지 않습니까? 믿음이 참 좋았던 이삭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의 영안이 어두워진 이유는 단 한 가지,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가 기도 한 번만 해봤더라면 하나님께서 에서를 세우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에서가 어떤 인물입니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치웠습니다. 헷 족속의 딸들을 그것도 한꺼번에 둘이나 아내로 들인 인물입니다. 가정의 영적 질서를 파괴했습니다.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고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런 인물을 어떻게 이 가정에 장자권을 계승하는 인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겠습니까?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자기 욕심에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내가 즐기는 별미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거룩한 사명을 무시해버리고, 내가 즐기는 별미를 가장 상위 개념에 놓아버린 미련한 사람이 이삭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사람이 변질됩니다.
믿음의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가져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 정말 괜찮았던 분이 중간에 타락하고 쓰러지고 넘어지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기도란 자기를 하나님 앞에 비추어 보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엇을 달라고 달라고 구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에 나를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연약함과 약점과 나의 무능함이 드러납니다. 그것을 가지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회개하고 돌이키고 돌아보면서 자신을 정결하게 만들어 갑니다. 그래야 영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여기에 게을렀습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이 무뎌지고 영안이 어두워지고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는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서 결국은 자기뿐만 아니라 가정을 병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 이삭이 무너지는 것은 그 이삭이 무너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영향력을 줍니다. 이삭이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리브가에게도 영향을 주고 말았습니다.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창 27:8-10)
리브가가 이렇게 야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야곱은 겁이 났습니다. 못하겠다고 합니다. 들키면 어떻게 될까? 겁을 냅니다. 그런데 리브가가 더 강하게 야곱을 몰아세웁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창 27:12-13)
3. 리브가의 잘못된 선택
리브가가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우리가 아는 리브가는 굉장히 반듯한 여인입니다. 굉장히 스마트하고 믿음이 좋은 여인입니다. 결단력도 있고 바른 여인 아닙니까? 그런데 리브가가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 탓입니까? 이삭 탓 아닙니까? 이삭 한 사람의 믿음이 무너지니까 그 믿음이 무너진 그 영향이 리브가에게로 그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이토록 중요한데 그 한 사람이 쓰러지니 리브가도 함께 같이 망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리브가가 이렇게 된 것은 오로지 이삭의 탓,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까? 리브가는 그러면 죄가 없습니까? 리브가에게는 문제가 없습니까? 그에게는 책임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 25:23)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 말씀을 이미 쌍둥이 아이들을 태중에 임신할 때부터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상황은 에서가 가만히 두면 축복을 받게 되어버리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리브가는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따져 물어야만 했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이루어져야 되는 진리의 말씀인데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셔 놓고서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물어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생략해버렸습니다. 잊어버렸습니다. 까먹어버렸습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진리를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절대진리. 그런데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상대성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유리한 것, 유리한 것은 붙잡고 불리한 것은 붙잡지 않습니다. 진리가 있다 하더라도 진리를 붙잡는 것이 나에게 불리하면 외면해버립니다. 이것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이것을 붙잡아서 지금 나에게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붙잡아버립니다. 이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인생의 유불리를 매일같이 따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내가 불리하더라도 진리를 수호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진리를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리브가가 하는 행동을 보십시오. 진리를 붙잡고 살아갑니까? 정신 나간 이삭이, 기도하지 않은 이삭이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에서를 축복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리브가가 반대급부의 또 다른 악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아들 야곱을 앞장세워서 혹시 저주가 임하면 이 모든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 너는 걱정하지 마라. 악에 또 다른 악으로 대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리브가가 크게 잘못한 일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만약에 리브가가 여기서 가만히 있었다고 해봅시다. 하나님 앞에 그저 기도만 하고, '하나님 태중에서 말씀하신 그 말씀 이루어 주십시오' 하고 기도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면 누가 축복 받았을까요? 이삭은 누구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을까요? 에서가 지금 밖에 가서 사냥한 고기를 잡아와서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께 가지고 오면 당연히 에서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삭이 준 그 축복의 장자권이 에서에게 그대로 흘러가는 것입니까? 리브가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이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오해해도 너무 크게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을 자기 손으로 세웠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그에게 기름부어서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사울왕이 자기 마음에 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습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셨지만 폐하기도 하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종 다윗을 세워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름 부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왕권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성막을 약속하시고 성전도 세웠습니다. 이 성전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이끌어가는 제사장이 타락했습니다. 왕들이 타락했습니다. 레위인이 타락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모든 제사가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성전을 불태워버립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서 성전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다 쓸어가게 하셨습니다. 모든 은금패물을 다 도둑맞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하시는 일입니다. 만약에 이삭을 통해서 에서가 축복받았다 한들 에서가 이것을 감당할 감이 됩니까? 그는 이미 자기 손으로 장자권을 팔아치운 인간입니다. 가정도 정상적인 가정이 아닙니다. 가만히 두면 스스로 쓰러질 인간입니다. 그런데 왜 악에 악으로 대항해서 또 다른 죄를 만드는 것입니까?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그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경륜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이 하시리라 믿고 나는 내가 할 일인 기도만 하면 됩니다. 악을 막기 위해서 또 다른 악으로 대항하고, 큰 죄를 막기 위해서 내가 더 큰 죄를 저지르고, 괴물을 막기 위해서 내가 더 큰 괴물이 되어버리는 이 악의 악순환을 우리는 이제 끊어내야 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리브가가 잘못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리브가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축복을 주는 분은 누굽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이삭입니까? 하나님이 주는 것 아닙니까? 지금 이삭은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도구로 사용해서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전제는 이삭이 영적으로 정결하다는 전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삭은 영적으로 정결하지 않습니다.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내가 즐기는 별미 때문에 그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안수기도 하려는데 아들 야곱의 머리를 거기다가 들이밀고 있습니다.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창 27:22-23)
분별도 못하고 축복하는 이삭입니다. 지금 너무 코미디 같은 상황 아닙니까? 이삭은 지금 누구에게 축복한 것입니까? 이삭은 자기가 축복하는 사람이 에서인 줄 철떡같이 믿고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에게 축복받은 사람은 누굽니까? 야곱 아닙니까? 그런데 야곱은 자기 입으로 누구라고 말했습니까? 에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축복받은 것입니까? 에서가 축복받은 것입니까? 야곱이 축복받은 것입니까? 이런 넌센스 같은 상황, 이런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런 짓입니다. 우리는 이런 악의 악순환 가운데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지 어떻게 사람이 복을 주는 것입니까? 이삭에게 복 받기 위해서 거짓말하고 악을 행하고, 이 악에 또 다른 악을 행해서 거기에다가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이 리브가의 잘못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되겠습니까?
이삭도 변했고 리브가도 변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그 초심의 마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 끝까지 간직하려면 매일같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고 말씀을 꺼내보고 기도하고, 반성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그 믿음. 결단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매 순간 하나님 앞에 날을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은 참 좋았는데 갈수록 변질되고 타락한 이런 사람들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하나님 앞에 온전히 그 심판대 앞에 설 때까지 매 순간 기도로 우리 자신을 살피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도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도 말씀 앞에 날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이삭 같은 사람이 되고 리브가 같은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주여, 우리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세워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고, 은혜 위에 은혜를 구하여 변하지 않고, 믿음이 흐려지지 않고, 우리의 영안이 어두워지지 않는 믿음의 백성으로 온전히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정 제대로 지키며, 성실하게 지키며,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며 서로 의논하고 기도하며 함께 동역하는 믿음의 가정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