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강 / 무지개 언약 (9:8-17)

무지개 언약 (창9:8-17)

그리스 신화를 보면 여러 신이 등장합니다. 그리스 신화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삶의 양식을 반영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신들의 모습은 우리가 기대하는 신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신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야비하며 교활합니다. 인간의 삶을 파괴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음란하기까지 합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신이 제우스인데, 제우스의 아내는 헤라입니다. 헤라는 질투의 화신이라 불리는데, 그 이유가 바로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입니다. 제우스는 틈만 나면 애정 행각을 벌였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이 알크메네라는 여인과의 일입니다. 그 여인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습니다. 남편이 먼 나라로 떠났을 때 제우스가 알크메네를 유혹했고,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헤라클레스입니다.

헤라클레스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헤라 때문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헤라가 질투에 눈이 멀어 헤라클레스를 끝까지 따라다니며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우스는 모른 척하며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사고관을 잘 보여주는 그리스 신화에는 이런 신들의 악행이 더할 나위 없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과연 인간의 삶에 개입하고 인간을 괴롭히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인간의 가정을 파괴하는 존재를 우리가 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그 신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신을 달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서양 사람들만의 세계관이 아닙니다. 동양, 특히 우리나라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민담과 설화를 보면 열악한 신들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야기를 자주 발견합니다. 구렁이를 섬기는 마을도 있습니다. 구렁이가 노하면 마을에 재해를 내리고 농사를 망치게 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매년 처녀를 바쳐야 했습니다. 바닷가에 가면 용왕님을 노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용왕에게 항상 제사를 드립니다.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한 배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늘 바다의 신을 달래는 의식을 치릅니다. 이것이 오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악신과 잡신의 완악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십니까? 세상의 악신과 잡신을 하나님과 비교하는 것조차 불경스럽지만, 하나님은 한마디로 말하면 손해 보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위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내어 주시기까지 하셨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을 통해 인간과 약속하시고 언약을 세우십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손해 보는 언약입니다. 철저하게 인간이 유리하도록 만들어진 언약입니다. 이 약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을 향한 특별한 구원 계획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오늘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켜주고 계시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손해 보시는 언약

먼저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께서 노아와 노아의 가족, 앞으로 태어날 노아의 모든 후손과 언약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상호적입니다.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갑과 을이 언약을 세우면 갑과 을 모두가 언약에 종속됩니다. 언약은 구속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굳이 인간과 언약을 세워야만 했을까요?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세우실 이유가 조금도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갑의 관계에 계시고 인간은 을의 관계에 있습니다. 갑과 을이 명확히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님이 왜 굳이 언약을 세워서 스스로 언약이라는 한계 안에 갇히셔야 한단 말입니까? 그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을 세우시고 스스로 한계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가족, 후손들과 맺으신 언약의 내용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 땅에 홍수를 내리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홍수 심판이라는 카드를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카드는 하나님 입장에서는 대단히 아깝고 유용한 카드입니다.

1-1. 홍수 심판 포기의 의미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은 홍수 심판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방주 안에 1년 10일 동안 있었습니다. 그들은 홍수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몸소 체험했습니다. 비록 쓸려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40일 밤낮으로 비가 내려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다 쓸어버리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카드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이 훨씬 더 두려웠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홍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너희가 똑똑히 봤지? 만약 앞으로 너희가 제대로 믿음 생활하지 않고, 제대로 말씀 보지 않고, 내 말을 어기거나 함부로 행동하며 살아가면 너희가 경험한 홍수를 너희 가정과 삶의 현장에 있는 즉시 다시 쏟아붓겠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이것은 인간을 통제하는 데 굉장히 유용한 도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그런 홍수 심판이라는 아주 유용한 수단을 폐기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가지고만 계셔도 인간을 통제하는 데,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만한 홍수 심판을 포기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가지 이유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믿어주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인류가 실패하고 두 번째 인류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 그의 후손들을 한 번 더 믿어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알고 계십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잘못되면 얼마나 악한 인간이 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 번 더 믿어주고 신뢰하기로 결단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신뢰할 테니 너희는 두 번 다시 악한 인생의 길을 걷지 마라. 그래서 내가 스스로 홍수 심판을 폐기하겠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입장에서 보면 절대적으로 유리한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손해 보시는 약속입니다.

1-2. 성경 전체에 흐르는 은혜의 언약

그런데 이런 약속은 여기 노아와 그의 자손들과 맺은 약속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신 모든 언약이 하나님이 손해 보시는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데려다가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십니다. "네 자손이 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해주겠다." 아브라함이 잘 믿지 못하자 하나님이 짐승을 잡아오라고 하십니다. 짐승을 반으로 쪼개라 하십니다. 쪼갠 짐승을 길가에 벌여 놓으라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사이를 지나가십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내가 만약 너와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 짐승들처럼 쪼개어지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언약으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과 약속을 하시면서 "내가 이 약속 지키지 않으면 짐승처럼 쪼개어지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언약을,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언약을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인간을 위해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도 이런 식의 언약을 맺습니다. 사무엘하 7장 9절과 16절을 보십시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다윗의 이름을 하나님이 영원토록 위대하게 만들어주고, 다윗의 왕위가 영원토록 견고하게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당시 성전 건축을 마음에 계획한 바로 그날입니다. 아직까지 성전 건축의 설계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첫 삽도 뜨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만 받으셨다 하시고 성전 건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의 진심을 받으시고 "너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고 네 왕위와 나라가 영원토록 견고하게 해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윗 입장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다윗 언약을 하나님은 맺어 주셨습니다. 다윗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신 언약 가운데 가장 위대한 언약은 십자가 언약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면 일어날 일입니다. 인간은 죄와 사망의 고통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인간을 죄와 죽음의 고통에서 건져낼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스스로 먼저 결정하시고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아들을 보내겠다고 결단하셨습니다.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징계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아들이 이 땅에서 채찍질 당하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샬롬(שָׁלוֹם)과 라파(רָפָא)의 축복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고 언약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이 언약 가운데 들어오신 것입니다.

2. 은혜받은 자의 삶

이런 식으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은 수혜자입니다. 돌아보면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일생을 돌아보면 노아와 맺은 무지개 언약,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다윗 언약, 십자가 언약, 이 모든 것이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주어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축복과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자격 없는 자인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 받은 은혜와 축복을 나누고 흘려보내는 데는 인색합니다. 어떤 특별한 이유 없이 내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 나오는 것에 인색합니다. 이마에 땀 한 방울 남을 위해서 흘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1분 1초도 타인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까워 죽을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면 오늘 이 시대에도 악덕 고리대금업자가 판을 칩니다. 열왕기하 4장 1절을 보십시오.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이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엘리사는 제자들을 많이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 중 하나가 빚을 갚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내가 찾아와 엘리사에게 한탄하는 내용입니다. 남편이 죽고 세상을 떠나자 빚을 갚지 못하게 되었고, 채권자가 찾아왔습니다. 여인에게 말합니다. "당신 남편이 죽었으니 피할 길이 없습니다. 당신의 두 아이를 데려다가 이제 종으로 삼겠습니다." 빚 대신 두 아이를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채권자도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닙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큰 은혜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는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받지 못하자 아이들을 볼모로 삼아 종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원금보다 이자가 서너 배나 비싼 것이 오늘 시대의 현실입니다. 고리대금업자와 악덕 사채업자들이 이 시대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도 오십보백보가 아닙니까? 내 주머니에서 돈 한 푼 나가는 것이 그렇게 아깝고, 남을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하는 것이 그렇게 하기 싫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큰 은혜를 부어 주셔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이 놀라운 언약의 축복을 받은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인색합니다.

하나님은 통이 크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배포가 크시고 나누어주고 베풀어 주시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신 당신의 백성을 보시고, 하나님과 닮은 자를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과 닮은 교회를 보시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통 큰 교회가 되고, 나누고 베푸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누고 베풀고 함께하는 하나님의 자녀와 가정이 되셔야 합니다. 바다가 크지 않습니까? 우리가 나누고 베풀고 함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곳간을 책임지시고 다시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그 교회를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하실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은혜와 베풀어주시는 축복이 우리 모든 성도에게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언약의 증거, 무지개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나님은 사람들과, 특히 노아와 그의 후손들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하나님 입장에서는 불평등한 언약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손해 보시는 언약입니다. 그런 언약을 맺으신 후 언약의 증거까지 세워 주셨습니다. 무지개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나? 약속하신 것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하나님께서 무지개까지, 언약의 증거까지 세우실 이유가 있나?"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언약의 증거를 세우신 이유가 있습니다.

14절과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인간은 누구나 나쁜 기억, 상처받은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 속에 1년 10일 있었습니다. 그들은 홍수를 직접 몸으로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 이후에 홍수가 끝나고 방주에서 나와서 이제는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면, 검은 구름이 밀려와서 빗방울이 서너 방울 뚝뚝 떨어지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다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나? 내가 무슨 죄를 지었지? 지금은 방주도 없는데 어디로 뛰어 들어가야 하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들은 홍수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더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약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내가 다시는 홍수로 너를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 구름이 하늘을 덮어도 놀라지 마라. 겁내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이 땅의 초목이 잘 자라기 위해서, 너희가 먹고살기 위해서, 목축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비가 필요하니 적당한 정도로 비가 내리게 할 것이지 절대로 홍수로 이 땅을 쓸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증거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었으니 그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언약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그렇게 섬세하게 노아와 그의 가족, 그 후손을 배려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섬세한 축복이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3-1. 트라우마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우리도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에게 크게 상처받으면 더 이상 사람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마음을 다 주었는데, 나는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는데, 이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배신감은 평생을 살아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어떤 관계도 만들지 않고, 이제는 절대 내 마음 열지 않고 내 마음 주지 않고 혼자서 마음 닫고 살겠다고 합니다.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가 평생 동안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힙니다. 사업에 한번 실패하신 분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일어서서 사업을 시작해도 이전에 실패했던 비슷한 패턴이 나타나기만 하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두려워서 꼼짝 못 합니다.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런 트라우마 때문에 우리는 견딜 수 없이 힘들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었으니 그것을 볼 때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홍수로 쓸려 내려간 사람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120년과 7일 동안 기회를 주어도 돌아오지 않아서 생긴 일이니 너희는 내 안에 있기만 하면, 내 말씀 가운데 거하기만 하면 이런 심판을 결코 다시 당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마라. 무지개는 바로 너를 위한 것이라."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혹시 우리가 믿음 생활 제대로 하지 않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혹시 우리가 지난날 큰 채찍을 맞았다 할지라도, 그러나 지금 하나님 안에 있기만 하면, 주의 말씀 붙잡고 살아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 언약의 증거로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무지개를 세우시고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구름 속에 무지개를 보라. 결코 다시 그런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하고 약속해 주십니다.

3-2. 성령, 우리의 무지개

예수님의 제자들, 그들은 갈릴리 어촌 촌놈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청년의 푸른 꿈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자기가 가진 꿈을 마음껏 펼치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예수 선생을 통해서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내가 이 촌구석을 벗어나서 예루살렘에 가서 이제는 한자리 하고 싶다는 마음을 다 가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서 십자가 지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청년의 푸른 꿈을 이루는 희망의 도시가 아닙니다. 두려움의 도시이고 불안한 곳이고 트라우마가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떠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떠나고 싶어도 집 밖을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알아볼까 봐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문을 꼭 닫고 숨어 있습니다. 불빛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불도 끄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입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십니다. 떠나고 싶은 그 트라우마의 장소, 그 두려움의 장소를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것, 성령을 받기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기다렸습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성령 받고 나니 그들이 달라졌습니다. 성령 받고 나니 그들은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이제 트라우마는 없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무지개는 곧 성령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과거에 실패했던 것, 과거에 내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 때 넘어졌던 것, 그것 때문에 내가 실망하고 낙심하고 마음의 상처가 생긴 것, 이제는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놀라운 성령의 은혜와 함께 과거의 상처도 치유하시고 하나님과 아름다운 믿음의 여정을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4. 보좌를 두른 무지개

더 놀라운 사실은 창세기 9장에 기록된 무지개 언약이 성경을 마치는 요한계시록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천국을 봅니다. "올라오라" 해서 열린 문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갔더니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좌정하시는 보좌입니다. 그런데 그 보좌를 무지개가 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 앉으신 그 보좌에는 무지개가 둘러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무지개 언약, 창세기 9장 이때부터 시작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종말의 시간까지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좌에 둘러 놓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맺으신 무지개 언약에서 "나는 이 언약을 지키겠다"는 하나님의 결단과 약속입니다.

홍수 이후로 인간은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여전히 악합니다. 어쩌면 홍수 이전보다 더 악한 인생이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이 드셨겠습니까? 수십 번이고 이 세상을 다시 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드실 때마다 하나님은 인간과 맺으신 무지개 언약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보좌에 두르신 무지개를 보시고 참고 인내하고 견디며 지금까지 견디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창세기에 시작한 무지개 언약에 하나님의 기다림은 세상의 종말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인내와 사랑의 기다림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거꾸로 역이용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기다려 주시니까, 내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아무 반응이 없으니까 멋대로 행동하고 자기 멋대로 죄짓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인내와 기다림과 사랑에 보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더 이상 죄짓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지금도 길이 참으시며 무지개 언약을 지켜보시는 그 신실하심을 붙잡고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에 증인이 되고, 그 약속 안에 포함되어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셔야 합니다.

통 크신 하나님, 모든 것을 손해 보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우리도 나누고 베푸는 사람이 되시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노아와의 무지개 언약, 다윗과 맺으신 언약, 십자가 언약을 통해서 전적으로 손해 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길이 참으시고, 지금도 무지개를 하나님 보좌에 두르시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완악하고 미련하게도 하나님의 이 극진하고 놀라운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베풀지 않고, 여전히 속 좁은 채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인내하심과 기다림에 응답하는 자녀 되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가 우리도 베풀며 나눌 수 있도록 도우시며, 그 사랑에 응답하여 이제는 죄짓지 않고 주의 사랑 안에 거하는 믿음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