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강 / 왕들의 전쟁 (14:1-12)

왕들의 전쟁

본문: 창세기 14:1-12

오늘날 현대 국제 질서에서 과연 영원한 우방은 존재할까요? 자국의 이익이 최우선인 국제 질서에서 영원한 우방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가운데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과 소련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한때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었습니다.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적이 된 것입니다.

미국과 중동의 관계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이라크를 은밀히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의 대통령이 되고 대량살상무기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미국은 북한과 함께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했습니다.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적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오늘날 현대사회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롯이 살았던 고대 사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이처럼 복잡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 질서 가운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일까요? 도대체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의 민낯

롯은 애굽에 가서 비옥한 땅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농사가 잘 되고 목축하기 좋은 땅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기회만 된다면 저런 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왔습니다. 그 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삼촌인 아브라함과 심하게 다투고 아브라함이 롯을 떠나보냈습니다. 롯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돔 땅으로 떠났습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는 말씀도 롯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야만성과 폭력성 따위는 생각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저 돈 많이 벌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소돔 땅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창 14:1-2)

복잡하고 낯선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롯이 살고 있었던 소돔 지역에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있었는데, 그 도시 국가들의 왕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든 다툼, 모든 전쟁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싸웠을까요?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창 14:4)

배반 때문입니다. 소돔 지역을 둘러싼 도시 국가들의 맹주는 그돌라오멜이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권위와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던 수많은 도시 국가의 왕들은 그돌라오멜을 섬기며 그의 보호를 받으며 지냈습니다. 소돔 왕, 고모라 왕, 그 외의 여러 국가들의 왕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2년 동안 섬겼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제 그들도 성장하고 발전했습니다. 더 이상 그돌라오멜을 섬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란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돌라오멜을 섬기고 있는 도시 국가의 왕들도 있었습니다. 그 왕들이 함께 세력을 결집합니다. 그돌라오멜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조공을 바치지 않고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 이들을 정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국제 사회의 정세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과 사람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사실 소돔과 고모라 왕을 비롯한 여러 왕들은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다른 외부 세력이 침탈해도 그돌라오멜에게 조공을 바치고 그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12년 동안 보호받았던 안면을 바꿉니다. 이제 당신의 보호가 필요 없으니 우리는 독립하겠다며 배반합니다. 그런데 그돌라오멜도 마음이 넓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12년 동안 받아먹었는데 이제 성장하고 발전했으니 독립된 나라를 이루라고 떠나보내 주면 좋을 텐데, 영원토록 복속시키고 영원히 조공을 받으려 했습니다. 반란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조공을 바치지 않는 것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국제 사회의 질서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법칙입니다.

변치 않는 반석이신 하나님

많은 사람들은 사람을 통해서 상처를 받습니다. 조직에게 상처를 받고 조직을 배신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꼭 이 모양입니다. 지금 내 앞에서 웃고 있고 나에게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대하는 사람이라도 언제 나를 이용할지, 어떻게 나를 배신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사람에게 속고 속이는 경험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충성한 조직에 배신당하는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 더 이상 사람을 믿지 않게 됩니다. 이 사람을 믿고 충성을 다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떠납니다. 또 다른 사람을 믿고 충성을 다했는데 그 사람도 나를 이용합니다. 누구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사람을 신뢰하고 조직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시편 18편에서 우리가 신뢰할 분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 18:1-2)

사울에게 있어서 다윗은 은인 같은 존재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얼마나 많이 도와주었습니까? 사울이 한때 악령에 시달리고 있을 때 다윗이 궁중 악사가 되었습니다. 악기를 연주해서 사울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골리앗 때문에 이스라엘이 큰 위기에 빠졌을 때 다윗이 골리앗을 이김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사울의 군대 장관이 되어 가는 곳마다 승전보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다윗 덕분에 사울의 나라, 이스라엘의 영토가 갈수록 확장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을 좋아하니 사울의 권위도 덩달아 높아졌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런 다윗을 배신했습니다. 다윗의 인기가 높아지자 왕권을 위협받는다고 생각한 나머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광야로 내몰았습니다. 십수 년 동안 쫓겨 다녔습니다. 다윗은 충성을 다했지만 주군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목숨을 위협받았습니다. 창을 던지고 칼을 겨눕니다. 시간이 한참 지났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건져 주셨습니다. 그때 지어 부른 노래가 시편 18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나의 반석, 나의 산성, 나의 요새, 나의 바위라고 합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백 년이 지나도 천 년이 지나도 반석, 산성, 바위, 요새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한때 나를 등용한 왕이라 할지라도 안면을 바꾸고 나에게 창을 던지고 칼을 겨눕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지금도 나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를 건져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그 놀라운 은혜는 변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말했습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사 2:22)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코에 호흡을 가진 자들입니다. 권력이 있는 자나, 물질이 있는 자나, 강한 자나, 약한 자나, 그 코에 호흡이 떨어지면 우리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존재들은 셀 가치가 없다고 했는데 어찌 인생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토록 변치 않는 하나님, 저 하늘에 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살피시고 굽어보시며 우리 인생을 죄에서 건져 주신 그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계십니까? 사람 믿었다가 상처받고 또 다른 사람에게 더 크게 상처받아서 이제는 더 이상 내 마음을 줄 곳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영원토록 변치 않는 하나님을 통해서 큰 위로와 은총과 축복을 함께 받으시기 바랍니다.

신기루 같은 물질의 속성

이제 롯은 하나님의 땅을 떠나 소돔 땅에 와서 세상의 비정한 현실을 몸으로 직접 체험했습니다. 롯과 롯의 가정은 왕들의 전쟁으로 인해서 속절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전쟁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창 14:10)

조공을 바치지 않기로 단결하고 반란을 일으킨 왕들이 제압당했습니다. 그돌라오멜은 여전히 강력했습니다.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은 역청 구덩이에 빠지고 나머지 왕들은 다 산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창 14:11-12)

왕들의 전쟁 때문에 백성들이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다 포로로 끌려가고 재산도 다 약탈당하고 말았습니다. 롯과 롯의 가정도 포로로 잡혀가고 롯의 재물, 롯의 재산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물질의 속성을 만납니다. 물질의 속성은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없다가도 한순간 생겨나는 것이 바로 물질의 속성입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사라와 롯이 하나님 주신 가나안 땅에 왔다가 애굽으로 내려갈 때 그들은 빈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는 빈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울타리를 벗어났고, 그곳에서 거짓말한 대가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은금과 가축과 나귀와 여러 노비들을 얻어서 올라왔습니다. 큰 부를 이루었습니다. 이 부를 밑천으로 삼아서 롯은 더 큰 부자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기근이 빈번한 가나안 땅에서 목축하고 농사하며 살다가는 원금을 까먹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농사가 잘 되고 목축이 잘 되고 물이 넉넉한 소돔 땅을 택하고 그곳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증식시키기 위해서 그곳으로 떠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원금까지 다 잃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재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몸만 남았습니다. 그들의 몸까지 이제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노예로 잡혀가고 포로가 되었는데 그들의 생명도 풍전등화입니다. 물질이라는 것은 이렇듯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고, 신기루같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여기서 물질의 성격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롯이 잃어버린 이 물질, 이 재산과 가축의 성격이 어떠합니까? 그들이 땀 흘리고 노동해서 얻은 부끄러움 없는 물질입니까? 아니면 부끄러운 물질입니까? 사실 이 물질은 받아와서는 안 되는 돈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거짓말했습니다. 거짓말한 대가로 부를 이루고 이 물질을 받아왔습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사라와 롯이 공모해서 얻은 물질입니다. 사라만 되찾아서 올라와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한순간 욕심에 눈이 멀어서 이 물질까지 다 받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물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더 큰 부를 이루기 위해서 소돔 땅으로 건너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셨습니다.

물질의 성격이 내가 수고하고 내가 노력하고 내가 땀 흘려서 얻은 물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물질이 원래 롯의 것이 아니었는데, 원래 롯이 수고하고 땀 흘려서 자기가 얻은 것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이 가져가셨다면, 이것은 재앙입니까? 축복입니까? 롯의 입장에서는 재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도 롯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물질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롯에게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떠나 살다가, 부자로 살다가, 하나님 없이 살다가 지옥불에 떨어지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화의 근원이 되었던 이 물질, 믿음을 잃어버리고 약속의 땅을 떠나서 소돔 땅에 오게 한 이 물질을 거두어 가시고, 이제 다시 가난으로 돌아가라, 이제 그곳에서부터 새출발하라고 하나님의 마음과 신호를 그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롯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가치 있는 물질이 있고 가져서는 안 되는 돈이 있습니다. 부끄러울 것 없이 떳떳한 물질이 있고 부끄러운 물질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압제하고,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에게 사기치고, 거짓말로 얻어 쌓은 물질, 만약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이 다른 사람의 피땀으로 세워진 물질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비록 적은 물질이라 할지라도 그 물질에 나의 땀과 나의 노력과 수고가 함께 들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물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 128:1-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과정에 충실한 자, 성실하게 하나님께서 원하는 과정을 걷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내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그런 자가 복되고 형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땀 흘린 대가를 얻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를 투자하면 열을 얻어야 복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의 노력으로 많은 결과를 얻어야 수지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확천금을 누리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허상입니다. 거짓말로 애굽에서 재물을 모아서 왔습니다. 이 재물이 아브라함 가정의 화가 되었습니다. 롯의 믿음이 사라지고 맙니다. 롯은 그 재물을 가지고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서 소돔 땅에 왔습니다. 왕들의 전쟁에 휩싸였습니다. 하나님이 재물을 다 거두어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믿음

이제 롯은 사로잡혀 갔습니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롯이 포로가 되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롯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돌아오는 사람이 되려면 처음부터 찬찬히 자기 인생을 반추하고 돌아봐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기에게 일어난 이 일을 해석해야만 옳았습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왕들이 전쟁을 합니다. 전쟁을 해서 내가 속한 나라의 왕이 졌습니다. 나는 포로가 되었고 물질은 다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내 인생에 일어나게 하시는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인생을 조망해 봐야 합니다.

이 일을 가장 잘한 사람이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창 40:8)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였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들어왔습니다. 하루는 잠에서 깨어보니 그들의 낯빛이 어둡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두 사람이 각각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꿈을 해몽해 줄 테니 말씀해 보십시오라고 했을 때 한 말입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는 이 말이 요셉의 인생의 방향이었고 모토였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일어나는 일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요셉은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죄가 없습니다. 잘못한 적이 없는데도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정절을 굳게 지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람을 배신하지 않으려 하다가 모함을 받아서 감옥에 죄수로 갇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면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왜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나는 자꾸만 이런 일이 얽히고설키고 복잡한 일만 일어나는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의 인생을 해석해 보니,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지금은 모르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나에게 분명히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러니 이 섭리를 깨달을 때까지 나는 여전히 죄짓지 않고 믿음을 굳게 지키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자는 것이 요셉의 삶의 목표였고 방향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남들은 전부 다 잘되는데 나 혼자만 어렵고 힘든 일이 반복될 때, 우리 가족 가운데 여러 가지 복잡한 일에 휘말리는 일이 있을 때, 이때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태를 다시 조망해 보십시오. 그러면 답이 보일 것입니다. 왕들의 전쟁도 바로 이런 관점으로 롯이 바라봐야 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왕들의 전쟁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구나, 이 물질이 원래는 내 것이 아니었고 거짓말과 위선으로 가져온 것이니 하나님이 도로 가져가시는구나, 이제 나는 여기서 털고 일어나서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시면 다시 가나안 땅으로 가서 믿음 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되겠다는 생각에까지 도달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롯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믿음을 가진 백성들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볼 때는 불행인데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축복인 경우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어려운 일이고 안 된 일이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때는 선한 일이고 하나님의 뜻이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믿음의 눈을 가지고 견지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지난 65년 동안 우리 교회는 크고 작은 풍파를 겪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했고, 기쁜 일이 있을 때도 교회 각 구성원이 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이런 관점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발전시켜 나갔으면 합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께서 이 시기를 통해서 우리 각자 삶의 현장과 가정에 일하시고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 드리는 믿음의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사람의 눈으로 보지 않게 하옵소서.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모든 일의 의미를 찾게 하옵소서. 롯에게 일어난 일은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재앙이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축복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였고 사랑이었고 하나님의 기다림이었습니다.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낙심천만하고 포기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이런 일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느끼고 바라보게 하옵소서. 사람 의지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낙심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반석이시고 바위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산성이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우리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