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설교 인도자용 교안
살았고 죽었더라 (창 9:24-29)
<마음을 열며 - 아이스브레이킹>
1. 무언가를 "이제 됐다"고 생각하며 멈춘 경험이 있으신가요? (예: 자격증 취득 후 공부 중단, 목표 달성 후 관리 소홀 등) 그 후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나눠 봅시다.
-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인 상황으로 접근
- 영적 긴장의 이완이라는 본문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
- 부담 없이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질문
2. 인생에서 '끝까지 한결같이' 해온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혹은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눠 봅시다.
- 첫 번째 질문보다 조금 더 깊이 있는 성찰 유도
- 믿음의 여정에서 한결같음이라는 주제로 연결
- 말씀 나눔의 방향성 제시
<말씀 앞에서>
1. 노아가 홍수 이후에 영적 긴장을 놓아버린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창 9:24, 28-29) (참고 창 6:9, 창 7:1)
1-1. 노아의 실족
- 홍수 이후 포도 농사를 지으며 포도주를 마시고 취함
- 술에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인사불성이 됨
- 아들 함이 아버지의 추태를 형제들에게 알림
- 술이 깬 후에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해 들음 - 이른바 '블랙아웃' 상태
1-2. 노아의 정체성
- 노아는 의인이었고, 당대에 완전한 자였음 (창 6:9)
-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음
- 방주를 120년간 지으며 하나님과 교제한 인물
- 두 번째 창조의 주인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은 자
1-3. 350년의 허무한 기록
- 홍수 이후 350년의 삶이 단 두 줄로 기록됨: "살았고 죽었더라"
- '살다'(하야 חָיָה)와 '죽다'(무트 מוּת)는 평범한 동사로,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의미
- 창세기 6-9장 총 97절 중 87절은 방주 건설과 하나님과의 동행을 기록
- 나머지 350년은 건질 것이 없는 의미 없는 시간으로 정리됨
1-4. 인도 포인트
- 참여자들에게 창세기 6:9("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을 먼저 읽게 하여 노아의 초기 모습을 상기시킴
- 성경이 노아의 마지막 350년을 "살았고 죽었더라"로만 기록한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강조
-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라는 질문으로 적용 유도
- 영적 긴장을 놓는 순간 오랜 시간이 무의미해질 수 있음을 경고하되 정죄가 아닌 깨달음으로 인도
2. 에녹의 삶은 노아의 삶과 어떻게 대조됩니까? (창 5:21-24) (참고 히 11:5-6)
2-1. 에녹의 동행
-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함
- 365세를 살았으나 "죽었더라"가 아닌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로 기록됨
-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직행한 유일한 인물 중 하나
2-2. 에녹과 노아의 공통점과 차이점
- 공통점: 둘 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 차이점: 에녹은 끝까지 동행을 유지함, 노아는 중간에 영적 긴장을 놓아버림
- 에녹은 "이제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음
- 끝까지 믿음의 길을 달려간 결과 특별한 영적 훈장을 받음
2-3. 영적 긴장의 중요성
- 히브리서 11:5-6에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증거됨
- "이제 되었다"는 순간 사탄이 틈 타기 좋은 환경이 조성됨
- 믿음의 여정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됨
2-4. 인도 포인트
- 창세기 5:24을 직접 읽고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의 의미를 나눔
- 노아와 에녹 모두 하나님과 동행했지만 결말이 달랐던 이유를 생각해보게 함
- "우리는 에녹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노아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자기 점검 유도
- 정죄하지 않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소망의 메시지도 함께 전달
3. 바울은 믿음의 여정에 대해 어떤 자세를 보여줍니까? (빌 3:12) (참고 행 19:21, 갈 3:3)
3-1. 달려가는 자세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 로마 감옥에서 노년에 이 고백을 함
- 이미 많은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멈추지 않음
3-2. 바울의 구체적인 삶
- 에베소에서 3년간 복음을 전한 후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행 19:21)
- 로마에서는 다시 스페인을 꿈꾸며 달려가겠다고 결단
- 평생 복음 전파의 사명에 방향 지워진 삶
- 마귀가 틈 탈 상황이 없었고, 쉴 시간도 없었음
3-3. 멈추는 것의 위험
- 갈라디아 교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 3:3)
- 직분을 받으면 멈추는 경우 - 직분은 우리 믿음을 담보하지 못함
- 부자가 되면 멈추는 경우 -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
- "이제 되었다"는 순간 노아의 전철을 밟게 됨
3-4. 인도 포인트
- 빌립보서 3:12을 함께 읽고 바울의 상황(로마 감옥, 노년)을 설명
- "우리는 어디에 멈춰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자기 점검 유도
- 직분, 재물, 나이 등으로 멈추는 사례를 나누며 공감대 형성
- 갈라디아서 3:3을 인용하여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성령으로 마쳐야 함"을 강조
4. 노아가 함과 가나안에게 선포한 저주와 축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창 9:25-27) (참고 욘 3:4, 6, 10)
4-1. 저주의 내용
-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 가나안은 함의 아들로, 함 가문 전체에 대한 경고
- 셈의 종, 야벳의 종이 될 것이라는 예언
4-2. 왜 함이 아닌 가나안을 저주했는가
- 함의 잘못이 아들 가나안에게, 그 가문 전체에 영향을 끼침
- 부모의 영향력이 자녀에게 흘러감 - 좋은 영향이든 악한 영향이든
- 믿음 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이 자손에게까지 전달됨
- 우리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
4-3. 저주는 불변적 언약이 아님
- 요나서의 니느웨 사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욘 3:4)
- 왕부터 백성까지 회개하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심 (욘 3:6, 10)
- 저주는 유동적이고 가변적 - 돌이키면 회복됨
-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이 아니라 자녀가 되기를 원하심
4-4. 인도 포인트
- 요나서 3:10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를 직접 읽고 의미를 나눔
- 저주와 축복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강조
- 부모로서 자녀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점검하게 함
- 셈과 야벳의 축복도 변절하면 사라질 수 있음 - 복과 저주는 선택의 갈림길
<말씀에 비추어 보며>
1. 우리가 영적 긴장을 놓아버리기 쉬운 상황은 언제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창 9:24, 28-29) (참고 빌 3:12, 갈 3:3)
1-1. 도입 질문 "나도 모르게 '이제 됐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에서 멈춰 선 적이 있다면 언제였습니까?"
1-2. 영적 긴장을 놓기 쉬운 상황들
- 목표를 달성했을 때 (직분, 봉사, 훈련 과정 수료 등)
- 삶이 안정되었을 때 (경제적 여유, 건강, 가정의 평화)
- 나이가 들어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 때
- 영적 성장의 정체기가 왔을 때
- 어려운 시기를 넘긴 후 긴장이 풀릴 때
1-3. 극복을 위한 방법
- 바울처럼 "아직 얻지 못했다"는 겸손한 자세 유지
- 다음 목표를 향해 계속 달려가는 삶
- 에녹처럼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습관
- 소그룹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점검하는 관계
-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성령으로 마치겠다는 결단
1-4. 적용 질문들
- "현재 나의 신앙생활에서 '이제 됐다'고 생각하며 멈춰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바울처럼 '달려가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영역은 무엇입니까?"
- "에녹의 300년 동행처럼 나의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1-5. 실제적 적용 방향
- 매일의 삶에서 영적 긴장을 유지하는 구체적 루틴 만들기 (말씀 묵상, 기도, 예배 참석 등)
- 신앙의 다음 목표 세우기 - "이제 됐다"가 아닌 "아직"의 자세
- 소그룹 안에서 서로의 신앙을 점검하고 격려하는 관계 형성
- 세대를 넘어 자녀와 후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결단
1-6. 격려 포인트 "노아도 처음에는 의인이었고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방심이 350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 앞에서 깨닫고 돌이키면, 우리는 에녹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달려가는 우리가 됩시다."
2. 우리가 선택해야 할 '셈과 야벳의 길'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입니까? (창 9:25-27) (참고 욘 3:10)
2-1. 도입 질문 "복과 저주가 우리 앞에 갈래길처럼 놓여 있다면, 나는 어떤 기준으로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2-2. 셈과 야벳의 선택
- 아버지의 허물을 알리지 않고 덮어줌
- 함의 말에 동조하지 않음
- 뒷걸음질 쳐 들어가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가림
- 하나님의 말씀 편에 서서 살아감
2-3. 함과 가나안의 선택
-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허물을 드러냄
- 하나님의 영적 지도에 반감을 품음
- 그 영향력이 자손에게까지 흘러감
- 결국 "형제의 종들의 종"이라는 저주를 받음
2-4. 적용 질문들
- "나의 가정에서 나는 자녀들에게 어떤 영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까?"
- "함처럼 하나님 말씀의 반대편에 서 있는 영역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돌이켜야 할 부분이 있다면, 오늘 구체적으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2-5. 실제적 적용 방향
- 가정에서 신앙의 본을 보이는 부모/배우자가 되기
-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고 세워주는 공동체 만들기
- 함의 길을 걷고 있다면 돌이켜 축복의 길로 전환하기
- 저주의 언약도 돌이키면 축복으로 바뀔 수 있다는 소망 붙잡기
2-6. 격려 포인트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이 아닙니다. 니느웨처럼 돌이키면 하나님은 기꺼이 뜻을 돌이키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의 길을 걷고 있다 해도 깨닫고 돌이키면 셈과 야벳의 축복이 우리 것이 됩니다. 믿음 생활은 운명론이 아닙니다. 선택입니다. 오늘 복의 길을 선택합시다."
<결단하며>
1. 에녹처럼 끝까지 동행하기 노아처럼 "살았고 죽었더라"로 기록되는 인생이 아니라, 에녹처럼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이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함
2. "이제 됐다"가 아닌 "아직"의 자세로 달려가기 바울처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라고 고백하며,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가겠다고 결단함
3. 셈과 야벳의 길, 복의 길 선택하기 함과 가나안의 저주의 길이 아닌, 셈과 야벳의 축복의 길을 선택하며, 혹시 저주의 길에 있다면 돌이켜 축복의 언약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겠다고 결단함
인도자 참고사항
주의사항
- 노아의 실수를 다룰 때 정죄의 느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경고로 인도할 것
- "영적 변절"이라는 표현이 자칫 정죄로 느껴질 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 그럴 수 있다"는 공감의 자세로 진행
- 함과 가나안의 저주를 다룰 때, "돌이키면 회복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반드시 함께 전달
- 부모의 영향력을 이야기할 때, 죄책감보다는 "지금부터 잘하면 된다"는 격려로 마무리
- 참여자들이 자신의 "멈춤"을 나눌 때 판단하지 않고 경청하며 함께 기도로 격려
추가 설명 자료
본문 성경구절 (창 9:24-29)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참고구절 해설
구절 | 내용 | 본문과의 연결 |
창 5:21-24 | 에녹이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이 데려가심 | 노아와 대조되는 끝까지의 동행 |
창 6:9 |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 하나님과 동행 | 노아의 초기 모습 - 후기와 대조 |
창 7:1 | "네가 이 세대에서 내 앞에 의로움을 보았음이니라" | 하나님이 인정하신 노아의 의로움 |
빌 3:12 |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 멈추지 않는 바울의 신앙 자세 |
갈 3:3 |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 중간에 멈추는 것에 대한 책망 |
욘 3:4, 6, 10 | 니느웨의 회개와 하나님의 뜻 돌이키심 | 저주가 불변이 아닌 가변적임을 보여줌 |
히 11:5-6 | 에녹이 믿음으로 옮겨져 죽음을 보지 않음 | 에녹의 동행이 믿음의 결과임 |
원어 설명
- 하야(חָיָה): '살다'의 히브리어, 평범하게 생존하는 것을 의미
- 무트(מוּת): '죽다'의 히브리어, 일반적인 죽음을 의미
- 이 두 동사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과 죽음을 표현하며, 노아의 350년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록할 가치가 없었음을 암시
역사적/문화적 배경
- 노아는 홍수 이후 새로운 세계의 첫 번째 농부가 되어 포도를 재배함
- 고대 근동에서 포도주는 일상적인 음료였으나, 과음은 경계의 대상
-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는 것은 고대 문화에서 심각한 불경의 행위
- 셈, 함, 야벳의 세 아들은 후에 인류의 세 갈래 민족의 조상이 됨