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강 / 물 위에 떠 다녔으며 (7:13-24)

물 위에 떠 다녔으며 (창7:13-24)

지난날 서울시장, 인천시장, 경기도지사, 환경부장관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정치적인 색깔을 달리하는 분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쓰레기 매립장이라는 긴급한 현안 때문이었습니다. 1992년 이후로 서울시와 경기도의 쓰레기를 인천 서구에 있는 매립지에서 계속 매립해 왔습니다. 그런데 쓰레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인천시에서 일정 기한까지만 쓰레기 매립을 허용하고 그 이후부터는 알아서 처리하라고 통보했습니다. 물론 서울시와 경기도는 대체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요구합니다. 기한까지 대체 부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쓰레기 매립지를 계속 사용하게 해 달라고 허가를 요청합니다.

그런데 인천 시민들이 반대합니다. 절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각 지자체에서 나온 쓰레기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문제를 조율해야 할 부서가 환경부인데 환경부로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이들이 모였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그저 자신들의 입장만 재확인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이 문제는 서울시, 인천, 경기도의 문제만이 아니고 오늘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서 온 인류의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 다음 세대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미 바다에는 폐플라스틱이 떠다니고, 그것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미세 플라스틱 조각이 되고, 우리 식탁에 그대로 올라와서 우리 자녀들의, 우리 인생의 건강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돌아보고 생각해 보면 인간의 탐욕이 만든 결과물에 다름 아닙니다. 요즘 들어 우리가 자주 듣고 있는 말이 탄소 중립이라는 말이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각종 자구책들이 강구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는 등의 자구책이 강구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미 순리대로 사는 일에 익숙해져 있지 않고 순리를 거슬러 사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여러분, 덥고 땀 흘리는 것이 순리이고 겨울은 추운 것이 순리입니다. 그런데 여름에 더 시원하게 지내려고 하고 겨울은 더 따뜻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데 어떻게 환경오염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의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생활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영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순리대로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순리대로 사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우리 생각과 내 의지와 자기 방식대로 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역리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은 방주가 물 위에 떠다니는 것을 보여줍니다. 방주가 물 위에 떠다니는 것은 하나님께서 방주를 물 위에 띄우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곧 순리대로 살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띄우신 방주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물 위를 항해하고 있는지 우리를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방주에 여덟 명이 탔습니다.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 모두가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방주의 문을 직접 닫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하나님께서 방주에 사람들이 다 탄 것을 보시고 문을 닫았습니다.

1. 섬세하신 하나님

오늘 이 말씀, 하나님께서 문을 닫다, 이 말씀을 원문에 의해서 직역해서 읽어 보면 '그의 등 뒤에서 문을 닫으셨다'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그'는 노아입니다. 방주에 가장 늦게 탄 사람이 노아였습니다. 왜냐하면 노아는 마지막 7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아직 닫지 않고 열어 놓으신 그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방주에 타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도 타지 않았지만 노아는 열심히 외쳤습니다. 그 후에 노아는 마지막에 방주에 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방주에 탄 것을 보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의 등 뒤에서 문을 닫았다'라는 이 표현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1-1. 섬세함과 순종

그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이 아주 섬세하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방주를 아주 중요하게, 홍수 심판을 방어할 수 있는 도구로 지으셨습니다. 전대미문의 홍수 사건을 대비해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는데, 혹시나 한 사람이라도 방주에 타지 못했을까 봐,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 중에 어떤 짐승도 방주에 타지 못했을까 봐 하나님은 살피고 또 살피시다가 마지막에 노아가 방주에 탄 것을 확인하고 하나님 손으로 직접 방주의 문을 닫았습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섬세하고 세심한 분이십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의 섬세한 모습이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천지창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창조의 영광은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내가 창조의 영광으로 창조했으니 첫날 인간을 만들겠다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빛도 없습니다. 해와 달과 별도 없습니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나뉘지도 않았습니다. 먹거리도 없습니다. 에덴동산도 없습니다. 캄캄한 흑암천지에 만약 인간이 창조되었다면 흑암 가운데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섬세하게도 모든 것을 다 창조하고 만드신 이후에 마지막 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에덴동산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먹거리도 풍부하고 해와 달과 별도 있고 물고기도 있고 여러 짐승들도 있는 그곳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섬세하게 인간을 위해 배려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실 때도 역시 섬세하게 세웁니다. 민족의 지도자 모세를 세운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일찌감치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훈련시키는 데 초기 40년은 이집트 궁전에서 훈련시켰습니다. 바로의 딸, 공주의 양자가 되어서 훈련시킵니다. 안전하게 그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집트에서, 그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에서 리더십 교육을 잘 받도록 훈련시켰습니다. 나중에 그가 이스라엘 지도자가 되어야 하니까 40년 동안 철저하게 훈련시킵니다. 그리고 다시 40년, 그가 교만이 머리끝까지 올라가 있을 때 광야로 그를 인도하십니다.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게 하셨습니다. 처가살이 40년을 통해서 그의 머릿속에 있던 교만의 때를 다 벗겨 내십니다. 그리고 그가 광야에서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에 깊은 영성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초기 40년은 세상의 지성을 배우게 하시고, 중기 40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성의 깊이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지성과 영성이 겸비된 이후에 마지막 40년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게 하시고 출애굽의 지도자, 리더가 되게 하셔서 그를 통해서 출애굽의 큰 대역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섬세하십니다.

하나님은 크고 큰 스케일도 갖고 계시고 아주 작은 것도 섬세하게 살피는 디테일도 갖고 계십니다. 사람은 두 가지를 다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통이 크고 스케일이 큰 사람은 섬세함이 떨어집니다. 섬세함이 강한 사람은 통이 크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케일도 가지고 있고 디테일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보면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결과가 나옵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큰 틀의 스케일도 잡아 놓으시고, 우리가 걸어가는 발걸음 발걸음의 디테일도 살펴 주시고, 방주의 문까지도 마지막 눈으로 직접 닫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는 그 방주 명령에 순종하고, 방주의 문을 닫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그냥 순종만 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일어났던 문제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문제가 일어났는지 반추하고 돌아보면, 하나님 말씀과 거꾸로 갈 때, 순종하지 않을 때 문제가 대부분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스케일도 잡아 주시고 작은 섬세한 디테일도 살펴 주시는 하나님 덕분에 우리는 문제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주의 문을 닫아 주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고 우리 인생의 그 길을 걸어간다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문제없이 승리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1-2. 심판의 시작

또 한 가지, 하나님께서 그의 등 뒤에서 문을 닫아 주셨다는 이 말이 주는 중요한 두 번째 의미는 심판의 시작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사역 시작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심판의 시작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예배 공동체를 뛰쳐나가고 예배 공동체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바로 즉각 심판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 의로운 노아를 찾으시고 그에게 방주를 짓게 하십니다. 구원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방주를 짓게 하심으로 구원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120년 동안 구원의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누구나 방주에 오면 다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도 타지 않습니다. 그리고 7일 동안 또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타지 않습니다. 한 사람도 타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방주의 문을 닫으심으로 심판을 시작하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도 시작하시고 심판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옛날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구원 사역이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내보내실 때 가죽옷을 지어 입혀 보내셨습니다. 가죽옷을 입혔습니다. 누군가가 희생했습니다. 짐승이 희생했는데, 이제는 내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해서 너희를 구원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십자가에서 정점을 맞이합니다.

지금까지 구원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방주의 문이 열린 것처럼. 그런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방주의 문이 닫힙니다. 구원의 문은 닫히고 이제는 심판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도 시작하시고 심판도 시작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것은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시면 누구도 열 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0절에서 1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열 처녀 비유입니다.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가 있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가 있습니다. 신랑이 갑자기 한밤중에 오셨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가 준비한 처녀에게 나누어 달랍니다. 거절당했습니다. 사러 갔습니다. 돌아와 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열어 달라고 애원하지만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신랑이 하시는 말씀, 내가 너희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정말 몰라서 모른다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나와 너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한번 닫히면, 예수님께서 닫으신 문, 하나님께서 닫으신 문은 절대 열리지 않습니다. 열려 있을 때 들어가야 됩니다. 120년 그리고 7일 동안 그 문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 단 한 사람도 들어가지 않고 노아의 가족만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문이 닫히고 홍수가 나고 비바람이 몰아쳐서 사람들이 문을 열어 달라고 아무리 밖에서 애원해도 그 굳게 닫힌 문은 결코 열리지 않습니다.

2. 열린 하늘 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백성이 되면 걸어가는 발걸음 발걸음마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열린 문을 대표적으로 경험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외삼촌이 있는 먼 곳, 밧단아람으로 도주하는 중이었습니다. 길에서 노숙했습니다. 꿈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늘 문이 열려 있었고 열린 문에서 사다리가 내려와 있습니다.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 열린 문을 보니까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보좌에 하나님이 좌정해 계셨습니다.

그가 잠에서 깨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28장 16절과 17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그는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을 경험합니다. 그가 일어나서 잠잘 때 베었던 돌베개를 세워 다가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가 앞으로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집을 만들겠습니다. 제가 가는 곳마다 열심히 예배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여시고 저에게 복 주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 복을 마음껏 부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야곱은 가는 곳마다 예배 드렸습니다. 예배 처소를 만들었습니다. 벧엘, 하나님의 집을 세웠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여시고, 열린 문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총을 마음껏 내려 주셨습니다.

시편 기자도 하늘에 열린 문을 언급합니다. 시편 78편 23절과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가 위에 있는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출애굽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 광야 길이 고되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광야 길을 걸어가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여셨습니다. 하늘 양식 만나를 비 같이 내려 주셨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가? 야곱처럼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자,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어렵지만 순종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의 은혜를 마음껏 내려 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늘의 열린 문으로 하나님의 복이 마음껏 내려오고 부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회가 있을 때, 방주의 문이 열려 있을 때 들어가면 우리에게는 하늘 문이 열리는 놀라운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그 은혜가 하나님의 백성과 우리 삶의 자리에 매 순간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말씀이 엔진인 방주

17절과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침에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비가 40주야를 내렸습니다. 40일 내내 낮밤 가리지 않고 내렸습니다. 물이 가득 찹니다. 방주가 떠오릅니다.

오늘 이 말씀, 방주가 물 위에 떠다녔다는 이 말씀을 원문에 의해서 직역해 보면 '물들이 방주를 들어올렸다'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방주가 수동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들이 방주를 들어올렸다고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이 방주가 수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3-1. 동력 없는 방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방주를 설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방주에 동력을 달지 않습니다. 그 당시가 기술이 엔진을 달 수 없는 시기였다 하더라도 적어도 돛은 달 수 있었을 텐데, 바람을 이용하는 돛도 달지 않습니다.

여타의 모든 배들은 항해자가 있습니다. 선장이 있습니다. 선장이 바람을 이용해서 돛을 가지고 동서남북 방향을 정합니다. 방향을 정하고 바람을 이용해서 그 방향을 따라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방주를 그렇게 설계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노아가 이 배의 선장이지 싶은데, 노아조차도 이 일에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다른 식구들과 마찬가지로 방주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처음에 40일 동안은 아마 안도감이었을 것입니다.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쏟아지는 비에 쓸려 나가고, 모든 동물들이 다 쓸려 나가는 이때, 우리가 이 방주에 들어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배가 세차게 흔들리고 어디에 가서 서게 될지 모르는 이 시기가 되고, 그리고 배가 어느 순간 큰 바위에 부딪혀서 산산조각 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도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냥 방주에서 동요하는 식구들을 잠재우고, 괜찮다고 위로하고, 노아는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방주에 동력이 하나도 없었고 돛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3-2. 말씀이 엔진인 교회

방주를 교회라고 명명했습니다. 교회가 곧 방주고 방주가 교회라면, 교회도 자체 엔진이 없어야 정상입니다. 돛도 없어야 됩니다. 교회의 유일한 엔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중심이 되고 말씀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것이 교회이지, 사람이 엔진이 되고 사람이 선장이 되고 사람이 돛을 마음대로 조종해서 동서남북 방향을 정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간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주 교회가 아닌 것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되어 간다고들 말합니다. 교회의 세속화가 무엇입니까? 세상과 같아지는 것 아닙니까? 세상의 기업을 보십시오. 사주가, CEO가 방향을 정합니다. 그렇게 가자고 합니다. 이 사회가 주주들이 그런 방향을 가지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합니다. 교회도 그렇게 되어 간다면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방향을 정하고 교회 중직들이 그 방향을 따라서 우리 교회가 더 일취월장하고 성장하는 방향을 잡았는데,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고 바라는 바가 아닌데, 하나님은 북쪽으로 가라고 하는데 목회자와 교회 중직들과 교회 성도들은 자꾸 남쪽으로 돛을 펴고 노를 저어 가고 있다면 잘못된 게 아닙니까? 이미 세속화된 교회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엔진이 되는 교회입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몸을 맡기고, 하나님께서 이 배를 어디에 세우시든지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결단하는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입니다.

3-3. 초대교회의 교훈

이 땅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를 초대교회라고 하고 그 교회는 예루살렘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교회를 세우시기 직전에 승천하시면서 교회의 정체성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승천하시면서 예수님이 남기신 유언과 같은 마지막 말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권능을 받았습니다. 권능을 받았으면 그들은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으로 나가야 됩니다. 나가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한 번 설교에서 3,000명, 또 한 번 설교에서 5,000명이 모였습니다. 대형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목소리가 교회를 끌고 갑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교회가 되어야 된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남기신 말씀은 온데간데없습니다. 그들은 나가지 않습니다. 서로 모여 교제하고 떡을 떼고 자기들끼리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교회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습니다. 핍박을 주셨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합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순교합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습니다. 그제서야 성도들이 흩어집니다. 흩어진 성도들이 복음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빌립 집사님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흩어진 또 다른 성도들은 안디옥에 가서 교회를 세웁니다.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목회를 합니다. 안디옥교회에서는 두 분을 따로 떼어서 1차 선교여행으로 보냅니다. 다시 안디옥교회에서는 바울과 실라를 보내서 2차, 3차 로마 선교 여행을 하게 합니다.

안디옥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 엔진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엔진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돛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노가 되는 교회, 그 교회가 바로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 교회가 사람의 생각이 난무하고 사람의 자기 주장만 난무하는 곳이라면 우리 교회도 세속화된 교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그 말씀이 중심이 되고 말씀으로 목회 방향, 교회 방향을 정하고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이 방주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우리는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한다면 우리는 방주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뿐만이 아닙니다. 가정도, 일터도, 사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년 새해를 시작할 때 우리는 올해는 내가 열심히 한번 노를 저어 보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난 시간 열심히 노를 저었을 것입니다. 돛을 달고 나름의 엔진을 만들고, 우리 가정에 내가 이렇게 한번 해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없이 했다면 그것은 다 헛된 일입니다. 하나님이 북쪽으로 가라고 하는데 내가 열심히 남쪽으로 노를 젓고 간다면, 시간이 지난 오늘 열매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수고는 했는데, 땀을 흘렸는데, 애는 썼는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고만 했을 뿐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제 후반기를 준비하고 계획하면서 남은 후반기 6개월은 우리가 들고 있는 노를 다 내려놓고, 내가 높이 세웠던 돛도 이제는 거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엔진으로 삼아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한번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서 12월 연말에 결산해 보십시오. 전반기와 후반기가 얼마나 다른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따라서, 그 길에 순종하고 걸어간다면, 가는 길마다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그 열린 하늘 문으로 야곱에게 주셨던 복과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복을 우리에게 마음껏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 귀한 분기점과 새 출발이 오늘 맥추감사주일, 오늘 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