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 토지법
본문: 창세기 47:13-26
전쟁의 소모전이 극심해질 때, 지휘관은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계속 전진하자니 앞으로 쏟아부어야 할 자원이 막막하고, 여기서 멈추자니 지금까지 투자한 모든 것이 아깝습니다. 삼국지의 조조(曹操)에게 한중(漢中) 땅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진퇴양난의 고민에 잠겨 있던 어느 날, 저녁 식사로 닭고기 요리가 나왔습니다. 식사 중에 부관 하후돈(夏侯惇)이 들어와 오늘의 군호가 무엇이냐고 묻자, 마침 닭고기를 먹고 있던 조조는 "계륵(鷄肋)"이라고 답했습니다. 닭갈비처럼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 바로 자신의 심경을 대변한 말이었습니다.
하후돈이 이 군호를 가지고 나가 지휘관들에게 전달하자, 양수(楊修)라는 참모가 조조의 속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곧 철수할 것이니 군장을 미리 꾸려 두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했습니다. 적이 다가올 때 신속하게 빠져나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본 하후돈도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자기 부하들에게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군대라는 조직은 소문이 빠르기 마련입니다. 사기에 살고 사기에 죽는 곳이 바로 군대입니다. 순식간에 조조의 전 군대가 군장을 꾸리고 철수를 준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조는 분노가 극에 달했습니다. 그날 밤 대규모 출격 명령을 내렸으나,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습니다. 겨우 목숨만 건져 돌아온 조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양수의 목을 베는 것이었습니다. 군기를 문란하게 했다는 죄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양수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부하들을 지극히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랫사람을 살피면서 동시에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일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조조의 입장에서 양수의 행동은 반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에서 윗사람을 섬기면서 동료와 아랫사람까지 돌보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그분이 원하는 바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만도 힘든 일인데, 아랫사람까지 세심하게 돌보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아랫사람을 잘 섬기는 사람은 대체로 윗사람을 잘 모시지 못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요셉은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수행해 냈습니다. 요셉의 지혜를 함께 살펴보고 배우기를 바랍니다.
흉년이 드러낸 요셉의 충성
흉년이 3년 차로 접어들었습니다. 1년 차와 2년 차에는 풍년 동안 백성들이 비축해 둔 곡식으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비축한 곡식이 바닥났습니다. 국가 창고에 쌓인 곡식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창 47:13-14)
요셉은 곡식을 팔아 애굽과 가나안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였고, 그 돈 전부를 바로의 궁으로 가져다 바쳤습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요셉은 오직 바로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가, 이 모든 일에 대한 자신의 지분은 하나도 챙기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요셉에게는 모든 공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흉년을 예언했으며, 그 대안까지 완벽하게 제시했습니다. 풍년을 관리하고 창고를 지었으며, 흉년의 시기에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의 공적이라면 왕과 협상하여 상당한 몫을 가져가겠다고 해도 바로가 거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일절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곡식을 팔아 거둔 모든 수익을 바로의 금고에 차곡차곡 넣어 드렸습니다. 모든 영광을 바로에게 올려 드린 것입니다.
시간이 더 흘렀습니다. 백성들의 돈이 떨어졌으나 흉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다시 곡식을 요구하자, 요셉은 가축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창 47:17)
이 말씀을 읽으면 요셉이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가축까지 빼앗고 곡식을 준다니, 너무 박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백성들을 위한 복지 정책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7년 동안 흉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소나 나귀는 농사를 위해 필요한 짐승이지만 씨를 뿌릴 수도 땅을 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짐승을 키우려면 사료가 필요한데, 사람조차 먹을 것이 없는 판에 짐승까지 먹여 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짐승을 방치하면 결국 사람까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국가가 짐승을 수용하고 그 대가로 1년 치 양식을 내어준 것은 결코 등가교환이 아니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짐승의 실질적 가치는 미미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놀라운 복지 차원의 조치였습니다.
세월이 더 지났으나 흉년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백성들에게 남은 것은 토지와 자기 몸뚱이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창 47:19)
땅이 아무리 넓은들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백성들이 의미 있는 요구를 합니다. 종자를 달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말한 대로 흉년은 7년이었고, 이제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잘 버티면 끝이 나고, 끝나고 나면 씨앗을 뿌려 다시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토지는 바치되 종자를 달라고, 이 땅에서 소작인으로 살겠다고 간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창 47:20)
위와 아래를 동시에 섬긴 지혜
여기까지 보면 요셉은 바로만을 위해 일한 것처럼 보입니다. 돈도 가축도 토지도 모두 바로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입장에서 요셉은 전혀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창 47:24-25)
백성들이 요셉을 "주"라고 고백합니다. "주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 땅은 이미 자기 땅이 아닌 임금의 땅인데, 그 땅에서 농사 지어 겨우 20%만 세금으로 바치고 80%를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애굽의 토지법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창 47:26)
이 토지법은 앞으로 모든 이집트 사람들이 변경할 수 없는 영원한 법으로 명문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각자의 자리에서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바로의 입장에서 이 7년의 흉년이 어떤 의미였는지 살펴봅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임금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비가 내리지 않는 기근입니다. 하루도 아닌 7년 동안의 흉년이라면 어떤 정권이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백성들은 굶주림에 관청을 습격하고 창고를 약탈할 것이며, 도적이 횡행할 것입니다. 평소 임금에게 불만을 품은 세력들은 "하늘이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며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한 황제라 할지라도 7년의 흉년을 버텨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7년의 흉년 동안 전국의 돈이 그의 금고에 쌓였습니다. 모든 가축이 국가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모든 토지가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백성들까지 자발적으로 그의 종이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형성된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흉년 7년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요셉의 공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올라가 보면 바로에게도 공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탁월한 지도자 요셉을 발탁한 것이 바로 바로였기 때문입니다. 바로와 요셉의 첫 만남을 기억해 봅시다. 바로는 이상한 꿈을 두 번이나 연거푸 꾸었고, 이집트에서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수소문하다가 갓 감옥에서 나온 요셉을 만났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라"고 말하며 꿈을 완벽하게 해석하고 대안까지 제시했습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창 41:38-39)
바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임해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바로는 요셉을 곁에 두고, 이집트의 모든 경제를 총괄하는 특임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이집트에는 어려서부터 성장한 정통 경제 관료들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로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곁에 두고 싶었습니다. 그 결정의 열매를 지금 바로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을 신뢰했기에 이 놀라운 결과가 가능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과 손을 잡으면, 그분에게 내려주시는 은혜가 나에게도 흘러넘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 곁에 숟가락을 얹어야 그 복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불신자 바로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요셉을 알아보고 곁에 둔 결과, 그는 위대한 제국의 제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잠 13:20-21)
우리 곁에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내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사람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그런 분을 알아보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에게 주시는 복이 흘러넘쳐 나도 복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성을 살린 섬김의 설계
이제 백성들의 입장에서 이 7년의 흉년이 어떤 의미였는지 살펴봅시다. 백성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7년의 흉년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아무리 기우제를 지내도 하늘에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데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들을 건져내고 구원한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살 곡식이 없으면 소용없고, 가축이 있어도 곡식이 없으면 무의미하며, 땅이 있어도 농사를 지을 수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돈을 내서라도 곡식을 사 먹을 수 있고, 가축을 내놓아서라도 배를 굶지 않을 수 있고, 땅을 바쳐서라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토지법의 내용입니다. 땅이 이제 자기 소유가 아니고 국가의 소작인이 되었지만, 세금은 5분의 1, 곧 20%만 내면 되었습니다. 80%는 자기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21세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금의 무게는 어떠합니까?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이 시대에도 세금의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자기 돈으로 산 땅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빠져나가는 세금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가는 조금 감면해 주면서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실질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미미합니다. 사유재산 제도가 인정된 현대 사회가 이러한데, 고대 이집트에서는 자기 땅도 아닌 국가의 땅에서 농사 지어 80%를 가져가라고 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세금 제도를 떠올려 봅시다. 조선에는 역(役)과 공납(貢納)과 토지세, 세 가지 세금이 있었습니다. 역은 국가의 대형 공사에 동원되는 부역이었는데, 양반은 면제되고 평민들이 몸으로 떠맡아야 했습니다. 성을 쌓으면 돌을 지고 날라야 했고, 전쟁이 나면 전장에 끌려갔습니다. 공납은 지방의 특산물을 임금에게 진상하는 것인데, 날씨가 좋지 않아 특산물을 마련하지 못하면 돈으로 대신 내야 했습니다. 토지세의 경우, 대부분 소작농이었으므로 1년 동안 뼈빠지게 농사지은 수확물의 대부분을 주인이 가져갔습니다. 거기에 봄 보릿고개 때 관청에서 빌린 환곡까지 갚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환곡을 갚지 못하면 고리의 이자가 붙고, 끌려가 매질을 당했습니다. 백성들이 산으로 들어가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불과 수백 년 전 우리나라 조선 사회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는 자기 땅도 아닌 국가의 토지에서 농사 지어 80%를 자기 것으로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종자까지 제공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흉년이 끝나고 종자를 뿌려 농사를 지으면 소출의 80%가 자기 몫입니다. 돈이 모이면 팔았던 땅을 되찾을 수 있고, 가축도 다시 살 수 있습니다. 풍년 시절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요셉이 계획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요셉 덕분에 7년의 흉년을 견디고 버텨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 자신에게 7년의 흉년은 어떤 의미였습니까? 위로는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바로 왕을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그러나 섬기고 순종하는 것은 비단 이때뿐이 아니라 요셉의 평생에 걸친 삶의 자세였습니다.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창 39:4)
요셉이 보디발을 섬긴 이야기입니다. 열일곱 살 소년으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왔지만, 윗사람인 보디발을 최선을 다해 섬겼습니다. 그 결과 보디발이 그를 신뢰하여 가정 총무로 삼았고, 아내의 모함이 있었을 때에도 요셉을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보호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워 주신 권위에 철저하게 순종한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노예 시절에는 보디발을 섬겼고, 감옥에서는 간수장을 섬겼으며,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을 섬겼고, 총리가 된 후에는 바로 왕을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눈에 보이는 윗사람을 섬겼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 요셉입니다.
그리고 7년의 흉년 동안 요셉은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위로 바로만 바라보고 산 것이 아니라, 아래로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 했습니다. 그는 노예로 살아 보았고 감옥에도 갇혀 보았습니다. 저 밑바닥의 삶이 어떠한지, 흉년이란 것이 어떤 의미인지, 먹지 못하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섬기고, 나아가 애굽의 토지법을 만들어 영구적인 법으로 세워 놓은 것입니다. 요셉에게 7년의 흉년은 위로 바로를 섬기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아래로 백성들을 섬기는 보람 있는 기간이었습니다.
결론
교회가 창립 68주년 기념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교회가 위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교회의 주인이시고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시니, 그리스도를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을 살피고, 연약한 교회를 섬기며, 교회가 또 다른 교회를 세우는 일도 감당해야 합니다. 연약한 이웃을 섬기고 돌보는 일, 교회가 하지 않으면 교회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난 68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베풀어 주신 은혜가 놀랍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물론, 앞으로 70년 80년을 넘어가면서 연약하고 부족한 이들을 세우고 섬기며, 우리도 요셉처럼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 교회가 또 다른 교회를 세워 가는 일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고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요셉처럼 살기 원합니다. 7년의 흉년 동안 바로도 행복했고, 백성들도 위기를 넘겨 살아남았으며, 요셉은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 백성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여, 오늘 우리 인생에 어떤 위기가 닥쳐올지라도 우리가 요셉처럼 지혜로운 자가 되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복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주여, 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백성 되지 못한 것이 문제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 모두가 요셉 같은 사람들이 되어서, 나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을 복되게 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을 영화롭게 하며, 그들을 하나님 앞에 새롭게 세울 수 있는 은혜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