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설교 인도자용 교안
라헬과 이삭 (창 35:16-29)
<마음을 열며 - 아이스브레이킹>
1. 살아오면서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동시에 겹쳤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주십시오.
- 예를 들어 축하할 일이 있었는데 동시에 안 좋은 소식을 접했거나, 가족 행사 중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생긴 경험 등
- 그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더 크게 느껴졌는지, 어떻게 마음을 추스렸는지 함께 나눔
- 누구나 한두 가지씩 떠올릴 수 있는 보편적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나눔을 시작
2. 무언가를 놓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있다가 오히려 더 힘들어진 경험이 있으시다면 나누어 주십시오.
- 물질, 관계, 성취, 비교 의식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경험
- 놓고 난 후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눔
- 본문에 나오는 라헬의 집착과 야곱의 내려놓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
<말씀 앞에서>
1. 라헬의 죽음 앞에서 야곱이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 지은 것은 어떤 신앙 고백을 담고 있습니까? (창 35:16-20) (참고 창 5:4-8)
1-1. 삶과 죽음의 교차
- 야곱 가족이 벧엘을 떠나 에브랏(베들레헴)으로 향하는 약 20km의 여정 중, 라헬이 길에서 해산하게 됨
- 고대 시대에 길 위에서의 출산은 의료 시설이 전무한 상황에서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이었음
- 새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라헬은 숨을 거두게 됨.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동시에 교차하는 장면
- 창세기 5장의 족보에 반복되는 세 단어—"낳고, 살고, 죽었더라"—가 인간 삶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보여 줌
1-2. 베노니와 베냐민—두 가지 해석
- 라헬은 죽어 가면서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슬픔의 아들)'라 부름. 자기 품에 한 번 안아 보지 못하고,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한 채 떠나야 하는 어머니의 애절한 심정이 담긴 이름
- 야곱은 이 아들을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이라 부름.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손이 이 아이를 이끌어 줄 것이라는 신앙 고백이 담긴 이름
- 야곱이 슬프지 않아서가 아님. 14년이나 종처럼 일하며 얻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은 누구보다 컸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비탄 속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에 아들의 인생을 맡기는 신앙적 결단을 내림
1-3. 고통 속에서의 신앙적 자세
-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통만 있거나 기쁨만 있는 곳이 아니라, 삶과 죽음, 고통과 기쁨, 슬픔과 행복이 함께 공존하는 곳임
-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고, 아스팔트 틈에서도 꽃이 피어나듯, 고통 가운데도 웃을 일이 있고 행복이 있음
- 어떤 가정이든 외부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내면에는 고통과 걱정과 염려가 함께 존재함
- 중요한 것은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수용하느냐 하는 자세임. 야곱은 슬픔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함
1-4. 인도 포인트
- 창세기 35:18을 함께 읽으며, '베노니'와 '베냐민' 두 이름의 의미 차이를 설명. 베노니는 '슬픔의 아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로,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두 관점을 보여 줌
- 창세기 5:4-8을 참조하여 "낳고, 살고, 죽었더라"는 표현이 인간 삶의 보편적 패턴임을 설명하되, 그 가운데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는 점을 강조
- 참여자들에게 "우리 삶에서 베노니로 해석하고 있는 상황은 없는지, 그것을 베냐민으로 바꿀 수 있는 신앙적 관점은 무엇인지" 나누도록 유도
- 고통 중에 있는 참여자가 있을 수 있으므로, "슬퍼하면 안 된다"는 식의 정죄가 아닌, "슬퍼하되 소망을 잃지 않는 자세"로 방향을 잡을 것
- 천국 소망에 대해서도 언급하되, 죽음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천국에서 다시 만남이 있다는 위로의 메시지로 연결
2. 라헬의 인생을 통해 집착과 열등감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창 35:16-19) (참고 창 30:1, 전 3:12-13)
2-1. 라헬의 행복과 불행
- 여인으로서 라헬은 행복한 삶이었음. 야곱이 14년 동안 종처럼 일하며 얻을 만큼 깊은 사랑을 받은 여인
- 그러나 전인적 인간으로서 라헬의 인생은 열등감과 경쟁에 지배당함. 언니 레아가 여섯 아들과 한 딸을 낳을 동안 자신은 아들 하나뿐이었음
- 열등감 때문에 르우벤의 합환채를 빼앗고, 남편을 다그치고, 몸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는 등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짐
- 끝까지 언니와 경쟁하려다 무거운 몸으로 이동 중 해산하다가 세상을 떠남
2-2. 집착이 삼킨 인생
- 라헬의 인생을 집어삼킨 것은 언니와의 경쟁심과 열등감이었음
-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분한데, 그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부족한 것에 집착하며 살았음
- 부족함이 집착이 되고, 집착이 열등감이 되고, 열등감이 경쟁 의식이 되어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끈 구조
- 놓을 수 있을 때 놓고, 버릴 수 있을 때 버리며, 하나님의 사랑 하나를 붙잡고 사는 것이 참된 만족의 길임
2-3.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
- 전도서 3:12-13에서 전도자는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 선언함
- 열등감과 집착과 경쟁심에 사로잡히면 선을 행할 수 없음. 경쟁하는 마음으로는 손이 펴지지 않고, 집착하는 마음으로는 타인의 고통이 눈에 들어오지 않음
- 만족하며 살면 나보다 힘든 이들이 보이고,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김
- 집착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선을 행하고, 낙을 누리며, 기뻐하는 삶이 가능해짐
2-4. 인도 포인트
- 라헬의 이야기를 소개할 때, 라헬을 단순히 부정적 인물로 정죄하지 않도록 주의. 그녀도 깊은 고통과 열등감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인물임을 인정하면서, 그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설명
- 전도서 3:12-13을 함께 읽으며,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 이것이 집착과 경쟁의 대안임을 부각
- 참여자들 중 현재 비교 의식이나 열등감으로 고통받는 분이 있을 수 있으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은혜롭게 전달
- 창세기 30:1("나로 자녀를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을 참조하여, 라헬의 집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배경으로 설명 가능
3. 르우벤의 범죄에 대한 야곱의 침묵과 나중의 징계(창 49:3-4)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창 35:22) (참고 창 49:3-4)
3-1. 일어나서는 안 될 일
- 라헬을 장사 지낸 후, 야곱 가족이 이동하는 중에 장남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를 범하는 사건이 발생함
- 이 소식을 듣고도 야곱은 당시 아무런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음
- 가족들은 야곱이 라헬을 잃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으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음
- 그러나 야곱은 잊지 않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다룸
3-2. 물의 끓음 같은 욕망
- 창세기 49:3-4에서 야곱이 임종 시 열두 아들에게 유언할 때, 르우벤에게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라는 징계를 선언함
- '물의 끓음'은 주체할 수 없이 끓어오르는 욕망을 비유한 표현. 르우벤은 장자로서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했으나,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여 장자권을 잃음
- 장자권은 유다에게로 넘어감. 이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계보가 유다 지파로 이어지게 됨
- 단 한 번의 실수처럼 보이지만, 오랫동안 아버지 곁에서 훈련받은 장남이 자기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사안이었음
3-3. 신앙인의 책임과 절제
- 믿음 생활 초기에는 몰라서 범하는 실수가 통할 수 있음
- 그러나 신앙 생활을 오래 하고, 말씀을 배울 만큼 배우고, 깨달을 만큼 깨달은 후에도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음
-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정의의 하나님이심. 사랑만 강조하면 방종으로 흐를 수 있음
-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와 축복(장자권)이 영원히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함
3-4. 인도 포인트
- 창세기 35:22를 먼저 읽고, 야곱이 왜 당시에 침묵했는지 참여자들과 함께 생각해 볼 것. 이어서 창세기 49:3-4를 읽으며, 야곱이 결코 잊지 않았음을 보여 줌
- "물의 끓음"이라는 표현을 설명할 때, 히브리어 '파하즈'가 '끓어오름, 불안정함, 욕망'을 뜻함을 간략히 소개
- 르우벤을 정죄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오랫동안 훈련받았음에도 결정적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로 방향을 잡을 것
- "우리 삶에서 '물의 끓음'처럼 절제하기 어려운 영역은 무엇인지" 나누도록 유도하되, 지나치게 개인적 고백을 강요하지 않도록 주의
-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균형을 강조. 은혜가 방종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됨을 부드럽게 전달
4. 창세기 35장에 기록된 세 번의 죽음(드보라, 라헬, 이삭)은 우리에게 어떤 삶의 우선순위를 제시합니까? (창 35:8, 19, 28-29)
4-1. 이삭의 삶과 죽음
- 야곱 가족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헤브론. 이곳에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었음
- 이삭은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떠날 때부터 이미 노인이었으나, 아들이 올 때까지 생존해 있었음
- 이삭은 백팔십 세에 세상을 떠남.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이 함께 장례를 치름
- 이삭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이자, 모리아산에서 '여호와 이레'를 경험한 인물. 온유한 성품으로 분쟁하지 않았으나, 자녀 편애라는 약점이 있었음
4-2. 세 죽음의 공통점
- 창세기 35장은 드보라(리브가의 유모)의 죽음(8절), 라헬의 죽음(19절), 이삭의 죽음(28-29절), 세 번의 죽음을 기록함
- 이삭은 가장 특별하고 탁월한 인물이었으나, 드보라나 라헬이나 이삭이나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동일함
-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와 권세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로 기억되느냐 하는 것임
- 라헬처럼 집착하고 경쟁하며 갈등하는 삶이 아닌, 믿음의 길을 걸어가며 선을 행하고 기뻐하며 나누는 삶을 지향해야 함
4-3. 하나님 앞에 기억되는 삶
- 이삭의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온유하게 살아간 인생이었으나, 자녀 편애라는 한계도 있었음
- 완벽한 인물은 없으나,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함
-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며, 그 앞에서 이 땅의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 됨
-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의 성실함, 선을 행하는 삶임
4-4. 인도 포인트
- 창세기 35:8(드보라의 죽음), 35:19(라헬의 죽음), 35:28-29(이삭의 죽음)를 각각 간략히 소개하며, 한 장에 세 번의 죽음이 기록된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볼 것
-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참여자들의 생각을 끌어낼 것
- 이삭의 인생을 소개할 때, 그의 장점(온유함, 여호와 이레의 경험)과 약점(자녀 편애)을 균형 있게 다룰 것
- 죽음이라는 주제가 무겁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천국 소망과 하나님 앞에 서는 기대로 분위기를 전환할 것
- 설교의 결론 메시지인 "라헬처럼 살지 말고, 믿음의 길을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가며 선을 행하고 기뻐하며 나누는 삶"을 정리하며 마무리
<말씀에 비추어 보며>
1. 내 삶에서 '베노니'로 해석하고 있는 상황을 '베냐민'으로 바꾸려면 어떤 신앙적 자세가 필요합니까? (창 35:18) (참고 시 73:26, 롬 8:28)
1-1. 도입 질문 "지금 내 삶에서 가장 힘들거나 슬프게 느껴지는 상황이 있다면, 그 상황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무엇입니까?"
1-2. 슬픔 속에서 하나님의 오른손 붙잡기
- 야곱은 라헬을 잃은 극심한 슬픔 속에서도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 부름으로써, 하나님의 권능에 자녀의 미래를 맡기는 신앙 고백을 함
- 현실은 우리 모두 '베노니(슬픔의 자녀)'일 수 있음. 억울한 일, 풀리지 않는 문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음
-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손이 우리를 건져 내시고 이끌어 가시고 있다는 사실을 붙잡는 것이 '베냐민으로 사는 삶'임
- 시편 73: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는 말씀이 이를 뒷받침함
1-3. 슬픔을 부정하지 않되 소망을 잃지 않기
- 야곱이 베냐민이라 이름 지은 것은 슬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님. 슬퍼하되 거기에 머물지 않겠다는 결단임
- 로마서 8:28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처럼, 현재의 고통도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의미가 있음을 신뢰하는 것
-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권능을 선포하는 것이 중요함
1-4. 적용 질문들
- "지금 내가 '베노니'로 해석하고 있는 삶의 영역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 상황을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손에 맡긴다면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요?"
-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주십시오."
- "주변에 지금 '베노니'의 상황에 있는 분이 있다면, '베냐민'의 소망을 전해 줄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까요?"
1-5. 실제적 적용 방향
- 매일 자신의 현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기도 시간을 가질 것 — "주님, 이 상황 속에서 주님의 오른손을 봅니다"
- 고통 중에 있는 소그룹 구성원이 있다면, 정죄하지 말고 함께 기도하며 '베냐민의 소망'을 나누는 공동체가 될 것
- 슬픔의 감정 자체를 부정하지 않되, 그 감정 위에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선포하는 신앙적 습관을 기를 것
- 삶의 어려운 상황을 기록하고, 그 옆에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함께 적어 보는 '베냐민 일기'를 시도해 볼 것
1-6. 격려 포인트 "우리의 현실이 베노니일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손은 어머니의 손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강력합니다. 슬픔을 직면하되 거기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오른손을 붙잡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베냐민의 인생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2. 라헬의 집착과 르우벤의 절제 실패에서 배우는 교훈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창 35:16-22) (참고 전 3:12-13, 창 49:3-4)
2-1. 도입 질문 "내 삶에서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더 원하게 되는' 영역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2. 내려놓음과 절제의 삶
- 라헬은 하나님의 사랑과 남편의 사랑으로 충분했으나, 자녀 수에서 언니와 경쟁하며 집착함. 결국 그 집착이 자신의 인생을 삼켜 버림
- 르우벤은 장자로서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했으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여 장자권을 상실함
-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이미 받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 파멸의 원인이 됨
- 전도서 기자는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선언함(전 3:12-13)
2-3. 만족과 선행의 선순환
- 집착하지 않고 만족하면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보이고,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김
- 선을 행하고 낙을 누리면 감사가 넘치고, 감사가 넘치면 더욱 만족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
- 신앙 생활이 성숙해질수록 더 큰 책임이 따름. 알 만큼 알고, 배울 만큼 배웠다면 그에 합당한 절제와 성품이 요구됨
-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정의의 하나님이기도 하심. 은혜가 방종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됨
2-4. 적용 질문들
-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물질, 인정, 비교, 성취 등) 중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내 삶에서 '물의 끓음'처럼 절제가 어려운 영역이 있다면, 말씀으로 다스려 가기 위해 어떤 실천이 필요할까요?"
-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을 위해 이번 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2-5. 실제적 적용 방향
- 이번 주 하루에 한 번, 감사한 것 세 가지를 적어 보며 '충분함'을 인식하는 훈련을 할 것
- 비교 의식이 올라올 때, 전도서 3:12-13을 묵상하며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할 것
- 자신이 오래 훈련받은 신앙인이라면, 그에 걸맞은 절제의 영역을 구체적으로 점검할 것
- 소그룹 구성원 간에 서로의 약한 영역을 위해 기도하는 파트너를 정해 볼 것
2-6. 격려 포인트 "라헬의 이야기는 정죄가 아니라 경고이고, 르우벤의 이야기는 심판이 아니라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사랑으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집착을 내려놓고, 욕망을 절제하며, 하나님의 사랑 하나를 붙잡고 살아갈 때, 선을 행하고 기뻐하며 낙을 누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결단하며>
1. 베냐민의 삶을 선택하기 삶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손을 신뢰하며, 현실을 베노니로 해석하지 않고 베냐민으로 풀어가는 신앙적 자세를 갖기로 결단함
2. 집착과 열등감 내려놓기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분함을 인정하고, 비교·경쟁·집착을 과감히 내려놓으며, 기뻐하고 선을 행하고 낙을 누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함
3. 말씀으로 욕망을 다스리기 신앙의 연수에 합당한 절제와 성품을 갖추고,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욕심과 욕망을 배워 온 말씀으로 다스려 가며,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로 결단함
인도자 참고사항
주의사항
- 이 본문은 죽음을 다루고 있으므로, 소그룹 내에 최근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참여자가 있을 수 있음에 유의할 것. 죽음의 주제를 지나치게 무겁게 다루기보다, 천국 소망과 하나님의 위로에 초점을 맞출 것
- 라헬의 열등감과 집착을 다룰 때, 참여자들 중 현재 비교 의식이나 열등감으로 고통받는 분을 정죄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은혜의 차원에서 전달할 것
- 르우벤의 범죄를 다룰 때, 성적 죄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절제할 것. '욕망의 절제'라는 보편적 원칙으로 방향을 잡을 것
- 야곱의 침묵(35:22)에 대해 "왜 가만히 있었느냐"는 비판보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다루셨다"는 관점을 견지할 것
- "알 만큼 알고 배울 만큼 배운 신앙인의 책임"을 강조할 때, 오래된 성도들이 정죄감을 느끼지 않도록 은혜와 격려의 균형을 맞출 것
추가 설명 자료
베노니(בֶּן־אוֹנִי)와 베냐민(בִּנְיָמִין)의 의미
- 베노니: '내 슬픔(고통)의 아들'이라는 뜻. '오니(אוֹנִי)'는 '나의 슬픔, 나의 고통'을 의미함
-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또는 '남쪽의 아들'이라는 뜻. '야민(יָמִין)'은 '오른손'을 의미하며, 성경에서 오른손은 힘과 권능, 축복의 상징임 (시 110:1, 시 118:16 등)
- 야곱이 이름을 바꾼 것은, 슬픔의 현실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 아래 자녀의 미래를 맡기는 신앙 고백임
물의 끓음(פַּחַז, 파하즈)의 의미
- 히브리어 '파하즈'는 '끓어오름, 불안정함, 경솔함, 방종'을 뜻함
- 르우벤의 장자로서의 탁월함이 절제되지 못한 욕망에 의해 무너졌음을 비유적으로 표현
- 르우벤의 장자권 박탈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계보가 유다 지파를 통해 이어지도록 하시는 섭리적 사건이기도 함
참고구절 상세 해설
- 창세기 5:4-8 — 아담의 족보에서 반복되는 "낳고, 살고, 죽었더라"라는 패턴. 이 세 단어가 인간 삶의 보편적 구조를 보여 주며, 그 가운데 기쁨과 슬픔이 함께 공존함을 암시함. 설교에서는 이 구절을 통해 "삶의 본질"을 설명하는 데 활용함
- 창세기 30:1 —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이를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질투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녀를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라헬의 열등감과 경쟁심의 깊이를 보여 주는 구절. 자녀 출산에 대한 집착이 생사를 걸 정도로 극심했음을 드러냄
- 창세기 35:10-11 —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시고,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엘 샤다이)" 선언하심. 벧엘에서의 이 경험이 야곱 가족이 헤브론으로 이동하는 여정의 출발점이 됨. 본문의 사건들은 이 감격적 경험 직후에 일어난 것으로, 은혜의 체험 뒤에도 고통과 시련이 올 수 있음을 보여 줌
- 창세기 49:3-4 — 야곱의 임종 유언에서 르우벤에 대한 징계 선언.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장자의 탁월함이 절제되지 못한 욕망으로 인해 상실됨. 장자권이 유다에게로 넘어가는 결정적 계기가 됨
- 전도서 3:12-13 —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집착과 경쟁의 대안으로서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삶'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선언함
- 시편 73:26 (적용 부분 참조) —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영원한 반석이 되심을 고백하는 구절. 베노니의 현실 속에서 베냐민의 소망을 갖는 근거가 됨
- 로마서 8:28 (적용 부분 참조)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현재의 고통도 하나님의 선한 계획 안에 있음을 확신하게 하는 구절. 슬픔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신앙적 근거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