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강 /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32:26-28)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본문: 창세기 32:26-28

요즘 우리는 인공지능(AI)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인공지능 자체가 우리 인생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난 11월 22일, 미국 펜타곤 주변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진이 전 세계로 전송되었습니다. 전 세계 언론이 긴급 타전했고, 사진 속 상황은 심각한 폭발 현장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가짜 사진이었습니다. 가짜로 판명될 때까지 미국 실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어 증시가 출렁거리기까지 했습니다. 가짜가 현실을 삼키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사진이 있습니다.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관 공식 계정에 올라온 사진인데, 팔레스타인의 한 아버지가 다섯 명의 아이를 업고 안고 손에 잡고 포화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진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진 역시 인공지능이 만든 가짜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관 공식 계정에 올라왔기 때문에 전 세계 언론이 이 사진을 퍼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사전 회사인 웹스터 사가 올해의 단어로 '오센틱(Authentic)', 곧 '참된, 진짜의'라는 단어를 선정했겠습니까. 진짜가 각광받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진짜입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나는 진짜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짜의 인생이란 어떤 인생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뜻대로 사는 것이 진짜 인생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하여 타락했습니다. 죄로 타락한 인생은 진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거짓되고 악하며, 사탄이 끌고 가는 대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참되고 올바른, 진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름을 바꿔 주셨습니다. '야곱'은 가짜 인생이고,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며, 이제는 '이스라엘'이 되어 참된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나는 정말 이스라엘로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복이십니다

야곱은 20년간의 하란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가 400명의 훈련된 군사를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답답하고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는 그 밤, 어떤 분이 찾아오셔서 야곱과 씨름을 하셨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한 적이 없었습니다. 장자권을 붙들고, 사랑을 붙들고, 물질을 붙들고 살았지, 하나님과 씨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진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이겼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허벅지 관절을 맞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무너져 내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쓰러진 그의 허리를 꼭 붙들고 계셨습니다. 야곱도 지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6)

야곱이 하나님을 꼭 붙들고 놓지 않으며 "나를 축복해 달라, 나에게 복을 달라"고 간청합니다. 야곱은 처음에 이분이 하나님인 줄 몰랐을 것입니다. 다짜고짜 와서 씨름을 시작하는데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분이 하나님이심이 확실해집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이렇게 강한 분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약점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야곱은 고백합니다. "나를 축복해 달라"고.

야곱의 이 고백은 그의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고백이며, 믿음의 성장을 보여주는 위대한 고백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제목만 바뀌었을 뿐, 자기 인생의 문제로 걱정하며 살아왔습니다. 장자권 문제, 사랑의 문제, 물질 문제로 걱정하며 살았고, 지금은 에서 문제로 걱정하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하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문제는 에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하나님인 줄 알았으면서도 하나님께 에서 문제를 말하지 않습니다.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찾아오는데 나를 건져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에서 문제는 온데간데없어져 버렸습니다. 잊어버렸습니다. 생각조차 나지 않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 그저 복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나님만이 복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은 다윗의 고백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 16:2)

다윗은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다윗이 받은 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는 뛰어난 시인이었습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시편을 다윗이 기록했습니다. 그는 탁월한 연주자였습니다. 그가 악기를 연주하면 악령이 떠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불패의 장군이었습니다. 전쟁에 나가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그는 탁월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런 다윗이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하나님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모든 것은 복의 부산물이요 부스러기일 뿐이며, 하나님 한 분이 완벽한 복이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가끔 어린아이들이 백화점에 부모를 앞장세워 가서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르지 않습니까? 부모가 아이의 청을 들어 이것도 사주고 저것도 사주지만, 도가 지나쳐서 계속 조르면 부모는 아이를 내버려 둡니다. 아이가 울고불고 사달라고 하면 부모는 그 아이를 두고 나와 버립니다. 지금까지 야곱이 한 짓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장자권 달라, 사랑을 얻게 해달라, 물질 달라, 이제는 에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 그런데 이제야 야곱이 깨닫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만이 나의 복이 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께 에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매달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그저 복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복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복의 내용을 하나님께 구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나의 복입니다"라는 궁극적인 믿음의 고백, 신앙의 고백을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만이 나의 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들은 모두 복의 부산물에 불과한데, 하나님 한 분이 내 인생에 복 자체가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복으로 고백할 때 열리는 세계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시 16:3)

다윗의 고백입니다. 땅에 있는 모든 성도가 존귀한 자들이요,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다윗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 귀하다고,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 성도들에게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다윗에게 진짜로 기쁨이 되었겠습니까?

다윗은 다윗입니다. 그 이전 왕은 사울입니다. 사울 왕가가 몰락하면서 그 집안 사람들도 함께 몰락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왕조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불편합니다. 알게 모르게 잠재적인 위협 세력과 분열 세력이 다윗의 왕조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요압 같은 장군은 다윗에게 불편한 사람이었습니다. 위대하고 뛰어난 장군이기는 하지만 다윗이 그를 상대하기가 버거웠습니다. 어떤 일에서도 다윗에게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모든 사람을 존귀한 자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복이 되신다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복이 되시면,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 주신 사람은 모두 복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가시 같은 이웃도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고 찔러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람이라면, 나에게 복이 됩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내 약점이 고쳐지고, 모난 부분이 다듬어지고, 둥글둥글하게 되면, 그것 또한 하나님 앞에서 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도 하나님께 복 자체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에서도 그에게 존귀한 자가 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순간, 에서는 더 이상 자기 인생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람이니까, 에서도 그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나를 찌르는 사람,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에게 가시 같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복"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그런 사람들도 내 인생에서 존귀한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시 16:6)

다윗이 계속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 주신 구역이 아름답다고. 그 구역이 어디겠습니까? 다윗의 영토, 가나안 땅, 이스라엘 영토, 팔레스타인 지역입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그 영토가 아름답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은 이른 비가 내려야 농사를 시작할 수 있고 늦은 비가 내려야 농사를 마칠 수 있는 곳입니다. 국토의 상당 부분이 광야이고 사막입니다. 죽어버린 바다, 사해가 있어 물고기가 살지 못합니다. 아름답기로 따지자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애굽이 있는데, 나일 강이 흘러 기름지고 농사가 잘되는 그곳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땅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복이 되시니, 하나님이 주신 그 땅이 다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이 주신 일터가 있고, 가정이 있고,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일터와 다른 가정에 비하면 객관적으로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복으로 고백하는 자가 누리는 은총입니다.

속이는 자에서 겨루어 이기는 자로

야곱은 이제 이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복 자체를 구하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질문을 하십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창 32:27)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이름이 야곱인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이름을 물으십니까? "너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 너의 과거 모습이 어땠느냐"고, 그의 정체성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대답합니다. "야곱이니이다."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이었더라" (창 25:26)

야곱은 태어나면서 쌍둥이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뒤꿈치를 잡다'이며, '속여 빼앗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가 아무 생각 없이 자식의 이름을 지었을 수도 있습니다. 태어날 때 쌍둥이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온 것을 보니, 이 아이가 승부 근성이 남달리 탁월하구나, 앞으로 뒤쳐지지 않고 앞서가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의 뜻과는 상관없이, 야곱이 살아온 세월은 말 그대로 속이는 자의 인생이었습니다. 장자권을 손에 넣기 위해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가로챘습니다. 어머니와 공모하여 털옷을 입고 아버지 앞에 섰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야곱을 에서인 줄 알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했습니다. 속이는 자였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질문하신 것입니다. 너의 과거가 어땠는지, 너의 지난 모습이 어떠했는지, 너는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야곱은 대답합니다. "저는 속이는 자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발뒤꿈치를 잡고 살았고, 남의 뒤통수를 치는 인생을 살았고, 속여 빼앗는 자의 인생을 살아온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속여 빼앗는 인생을 살았을 때, 지금 남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가 사람을 바꿔치기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인 줄 알고 축복했는데 야곱이었습니다. 정확히 7년 뒤에, 그가 목숨처럼 사랑했던 라헬을 위해 7년을 일했는데, 첫날밤을 지내고 깨어 보니 사람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라헬이 아니라 레아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대로 당한 것입니다. 속여 빼앗았는데, 속임당하고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철저하게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며 훈련시키셨습니다. 그 훈련의 기간이 20년이었습니다.

야곱은 속여 빼앗는 자로 부자가 된 줄 알았습니다. 다 가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에서가 코앞에 와 있습니다. 에서가 훈련된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 있는데, 에서가 칼을 한번 휘두르면 장자권을 가진 것이 무색해집니다. 에서의 칼에 그의 목이 달아나면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에서의 칼에 라헬의 목이 달아나면, 생명처럼 사랑했던 라헬이 죽임당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에서의 칼에 그의 처자식이 죽고 재산이 날아가면, 지금까지 속여 빼앗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입니다. 속여 빼앗아야 한다고, 야곱의 인생을 살아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야곱의 인생을 살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남보다 약삭빠르고, 남보다 재빠르고, 남보다 눈치 빠르고, 남보다 집요하게 붙들고 살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면서도 성도답지 않게 야곱의 인생을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손안의 모래가 빠져나가듯, 움켜쥔 물이 빠져나가듯,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얻은 것도 없고, 남은 것 없이 모두 흘러내려 버렸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하게도 야곱의 인생을 살았는데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 인생은 가짜 인생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진짜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허무하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가짜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넌 이제 야곱의 인생을 살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며 또 다른 이름을 주십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8)

야곱으로 살지 말라, 이제는 이스라엘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누가 이겼습니까? 하나님이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다리를 절게 하시고, 허리에 힘이 빠지게 하시고, 꼼짝 못 하게 만드셨으니, 결국 하나님이 이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만을 꽉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꽉 붙들고 놓지 않으니,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다리를 꽉 붙들고 놓지 않는데,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이기겠습니까? 자식이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쫓아와서 눈물로 잘못했다고 회개하며 부모의 허리를 꽉 붙들고 "아버지, 나를 용서할 때까지 놓지 않겠습니다" 하는데,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이기겠습니까?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재산을 다 가지고 나가서 탕진해 버리고, 거지꼴이 되어 아버지 집에 돌아와 "나를 품꾼의 하나로 여기소서, 일꾼으로 부려 주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탕자를, 아버지가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맞아 주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잔치를 벌이고, 송아지를 잡아서 먹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이겼다"고. "네가 나를 이제 복으로 알고 나를 꼭 붙들고 놓지 않으니 네가 이겼다"고. "그래서 너는 이제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꼭 붙들고 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네가 이겼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장자권을 붙들고, 사랑을 붙들고, 물질을 붙들고, 에서 문제를 붙들고 살다가, 이제야 깨닫고 하나님을 붙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헛되고 헛된 것을 붙들고 살아 봐야 손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 7:7-8)

이 말씀을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고, 무엇을 두드립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물질을 구하고, 능력을 찾고, 사람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문을 두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구할 수 있고, 그래야 얻을 수 있고, 그래야 찾게 되고, 그래야 문이 열릴 것입니다.

결론

야곱의 인생은 진짜 인생이 아닙니다. 속여 빼앗고, 남의 발뒤꿈치를 잡고, 뒤통수를 치며 사는 인생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가짜 인생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고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진짜 인생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복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꽉 붙들고 놓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네가 이겼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을 붙드는 순간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탄에게 속지 마십시오. 진짜 인생, 이스라엘의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우리는 미련하게도 야곱의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사람을 붙들고, 물질을 붙들고, 장자권을 붙들고, 걱정과 근심을 붙들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씨름을 거시고 우리를 붙잡으시며, "이제 나를 붙들라"고 말씀하시니, 드디어 야곱이 "하나님만이 나의 복입니다" 고백하고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주여,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붙잡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까지 내가 잡았던 것을 이제는 모두 놓게 하시고, 하나님 한 분을 붙잡아서 하나님께서 "그래, 네가 나를 이겼다. 이제 내가 너에게 복을 주마" 말씀하시는 놀랍고 귀한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