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강 / 니므롯 (10:1-12)

니므롯

본문: 창세기 10:1-12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400년간은 유럽과 북아메리카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중세의 막이 내리고 근대가 시작되었으며, 산업혁명을 위한 산업화의 기틀이 다져졌습니다. 북아메리카 대륙 또한 근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며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 이처럼 발전하게 된 계기는 400년 동안 대서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삼각무역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도를 펼쳐 보면 중간에 대서양이 있고, 그 주변으로 유럽 대륙, 아프리카 대륙, 북아메리카 대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아프리카로 상품을 공급했는데, 그 상품에는 설탕과 담배가 주종을 이루었고 동시에 총기류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노예를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공급했습니다.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간 노예들은 사탕수수 밭과 담배 농장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그 넓은 땅에서 몸으로 봉사했습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사탕수수를 통해 설탕의 원료를 채취하고 담배의 원료를 채취해서 유럽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총기를 보낸 이유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 대륙의 부족들 간에 분쟁이 잦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총기를 공급하면 총기를 가진 부족은 그렇지 않은 부족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압된 흑인들을 북아메리카 대륙에 팔아 치웠습니다. 이른바 노예 사냥꾼들입니다. 그래서 이 삼각무역의 핵심은 아프리카에서 북아메리카로 넘어가는 노예들이었고, 이렇게 400년 동안 팔려 나간 노예들이 약 1,200만 명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약 150만 명은 대서양을 건너다가 배 안에서 사망했습니다. 1050만 명의 노예들이 북아메리카의 크고 넓은 대륙에서 사탕수수 밭과 담배 농장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피 위에, 노예들의 희생 위에 유럽인들은 산업화를 이루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유럽 사람들이 전 세계를 선도하는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노예무역이라는 부끄러운 과거에 빚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 하나 그 과거에 대해서 사과하거나 금전적인 보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2007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매우 슬프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라고 한마디 한 것 이외에는 그들은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했습니다.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는 사실 사고팔리는 사람들에게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 당신의 형상을 새기고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사람을 자신의 소유물로 삼고 노예로 삼고 함부로 대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이런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 존중의 삶을 살고 있는지, 나눔과 배려로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함께 살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악의 계보가 이어지다

사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좋은 역사나 나쁜 역사나 반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 이후의 인류 역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집니다. 아담의 아들 셋의 후손 에노스를 통해서 예배 공동체의 역사가 있고, 가인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가서 성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의 왕국을 건설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힘이 그들 삶의 유일한 목적이고 중심이 됩니다. 그들은 용사가 되기를 원했고, 고대의 명성 있는 자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홍수 심판으로 그들이 다 쓸려 내려갔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그런 자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이 역사는 반복되어서 함의 자손 중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다시 일어납니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창 10:6)

노아가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는데, 그중에 함이 또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함의 아들 중에 큰아들의 이름이 구스입니다. 구스가 또 자손들을 낳습니다. 그 자손 중에 한 특별한 사람이 태어납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창 10:8)

구스가 여러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에 한 아들의 이름을 니므롯이라고 지었습니다. 니므롯이라는 이름의 뜻이 중요합니다. 니므롯이라는 이름은 '반역하다', '배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함의 아들인 구스가 자기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을 니므롯, 즉 '반역하다', '배반하다'라는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누구를 반역하고 누구를 배반한다는 뜻일까요?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짓는다는 것은 내가 이 아이를 이렇게 기르겠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누구를 반역하고 누구를 대항하는 아들로 기르려고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요?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 10:9)

여기서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앞에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리프네'(לִפְנֵי)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 단어는 합성어입니다. '레'(לְ)라는 전치사와 '파네'(פָּנֶה)라는 명사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파네'는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앞에서"라는 의미의 '레'라는 전치사는 영어로 'against'라는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하여', '거슬러'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자가 바로 니므롯이라는 뜻입니다.

함의 아들 구스는 아들을 낳고 나서부터 아들의 이름을 니므롯, '반역하다'라는 이름으로 지었고, 그리고 그렇게 길러냈습니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인물로, 하나님의 대척점에 서는 인물로 길러냈습니다. 그가 그렇게 길러지고 그렇게 자라서 그는 하나님 얼굴 면전에서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자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니므롯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이 아닙니다. 함에게서부터 시작해서 구스로, 구스에게서 니므롯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함이 어떤 사람입니까? 함은 노아를 반대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인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을 육체적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영적으로 이해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아들 함은 아버지의 말이 무척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잘못을 빌미 삼아 아버지 반대편에 섰습니다. 아들보다 손자가 더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함을 향해서 아버지는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던집니다. 만약 그렇게 살면 너희가 네 형제들의 종이 될 것이다, 앞으로 그 종의 종들이 될 것이다, 부디 그 자리에서 떠나라고 경고하고 가르칩니다. 거기서 떠나야 했습니다. 함은 그 경고의 말씀을 듣고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회복하게 하실 것이라는 이 말씀을 듣고 돌이켜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함에게서 구스로, 구스에게서 니므롯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그들의 행위가 더 악해져 갔습니다. 함은 아버지 반대편에 섰지만, 손자 니므롯은 정면으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정의 영향력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무섭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농부가 농사를 지어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부단한 노력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씨를 뿌려야 되고 김매기를 해야 되고, 가을에 한 줌의 곡식을 얻기 위해서는 농부는 굉장히 많은 수고를 해야 됩니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잡초가 자라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버려 두면 됩니다. 풀을 한 움큼 뽑아도 잠시 잠깐 눈을 돌렸다가 다시 돌아오면 잡초는 수풀을 이룹니다.

우리 인간의 악한 본성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선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믿음의 싸움을, 투쟁을 하며 살아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우리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악한 본성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악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자녀를 길러도, 노아가 셈과 함과 야벳을 믿음으로 길러도 그중에 함과 같은 자녀가 나타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말씀으로 가르치고 예수님의 믿음의 본으로 직접 그들을 가르쳤지만 가룟 유다 같은 인간이 나타나는 것처럼, 그냥 내버려 두면 도대체 우리 자녀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디모데에게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하였도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했습니다. 이 싸움은 1년 혹은 5년, 10년에 끝나는 싸움이 아닙니다. 평생 동안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붙잡고 싸워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되었다고, 이제는 내가 더 싸우기 너무 힘겨워서 내려놓겠습니다 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는 나도 모르게 악의 열매가, 나도 모르게 잡초가 무성하게 자랄 것입니다.

함의 인생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함이 어떤 사람입니까? 방주를 함께 만든 사람 아닙니까? 아버지 노아를 도와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역청을 칠했습니다. '카파르'(כָּפַר)를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을 열심히 칠한 사람입니다. 노아 홍수 사건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40일 밤낮을 비가 내려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가 예배 공동체를 떠난 자들을 하나님이 한순간에 쓸어버리시는 것을 자기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함은 은혜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이었고 구원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홍수 이후에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방주에서 나와서 아버지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구원받은 감격, 은혜받은 감격에 머물렀습니다. 그 이후에 믿음의 선한 싸움의 투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 매일 일어나는 잡초를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는 순간 그의 영혼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그도 모르게 아버지 반대편에 서고,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정면으로 반역하는 악한 가문의 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구원의 감격에 취해 있을 문제가 아닙니다. 구원 이후의 믿음의 선한 싸움을 매 순간 싸우며 붙들고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시시각각으로 솟아나오는 탐욕과 정욕과 탐심과 육체의 여러 가지 문제를 믿음으로 제거하고 풀을 뽑아내야 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런 과정은 우리 자신만을 위한 과정이 아닙니다. 나와 우리 자손들, 우리 자녀들, 우리 교회에서 믿음 생활하고 있는 믿음의 다음 세대들을 위한 부모 세대의 책임과 의무입니다. 함이 만약 자기 마음속에 자라나고 있는 악한 마음의 풀을 뽑아내었다면, 아들 구스에게, 손자 니므롯에게 이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3. 선한 누룩을 넣어주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1-33)

우리가 잘 아는 비유입니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입니다. 하지만 이 비유들의 핵심은 겨자씨가 아니고 누룩이 아닙니다. 여기 이면에 있는 농부와 여자가 핵심입니다. 왜 농부가 핵심일까요? 겨자씨 한 알을 갖다 심는 자는 농부입니다. 겨자씨가 아무리 많이 있어도 농부가 수고해서 씨를 뿌리지 않으면 겨자씨는 싹을 틔울 수가 없습니다. 농부가 수고해야 됩니다.

씨를 뿌리고 심었다고 그걸로 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잘 자라도록 김매기를 해줘야 됩니다. 풀을 뽑아야 됩니다. 거름을 줘야 됩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물을 끌어다가 물을 줘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것은 하나님과 농부의 동역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비를 주시고 바람을 주시고 햇볕을 주시고, 농부는 수고하고 땀 흘리고 애를 써야 됩니다. 가만히 두어서는 한 알의 겨자씨는 그냥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그 나뭇가지에 새들이 깃들이고, 나무 그늘에 사람들이 쉴 만큼 큰 나무로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부모의 몫이고, 교회 공동체 믿음의 기성세대들의 몫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우리 믿음의 후 세대들이 어떻게 신앙생활하고 그들이 믿음의 선한 투쟁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환경을 만들어주고 믿음의 본을 보여주고, 그들이 잘 자라도록 주변의 풀을 뽑아주고 솎아주는 몫은 바로 우리의 몫이라는 뜻입니다. 가만히 두면 그 자리에는 수풀이 우거져서 나무가 자랄 수 없도록 나무가 먹을 양분을 잡초들이 다 빨아 먹어버릴 것입니다.

누룩 비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집의 거실에 가루 서 말을 풀어놓았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엄청난 양 아닙니까? 여기서 말씀하는 가루 서 말은 우리 자녀들의 잠재력을 의미합니다. 가루 서 말이 그냥 그대로 있으면 그냥 가루 서 말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여자가 누룩을 넣었습니다. 누룩 아닌 여자가 중요합니다. 누룩이 들어간 가루는 부풀어 오릅니다. 빵이 됩니다.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줍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잠재력이 있는데, 그 잠재력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훌륭한 것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선한 영향력의 누룩을 부모들이 넣어줘야 됩니다. 믿음의 기성세대들이 우리 후 세대들에게 누룩을 넣어줘야 됩니다. 악한 누룩이 아닌 선한 누룩을 넣어줘야 됩니다. 함과 구스는 니므롯에게 악한 누룩을 넣어주었습니다. 그 누룩이 들어가자 그들은 크게 부풀어 올라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놓고 반대하는 악한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자녀들에게, 믿음의 다음 세대들에게 선한 누룩을 공급하고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과연 내가 하고 있는 한마디 말과 행동과 우리 삶의 자리 한 순간 한 순간이, 나와 함께하고 있는 자녀들에게, 우리 후 세대들에게 어떤 누룩을 넣어주고 있는가? 지금이라도 우리는 돌이켜서 선한 믿음의 누룩을 넣어주는 사람들이 되셔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우리는 함과 같은 혹은 구스와 니므롯과 같은 자녀를 양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4. 사람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

그렇다면 이제 니므롯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어떤 식으로 대항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 10:9)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사냥했다는 뜻일까요? 일반적으로 사냥꾼은 짐승을 사냥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과연 짐승만 사냥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해답이 10절에 있습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 10:10)

"그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짐승을 아무리 많이 사냥해도 나라를 구성할 수 있습니까? 자기 왕국을 만들 수 있습니까? 모름지기 왕국이 세워지려면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백성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뜻은 그가 강력한 전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전사가 되어서, 그 힘 아래에 사람들이 복종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이야기하면, 그가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뜻은 인간 사냥꾼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압제하고 그가 가진 강력한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켜서 그의 나라를 건설한 악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항하고 하나님을 정면으로 반역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 한 분을 섬기는 핵심 단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수많은 말씀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십계명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합니까? 사람을 섬기는 행위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존중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 이유는 그 이웃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함께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바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람을 존중하십니까? 나와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들, 나는 저 사람과 함께 있기 싫어하는 사람들, 혹은 나와 경제력에 차이가 나고 배운 학벌의 차이가 나서 나는 저 사람과 함께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우리 마음속에 내 나름대로의 선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 선과 경계를 허무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다 섬기고,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다, 예수님은 그 앞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까지 씻어주셨습니다. 세리와 창기도 예수님 안에서 섬김을 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 니므롯 같은 자들이 되지 않으려면 이웃과 형제를 섬기고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이웃을 사랑하면 놀라운 역사도 일어납니다. 창세기 말씀을 보면 야곱이 에서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형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수십 년 동안 쌓여 있었던 형제 간 마음의 앙금을 한순간에 녹여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웃의 얼굴을 볼 때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 그분을 섬기고 돕고 함께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5.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라

또한 니므롯이 잘못한 것은 그의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그는 그의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반대말이 '그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의 법전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입니다.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감히 사람이 어떻게 주인이 됩니까? 하나님이 주인 되십니다.

다윗은 대단한 왕이었지만 하나님을 왕으로 섬겼습니다. 자신은 왕이었지만 왕으로 군림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또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왕국을 건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면에 니므롯은 그의 나라를 건설합니다. 자기 나라입니다. 자기 나라는 율법이 없는 나라, 말씀이 없는 나라, 자기 힘이 중심이 되는 나라, 내가 그 나라의 왕이 되는 나라가 자기 나라입니다. 니므롯은 바로 그런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나의 나라를 건설하십니까,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계십니까? 우리 가정의 주인이 누굽니까? 가정 공동체의 주인은 돈 벌어오는 부모가 아니고, 입시를 앞두고 있는 자녀도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셔야 됩니다.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우리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소위 힘센 사람이 주인입니까? 교회의 주인은 결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이 교회의 주인 되셔야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하나님의 일꾼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가 믿음의 다음 세대들에게 신앙 전승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잘 흘려주고 가르치고 일깨워주어서, 그들이 니므롯 같은 존재가 되지 않고, 그의 나라를 건설하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며 사람을 사랑하고 인간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존중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세워져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함과 구스와 니므롯으로 이어지는 이 악한 가계를 보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지 않는 이들의 비참한 종말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흔들리지 않고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게 하옵시고, 마지막 날 주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선한 열매 맺는 아름다운 믿음의 백성, 가정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주여, 니므롯은 사람을 무시하고 인격을 억압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말살했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니므롯처럼 살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존중하며,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사람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인정받는 사람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니므롯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그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주여, 우리를 겸손하게 해주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믿음의 자녀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