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가 땅에 덮이니 (창7:6-12)
플라톤이 쓴 『국가』 제2권을 보면 '기게스의 반지'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 리디아 왕국에 기게스라는 양치기가 살았습니다. 그는 왕이 맡긴 양들을 돌보는 평범한 목동이었습니다. 그날도 양을 돌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혼비백산하여 양들을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고 난 후 뒤를 돌아다보니 땅이 꺼지면서 동굴 입구가 보였습니다. 그 동굴로 들어가 깊숙이 들어가 보니 거대한 청동 말이 서 있었습니다. 말 덮개를 열어 보니 시체가 누워 있었는데, 시체 손가락에 반지가 끼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반지를 빼서 자기 손에 끼고 동굴 밖으로 나왔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그가 왕궁에 들어갈 일이 있었습니다. 왕에게 맡겨진 양의 숫자를 한 달에 한 번씩 보고하는 날이었는데, 왕궁에 양치기들이 모였습니다. 거기서 그는 장난삼아 자기가 낀 반지를 한쪽 방향으로 돌려 보았는데 갑자기 기게스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려 보니 다시 나타났습니다. 마법의 반지를 얻은 것입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도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때 그는 나쁜 마음을 먹습니다. 리디아 왕국 최고의 미인이었던 왕비를 겁탈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 후에 그는 내친김에 왕까지 살해하고 리디아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는 왕이 된 사람 아닙니까?
1. 성공의 참된 기준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과연 성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 있게 그가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왕비를 겁탈하고 왕을 살해했습니다. 절차와 과정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왕이 되려면 왕자 시절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백성에 대해서, 나라와 국방과 외교에 대해서도 학업과 지식을 쌓아가야 하는데 그는 그런 과정을 다 생략하고 건너뛰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플라톤은 그 뒤의 이야기를 남기고 있지는 않으나, 그가 리디아 왕국을 통치했을 때 어떤 식으로 다스렸는지 눈에 뻔하지 않습니까? 공포정치를 했을 것입니다. 마법의 반지를 사용하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신하들 사이를, 백성들 사이를 다니면서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을 색출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니 결국 그렇게 나라를 통치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성공 지상주의, 결과주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성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모두가 존경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위 공직자들이 인사청문회에 서면 과거의 비리와 비행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물쩡 넘어가 버립니다. 몇 마디 사과로 과거의 일들을 덮으려고 합니다. 자신은 성공했으니 이제는 괜찮다는 식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결국 성공 지상주의가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시고 무엇을 실패라고 규정하시는가를 보여 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깨닫고 은혜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1. 노아의 120년
6절 말씀을 보십시오.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노아가 육백 세 되던 그해, 그때 홍수가 땅에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80세부터 시작해서 600세까지 120년 동안 열심히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120년 동안 방주 건조를 명령하신 것은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이었습니다. 노아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방주를 짓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방주를 통해서 죽어 가는 이 시대의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예배 공동체를 떠나간 하나님의 아들들이 방주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또한 가인의 후손들, 사람의 딸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방주를 120년 동안 지었습니다.
노아에게 120년의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오늘 우리 중에 누구도 120년 동안 방주를 지어 본 사람은 없습니다. 120년을 살아 본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의 무게와 길이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노아의 120년은 외적인 고통의 기간이었고 내적인 고민의 시간이었습니다.
외적인 고통의 기간이었다 함은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방주를 홀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노아가 자손들인 셈과 함과 야벳을 500세가 지나서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방주를 짓기 시작한 480세부터는 노아 혼자 이 어마어마한 거대한 방주를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원래 처음이 어렵습니다. 처음 그 얼개를 잡고 방주의 크기를 재고 시작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그는 방주 제작의 거의 절반을 홀로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기계가 있습니까? 장비가 변변합니까? 기계나 장비가 없던 시절에 하나님의 방주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는 육체적인 고난과 난관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견딜 만했습니다. 몸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견딜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내적인 고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은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동안 단 한 사람도 방주에 타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영혼의 구원을 얻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노아는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주셨는데, 120년 동안 이렇게 성실하게 일을 감당했건만 어떻게 단 한 사람도 이 방주에 탄 사람이 없단 말인가?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내가 과연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살 수 있는 존재인가?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습니까?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는데 한 사람도 탑승하지 않고 동물만 탔습니다. 동물만 잔뜩 태우고 노아의 가족들만 태웠습니다.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닫지 않고 7일 동안 또 기다리십니다. 노아는 동분서주하며 불철주야 열심히 방주 밖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단 한 사람도 방주에 타지 않았습니다.
1-2. 하나님의 평가
우리는 여기서 심각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노아는 실패한 사역자였는가? 객관적으로, 결과적으로 보면 그는 실패한 사역자입니다. 방주에 단 한 사람도 태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면서 영혼 구원을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는데,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했으니, 한 사람도 태우지 못했으니 실패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노아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책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칭찬하십니다. 6장 22절과 7장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하신 모든 명령을 다 준행하였더라" 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20년 동안의 방주 명령도 준행했고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는 명령도 다 준행하였더라고 기록합니다. 7장 1절에 보면 노아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을 하나님은 직접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고 하나님은 칭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은 그를 성공한 사람으로, 이 시대의 탁월한 의인으로 칭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며 인간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과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규모를 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 정도 규모는 되어야, 이 정도 숫자는 되어야, 이 정도 돈은 벌어야 성공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 속에 그런 기준이 다 있지 않습니까? 그 숫자를 충족하지 못하면, 그 규모를 맞추지 못하면 감히 성공이라는 말은 입 밖에 꺼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숫자나 규모에 하나님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적 동기와 과정을 중요하게 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과 생각과 계획까지 다 살피시는 분입니다. 어떤 의도로 일을 시작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는지,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는 분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과정에 성실하라, 도덕적이어야 한다, 너는 성실하게 내가 부탁한 일을 열심히 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노아 같은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3. 예레미야의 사역
예레미야를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예레미야가 어떤 사람입니까? 남유다 말기에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할 때 남유다가 멸망했습니다. 그 당시 그 나라는 국론이 반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바벨론에 붙어야 한다, 이집트에 붙어야 한다. 친바벨론파와 친이집트파가 나뉘어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왕실 안은 물론이고 백성들까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바벨론도 아니고 이집트도 아니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이 말씀을 성실하게 전했습니다.
선지자의 존재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열심히 전하면 그 말씀을 듣고 성도들이 변화될 때 선지자는 기쁨과 희열을 느낍니다. 이 말씀이 먹혀서 성도들이 변화되는구나!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열심히 전했는데 백성들이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심하게 싸우고 갈등했습니다. 나라가 망해 버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붕괴되고 하나님의 성전은 불탔습니다.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묶여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는 이 광경을 예레미야애가 1장 1절에서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그가 이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는 실패한 선지자 아닙니까?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열심히 전했는데 백성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기 마음대로 행해서 나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라는 망하고 성전은 불탔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예레미야를 실패한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그를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0장 8절과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함으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나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쳐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했습니다. 바벨론도 아니고 이집트도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그의 말을 사람들은 조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 때문에 자존심이 무척 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의 말이 먹히지 않을 때 느끼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내가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결심했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에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기 때문에, 이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일을 그는 끝까지 열심히 이루어 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실패한 선지자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1-4.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을 보십시오. 객관적으로 우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는 손가락질합니다.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예수님이 30세가 될 때까지 그분도 역시 목수로서 생업을 이어갔습니다. 제자들을 모았습니다. 그분의 제자 중에 세상에 내어 놓을 만한 뚜렷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사람들이 다 안 봐도 빠한 자들 아닙니까?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 제자에게 예수님은 팔렸습니다. 은 삼십에 배반당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빌라도가 이긴 것 같습니다. 로마 제국이 승리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공동체조차 지켜내지 못하고 철저하게 패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달려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바로 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주신 사명을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실 때 맡기신 사명은 십자가 지고 죽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너는 십자가상에서 죽어야 한다, 나의 모든 진노와 죄에 대한 분노를 너에게 쏟아 놓을 테니 네가 죽어야 한다. 이 말씀을 주님은 그대로 붙들고 계셨고 마지막에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을 손가락질합니다. 실패했다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주신 사명을 온전히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 이루셨기 때문에 그분은 성공하셨습니다. 죽음으로 성공하셨고 하나님은 부활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어디에 있습니까? 노아처럼, 예레미야처럼, 예수님처럼 하나님 뜻대로 온전히 살아가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입니다. 누가 우리를 실패했다고 감히 손가락질하고, 누가 우리를 실패했다고 조롱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살아서 다 이루었는데 말입니다.
어떤 교회가 성공한 교회일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성공한 교회는 규모가 어마어마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합니다. 재정 규모도 커야 합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이 교회가 성공한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도 과연 그런 교회가 성공한 교회일까요?
본질을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성공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수의 강처럼 선포되는 교회여야 하고, 성도들은 그 말씀을 붙잡고 살아내는 교회여야 합니다. 규모가 문제가 아닙니다. 모이는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외적인 위용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고 그 말씀을 부여잡고 성도들이 말씀대로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으로 교회의 성공과 실패가 가늠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성공과 실패도 역시 말씀으로 판가름 납니다.
여러분은 성공한 성도입니까? 성공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성도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외적인 성공의 기준에 얽매여 있는 자들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공한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홍수 심판의 의미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사십 주야, 낮과 밤이라는 뜻입니다. 40일 내내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홍수가 났습니다. 이제 드디어 이 땅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예배 공동체가 와해되었을 때, 그때 하나님의 마음에 생각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있지 아니하리니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때 즉각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120년 동안 기회를 주셨습니다. 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의인 노아를 찾으시고 그에게 희망을 거셨습니다. 노아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방주 명령을 노아는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2-1. 하나님의 기다림
120년이 하나님에게는 기대의 시간이었습니다.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기다려 주십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참아 주시고 또 참아 주십니다. 120년에 더하여 7일 동안 하나님은 참아 주셨습니다. 120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한 사람도 배에 타지 않자,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닫기 전에 짐승과 노아의 가족이 다 탔지만 또 7일을 연장시키시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하나님은 홍수 심판을 결단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으셨을 것입니다.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안간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멈출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노아가 말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방주로 달려가 봅니다. 그러나 방주의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별안간 하늘에서 비가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별안간 같지만 홍수가 아닙니다. 120년 동안 하나님은 노아의 입을 통해서 끊임없이 매일같이 말씀하시고 외치셨습니다. 사람들이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120년에 더하여 7일 동안 하나님은 계속 외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멀쩡한 하늘에 웬 홍수가 나느냐고, 왜 별안간 그런 일이 있느냐고 노아를 미치광이 노인네 취급했습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조롱했습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갑자기가 아니었습니다. 예고된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려 주시고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의 시간을 자신의 방종의 시간으로 바꾼 인간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한 것입니다.
2-2. 재림의 예고
예수님은 노아 홍수 사건을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8절과 39절을 보십시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방주에 들어가기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자기 할 일 다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심판은 별안간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별안간은 정말 별안간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남유다가 이렇게 살면 망할 것이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임해서 남유다가 망했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도 노아를 통해서 그들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어떻습니까? 이 땅의 종말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까?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구름 타고 올라가셨습니다. 그걸 본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서 있으니 천사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그런데 이천 년이 지나도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동안 과학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DNA를 다 해독하는 기술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입니다. 스마트폰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우주선에 태워서 우주까지 보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성경 이야기를 동화 속 이야기처럼 생각합니다. 구름 타고 다시 재림하신다니 정신 나간 이야기라고, 그 옛날 노아를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처럼 미친 소리라고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그걸 믿으면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재림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3.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하지만 이천 년 동안 재림이 지연되는 이유를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을 보십시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오래 참으사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장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에 나팔 소리와 함께 재림하시는 이 일이 지금 당장, 한 시간 뒤에, 혹은 하루 뒤에 일어날 수도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연시키고 지연시키고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그 당시 노아 시대처럼 한 사람이라도 구원 얻는 사람이 더해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의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다 할 수 있겠습니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 성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깨닫고 결과에 매이지 않고 날마다 복음 전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언제 예수님이 재림하셔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믿음 생활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죄짓지 않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시는 지혜로운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누가 성공한 사람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노아처럼, 예레미야처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행하고 지켜서 성공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결과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우시고, 규모와 숫자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도우셔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다 이루었다" 말할 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 옛날 노아 시대 120년과 7일 동안 기다렸던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의 기다림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지연도 결국은 오래 참으시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주여, 오늘 우리에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기억하고 우리가 열심히 복음 전하고 성공하는 인생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