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강 / 세 가지 옷 (37:23-24)

세 가지 옷

본문: 창세기 37:23-24

1999년, 한 신문에 현직 검찰총장의 부인이 대기업 총수의 부인으로부터 사건 청탁 명목으로 고급 의류를 선물받았다는 보도가 실렸습니다. 나라가 발칵 뒤집혔고, 수습이 되지 않자 국회는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청문회에 등장한 인물들의 면면은 화려했습니다. 현직 검찰총장의 부인, 로비 의혹을 받은 대기업 총수의 부인,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디자이너들과 의류 업계 관계자들이 줄줄이 증인석에 섰습니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은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그 거짓을 밝혀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론은 더욱 들끓었고,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최초의 특별검사제가 시행됩니다. 특검의 결론은 '실패한 로비'였습니다. 옷을 주고받은 것은 사실이나, 사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세간에서는 이 사건을 '옷 로비 사건'이라 불렀습니다.

이 사건에서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것은 호피 코트(Fur Coat)였습니다. 선물로 오간 그 옷의 가격이 130만 원이었는데, 25년 전 당시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대량 해고 사태로 온 나라가 신음하던 그 시절, 부유층에서는 130만 원짜리 옷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옷이 단순한 기능과 실용의 차원을 넘어 사람의 가치와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오늘날만의 일이 아닙니다. 고대 사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옷은 곧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옷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창세기 말씀에는 세 가지 옷이 등장합니다. 야곱이 입었던 거짓과 위선의 옷,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입혀준 채색옷,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입혀 주신 총리의 옷입니다. 이 세 가지 옷을 통해 우리가 어떤 옷을 추구해야 하며, 어떤 옷을 벗어야 하는지를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거짓의 옷을 벗기시는 하나님

첫 번째 옷은 야곱이 입었던 거짓과 위선의 옷입니다.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창 27:15-16)

야곱은 형의 옷을 훔쳐 입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시력이 약해져 앞을 잘 보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여, 형인 것처럼 자신을 속이기 위해 형의 옷을 걸치고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한 것입니다. 이 일로 아버지를 기만했고, 사냥을 나갔던 형 에서가 돌아온 뒤 사실이 드러나면서 가정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그릇된 방법, 잘못된 수단을 동원한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영적인 열망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품고 있었으며, 그 소망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소망을 지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소망을 이루어가는 과정만큼은 하나님의 방법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 선한 방법이 아니라 자기 방법으로 반칙을 쓰고 그릇된 길을 택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야곱이 입고 있던 거짓과 위선의 옷을 벗겨내십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야곱의 평생을 통해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시고, 다루어 가시면서 그 옷을 한 겹 한 겹 벗겨내셨습니다. 야곱에게는 두 가지 결정적 사건이 찾아옵니다.

첫 번째 사건은 밧단아람에서 일어났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운명의 여인 라헬을 만난 야곱은 7년 동안 종처럼 일했습니다. 이 여인을 위해서라면 생명이라도 내어줄 것 같았습니다. 7년을 채우고 첫날밤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라헬이 아니라 레아가 누워 있었습니다. 야곱은 분노하여 외삼촌에게 따졌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화낼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 자신도 옷을 통해 사람을 바꿔치기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인 줄 알고 축복했지만, 실은 야곱이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거짓 옷을 벗겨내기 위해, 바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더 충격적인 방법으로 야곱을 훈련시키셨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창세기 3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창 37:31-32)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채색옷으로 속임을 당합니다. 아들들이 요셉의 채색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가져와서는 요셉이 짐승에게 해를 당한 것처럼 아버지를 기만한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인 것과 본질이 같습니다. 야곱도 형의 옷을 걸치고 아버지를 속였고, 그의 아들들은 요셉의 옷에 피를 묻혀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결혼과 자녀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서 거짓과 위선의 옷을 벗겨가시는 과정에서 바로 이 결혼 문제와 자녀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두 가지 문제를 통해 야곱을 훈련시켜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정당했고, 야곱에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왜 이토록 엄하게 다루셨을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곱은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약속의 계보에 있는 인물이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었고, 그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됩니다. 만일 야곱이 거짓과 위선의 옷을 입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죄를 다루지 않으시고, 그 옷을 벗겨내지 않으신다면, 장차 오고 오는 모든 세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 우리는, 어디에서 교훈을 얻겠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책임을 물으시는 분이시기에, 그러한 방식으로 야곱을 훈련시켜 거짓의 옷을 벗겨내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동기도 선해야 하고, 과정도 바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간 길은 바른 길이 아니었습니다. 반칙이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 128:1-2)

어떤 자가 복이 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다면 복 있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길이 때로는 고난의 길이라 하더라도 걸어가야 합니다. 비록 돌아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기꺼이 그 길을 수용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백성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이 너무 멀다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이라고, 마다하고 가로질러 가버리고 반칙을 쓴다면, 그것은 복된 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일 거짓의 옷을 입고 있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그 옷을 벗겨내실 것입니다. 그 옷이 벗겨지는 과정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거짓과 위선의 옷이 있다면, 속히 벗어야 합니다. 스스로 벗어야 하나님의 훈련의 손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채색옷의 허무함

두 번째 옷은 아버지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입혀준 채색옷입니다. 채색옷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값비싼 옷이었습니다. 그 옷을 구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그 옷은 노동의 면제를 뜻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채색옷이 장자권을 상징하는 옷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을 편애하여 이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이 옷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창 37:23)

그 옷이 허무하게, 속절없이 벗겨져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여 아들에게 입혔는데, 그 옷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것을 허락하셨을까요? 야곱이 요셉에게 지어 입힌 채색옷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옷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장자권을 넘겨줄 때 하나님과 상의한 적이 있습니까? 자기 아들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단 한 번이라도 기도하고 결정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 집은 개인적인 가정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약속의 가문입니다. 열두 아들 가운데 누구를 장자로 세워야 할지는 야곱 혼자 결정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눈에 열두 아들 가운데 가장 귀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 눈에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히든 기름을 부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자기 좋은 대로 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지켜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과거 야곱과 요셉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으로 낳은 자녀들, 내 자식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우리는 입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도, 20년, 30년, 40년 지나도 여전히 '내 새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자녀에게 호흡을 주었습니까? 우리가 자녀에게 생명을 줄 수 있습니까? 생명을 주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지었습니까? 자녀의 키를 단 1센티미터라도 크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자녀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대리자로서 낳고 기른 것에 불과하며, 그의 생명에는 일절 관여할 수 없습니다. 성장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져 보면, 우리 자녀는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셨으나 내 소유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녀를 하나님의 방법대로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녀를 기르면서 하나님께 물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이 자녀를 어떻게 길러야 합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방식대로 나의 채색옷을 지어 입히고 내 자녀를 마음대로 길렀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싶은 옷은 따로 있는데, 내가 내 마음대로 채색옷을 지어 입혔으니, 하나님이 때가 되면 그것을 벗겨버리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모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교회가 우리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입니까? 내가 출석하고 있으니 내 교회도 맞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바 된 교회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 되시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그 몸의 지체가 되어 손과 발이 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직분자로, 임명받은 일꾼으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교회인데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고 일한 적이 몇 번이나 됩니까? 내 방식대로 교회에 나의 채색옷을 입혀놓고, 내 마음대로 색칠하고 그려놓고는 잘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상관없는 채색옷을 입혔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벗겨버리실 것입니다. "이것은 네가 원한 것이지, 내가 원하는 방식과 내가 원하는 색깔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벗겨버리실 것입니다.

같은 원리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모든 일을 상의해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과 상의하지 않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이처럼 허무하게 채색옷을 벗겨버리실 수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지어 입힌 채색옷을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신 이유는, 하나님과 상관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디 우리가 어디에 목숨을 걸고,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를 깊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구덩이에서 총리의 옷까지

세 번째 옷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어 입히신 총리의 옷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총리의 옷을 입히시기 전에, 세밀하고 섬세한 세 단계를 거치셨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아버지와 분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불러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으니 형들을 돌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냅니다. 8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요셉이 길을 떠나는데, 세겜에 가보니 형제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에 어떤 사람을 미리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형들이 도단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20킬로미터를 더 걸어갑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까닭은 아버지 야곱과 요셉을 분리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왜 분리시키셨습니까? 가만히 두면 아들을 망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따로 있는데, 야곱이 자기 마음대로 채색옷을 지어 입히니, 더 두면 더 망치기에 분리시킨 것입니다.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채색옷을 벗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입히고 싶은 옷은 총리의 옷인데, 아버지가 자기 뜻대로 채색옷을 입혀놓았으니 그것을 벗겨야 그다음 총리의 옷을 입히실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 요셉은 큰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채색옷이 벗겨지고 총리의 옷을 입기까지 노예의 옷도 입고 죄수의 옷도 입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을 견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셉도 채색옷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장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 그 채색옷의 위력을 오랫동안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벗겨졌습니다. 이제 그는 송두리째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보호가 사라졌으니,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보호, 전능하신 하늘 아버지의 보호를 더 의지해야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모세를 생각해 봅니다. 모세는 처음 40년간 애굽 왕자의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80세까지는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는 목자의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말년 40년 동안은 하나님의 종의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가장 위대한 옷은 마지막에 입었던 하나님의 종의 옷이었습니다. 왕자의 옷이 벗겨질 때, 자신의 정체성이 애굽 왕자라고 생각했던 모세에게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벗겨내셨습니다. 진짜 옷을 입기 전에, 가짜 옷이 벗겨질 때 잘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임하는 법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 127:1)

아무리 노력해도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모든 것이 헛됩니다. 아버지 야곱이 하나님과 상의하지 않고 수고로이 요셉에게 옷을 지어 입힌 것, 그것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입고 있었던 그 헛되고 헛된 채색옷을 하나님이 벗기셨을 때, 요셉은 그것을 견뎌내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신 것입니다. 구덩이는 평지가 아닙니다. 지하입니다. 요셉이 채색옷을 입고 있을 때는 하늘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형제들 머리 위에서 안하무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채색옷을 벗기시고 구덩이에 집어넣는 순간, 그는 가장 낮은 곳에 처박혔습니다.

구덩이를 상상해 보십시오. 앞뒤좌우가 모두 막혀 있습니다. 둘러보아도 흙더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하늘을 향한 구멍만 뚫려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만 보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막혀 있습니다. 형제들에게 소리 질렀습니다. 나를 건져 달라고, 살려 달라고. 그런데 형제들은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이제 사람에 대한 소망을 포기합니다. 남은 소망은 단 하나, 하나님을 향한 소망뿐이었습니다.

그 구덩이 경험이 요셉에게는 일생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귀한 경험이 됩니다. 요셉은 이 구덩이 경험을 기억하며 평생의 교훈으로 삼고 어려운 시절을 견뎌냅니다. 보디발의 집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곳 역시 구덩이와 같았습니다. 좌우를 둘러보아도 다 막혀 있었고,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위로 하늘밖에 뚫린 곳이 없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을 때,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이라는 구덩이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 하나님께 내가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 이 한 가지를 구덩이 신앙으로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옥은 더 깊은 구덩이였지만, 그곳에서도 요셉은 제반 사무를 처리하는 총무로 지내며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곳에서도 하늘을 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어떤 구덩이에서도 그의 구덩이 경험이 그의 일생을 바꿔놓았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비천하게 처해진 그 경험이, 애굽 총리의 옷을 입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지름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길을 밟아서 훈련시켜 가시는 분입니다. 우선 아버지와 분리시키시고, 채색옷을 벗겨내시고,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아이를 가장 낮은 곳에 집어던져서 구덩이 경험을 하게 하시고, 하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마침내 요셉에게 총리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어떤 옷을 선물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총리의 옷을 입혀주실 그 날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훈련을 잘 받아 믿음으로 걸어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남을 속이는 거짓과 위선의 옷을 입고 살아온 날들이 많았습니다. 반칙을 쓰기도 하고, 지름길로 달려가기도 하며, 믿는 사람이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보다 못한 거짓과 위선과 탐욕의 옷을 걸치고 살았습니다. 이제 속히 그 옷을 벗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그 두려운 손길을 기억하며, 이제는 그 옷을 벗겠습니다. 아버지,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많은 일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채색옷을 지어 입혔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교회 일도 하고 일터의 일도 하며 살았습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오니, 하나님과 상의하고 묻고 여쭈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주의 자녀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총리의 옷을 입혀 주시옵소서. 구덩이 속에서도 하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도움은 하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하게 하여 주시고, 어떤 순간에도 하늘을 향한 눈을 거두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