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강 /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41:38-57)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본문: 창세기 41:38-57

지난여름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까지 화제가 된 한 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일본 교토(京都)에 위치한 교토 국제고등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1947년 '교토 조선중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했습니다. 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재일 한국인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학생 전원이 한국인이었으나, 현재는 일본인 학생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본인 학생들이 한국 학교에 입학하여 수업을 받는 이유를 살펴보니, K-POP과 한국 문화, 그리고 야구를 위해 이 학교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 학교가 일본 여름 고시엔(甲子園)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일본에서 야구부를 운영하는 고등학교 수는 약 3,400여 개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치열한 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를 수 있는 학교는 단 49개뿐입니다. 본선 진출만으로도 대단한 성취로 인정받는 분위기 속에서, 이 작은 학교가 본선 우승까지 거머쥔 것입니다. 일본의 각종 언론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25년 전 야구부를 처음 창단했을 때 첫 시합에서 34대 0으로 참패했던 학교가 어떻게 이런 쾌거를 이룰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분석하는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의 분석과 언론의 의견을 종합하면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학교 구성원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라도 균열이 생기면 이런 성과를 만들어 내기 어렵습니다. 둘째,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켰습니다. 학교 운동장의 직선거리가 약 60미터에 불과하여 정식 야구 경기조차 치르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이들은 이 제약 속에서 내야 수비 훈련에 집중했고, 대부분의 실책이 내야에서 발생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본선 경기에서 내야 수비 실책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셋째, 한국학교라는 특수성이 오히려 성숙한 공동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한국어 교과가 편성되어 있지만 일본인 학생들은 이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념 논쟁이 아니라 야구와 문화를 위해 모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일 양국의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는 이 학생들은 오늘날 양국의 정치인들보다 훨씬 성숙하고 뛰어난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공동체든 성공하면 그 안에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성공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성공한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반대로 실패하면 문제가 생긴 이유가 있습니다. 공동체에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가 반드시 실패를 초래합니다. 개인의 실패에도 반드시 그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불신자의 입에서 나온 고백

오늘 본문에는 요셉의 성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에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 바로가 그의 성공의 비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입에서 이러한 고백이 나왔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에 감동되고 충만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칠 년 풍년 뒤에 칠 년 흉년이 올 것이며, 그 흉년이 극심하여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기대한 것은 꿈의 해석까지였습니다. 그런데 꿈 해석을 듣고 보니 감당할 수 없는 위기였습니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데 누가 어떻게 수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바로가 기대하지 않았던 대안까지 제시합니다. 대안은 두 가지였습니다. 사람을 세우십시오, 시스템을 갖추십시오. 단순하지만 힘이 있는 대안이었습니다. 크고 넓은 애굽 대륙에 이 일을 통제하고 다스릴 만한 인재가 없었기에, 바로는 요셉에게 경제 분야의 특임 총리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고 임명합니다.

이 자리에서 바로가 요셉에게 한 말이 3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창 41:38)

바로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바로가 요셉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로와 요셉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바로가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고 말했을 때, 요셉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로는 이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요셉이 믿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꿈 해석을 듣는데 이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이 고백은 요셉이 일생 동안 들었던 수많은 말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말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 세속 권력을 갖는 것,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성공이라 말합니다. 물론 그것도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성공은 내 주변에 있는 불신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보고, 나를 통해 하나님을 느끼며,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의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영광된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요셉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창 23:6)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사할 땅이 없었습니다. 헷 족속의 지도자가 와서 "우리 땅 가운데 어느 곳이든 택하여 장사하십시오"라고 말하며, "당신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지도자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불신자가 한 말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 땅에 와서 수십 년간 살았던 삶의 열매가 이 고백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삶과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정했습니다. 지도자라는 것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는 것도 인정했습니다.

이삭도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하였노라" (창 26:28)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했습니다. 이삭이 부유하게 살자, 우물을 팔 때마다 심술을 부리고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들과 분쟁하지 않았습니다. 싸우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자리를 옮겨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팔 때마다 물이 솟아올랐습니다. 세 번이나 옮겨 다니며 팔 때마다 물이 나오자,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찾아와 조약을 맺자고 제의했습니다.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어 자손 대대로 서로 싸우지 않게 하자면서, "당신 뒤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입니다", "당신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고백보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찬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랜 신앙생활 가운데 나를 아는 불신자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 신앙인으로 사는 것을 다 알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으로 비치고 있습니까. 이 지점이 우리 신앙생활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지점입니다.

변하지 않는 성실의 사람

바로는 요셉을 백성들 앞에 내세웁니다.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창 41:42-43)

사람들은 요셉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바로왕은 인장 반지를 끼워 주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어 주고, 수레에 태워 백성들 앞에 행하게 했습니다. 이 사람이 앞으로 칠 년 풍년과 칠 년 흉년의 경제를 책임질 총리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벼락 출세를 한 것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감옥의 죄수였고, 불과 몇 년 전까지 보디발의 집에서 히브리 노예로 살았던 사람의 신분이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신분이 갑작스럽게 바뀌면 어떤 현상이 벌어집니까. 벼락부자가 되거나 벼락 출세를 하면 사람은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저 사람이 변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돈의 맛을 본 사람,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돈과 권력에 취해 달라집니다.

그런데 요셉은 달랐습니다.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창 41:45-46)

45절과 46절에 공통으로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는 말입니다. 바로는 요셉을 결혼시켜 가정을 이루게 했습니다. 총각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여전히 애굽 온 땅을 순찰하고 있습니다. 서른 살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히브리 노예로 팔려 온 이래 13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다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 출세를 뒤로한 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애굽 온 땅을 순찰했다"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는 풍년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임명받았습니다. 애굽 전역의 도시에서 시골까지 일일이 돌아다니며 어디에 창고를 지어야 할지 살피고, 지방의 수령들과 관리들을 만나 설득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바로가 임명한 이른바 낙하산 인사였습니다. 그렇기에 진정성과 실력을 보여주어야 했고, 직접 사람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애굽 온 땅을 두루 다녀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지금처럼 자동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레와 마차를 타고 변방의 시골까지 누벼야 했습니다. 그래야 풍년을 관리하고 흉년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한 순간도 쉬지 않았고, 한 순간도 총리 관저에 앉아 안일하게 지내지 않았습니다.

벼락 출세를 하면 변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은 여전히 성실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행한다고 말합니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병 고침의 능력도 행하며, 일반적인 능력 이상의 것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의 은사 가운데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 성령으로 하나 된 사람, 하나님의 영이 가득한 사람에게는 지속성이 있습니다. 성실합니다. 상황과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조건을 따지지 않고 자기 일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해 내는 사람이 바로 성령의 사람입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습니까. 인간은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시작하고 사흘이 지나면 싫증이 나고, 쉬고 싶고 놀고 싶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고 부귀영화가 충분한데 누가 일하려 하겠습니까. 그런데 성령이 함께하시면 사명자로 살게 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살 때를 보십시오. 히브리 노예로 팔려 왔지만, 참담하고 암담한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주인 보디발을 눈앞에서 열심히 섬겼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는 어떠했습니까. 모함을 받아 갇혔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간수장이 맡긴 옥중의 모든 사무를 열심히 감당했고,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안색까지 살필 정도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총리가 되어 출세한 후에도 여전히 성실하게 일합니다. 밑바닥으로 떨어지든, 높은 자리에 올라가든, 그는 한결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영에 감동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이 성실함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환경과 형편에 따라, 처지에 따라, 감정과 기분에 따라,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내던져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성실은 바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 밖으로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하나님을 주어로 삼는 인생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창 41:51-52)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므낫세는 '잊어버림'이라는 뜻이고, 에브라임은 '번성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51절과 52절의 주어가 누구입니까. 모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내 모든 고난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번성하게 하셨다."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요, 내가 잘 견뎌서, 내가 잘 참아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에 세우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일관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만해져서 '내가 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일관된 성실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그 아내의 유혹을 이겨낼 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감옥에서 두 관원의 꿈을 해석할 때도 하나님이 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할 때도 하나님이 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성공하여 두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일관되었습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히 3:13-14)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굳게 붙잡고 있어야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됩니다. 오직 오늘이라 부르는 그때에, 매일 피차 권면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 성실하면 됩니다. 내일이 되면 그 내일은 또 다른 오늘입니다.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서 맡겨진 사명에 충실하면,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위기에 떠오르는 이름

칠 년의 풍년이 지나고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풍년의 기억을 잊어버릴 정도로 고통이 극심했습니다. 애굽 백성들이 바로를 찾아갔습니다.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창 41:55)

사람들이 바로에게 가서 부르짖으니, 바로는 요셉을 떠올렸습니다.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재난 상황에서 요셉은 위기를 해결하는 컨트롤 타워의 핵심 참모가 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떠오르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닥칠 때, 신앙인들은 우선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 안타깝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 누군가가 필요할 때, 그때 떠오르는 사람은 권력이 있거나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고 감동되어 나의 모든 것을 받아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두루 살펴보시며 일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겨 주실 사람을 찾으시는데, 자기 생각으로 충만하고 자기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당신의 일을 맡기시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일은 망칠 것이 뻔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사람에게 일을 맡겨야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할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예배드리는 사람이 없어서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예배를 드리지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드물다는 말씀입니다. 수없이 많은 봉사자와 섬기는 사람이 있으나, 하나님께서 위기 상황에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드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무장된 사람,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있는 사람,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결론

"하나님, 제게 맡기십시오. 제가 위기 때에 생각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맡겨 주시면 성실하게 그 일을 감당하겠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일도 맡기지 못하시는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 일은 이 사람에게 맡겨야겠다" 하실 정도로, 하나님의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욕망으로 충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되어,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실 때 기쁨으로 받아 주의 일을 성실하게 감당해 나가는 충만한 믿음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불신자 바로가 요셉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일생에 가장 위대한 칭찬이었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나의 행실을 보고, "당신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입니다", "당신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이 우리의 귀에 들리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성실하고 싶습니다. 상황과 환경과 처지에 따라 바뀌지 않고, 사명에 성실하며 하나님을 주어로 삼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위기 때에 생각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께서 두루 살펴보실 때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 맡겨 주시는 사명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성실하게 감당해 내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